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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정준모의 미술동네 설설 게재 일자 : 2019년 07월 22일(月)
210년 만에 베이징 찾은 ‘추사’… 냉랭한 韓·中관계의 희망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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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 김정희의 ‘입춘대길·천하태평시’(1791∼1792), 종이에 먹, 90.5×58.0㎝, 개인소장.

내달까지 중국미술관서 전시회 추사의 면모 일목요연 보여줘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만난 추사는 또 달랐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만났던 윤형근도 새삼 다시 보였는데, 객지에서 추사와의 뜻밖의 해후는 역시 반갑고 새로웠다. 이번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중국미술관 전시(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6월 18일∼8월 23일)는 1809년 아버지 김노경이 동지겸사은부사가 돼 청나라에 갈 때 자제군관 자격으로 베이징(연경)에 다녀왔으니 꼭 210년 만의 베이징 재방문이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봉은사 ‘판전’으로 시작된 베이징 전시는 우선 결과부터 말한다면 금의환향이었다. 왜냐면 당시 그의 베이징 방문은 추사의 삶과 철학 그리고 학문과 예술의 분기점이 됐기에 고향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괴(怪)의 미학과 동아시아 서(書)의 현대성’을 주제로 학예일치, 해동통유, 유희삼매 등 3부로 나눠 서예가 추사의 면모를 일목요연하게 맥락화해서 보여주고 있었는데 전시는 추사의 마지막 작 봉은사 판전의 현판 ‘판전’(1856)과 여섯 살 때 월성위 궁에 써 붙인 ‘입춘부’(1792)가 함께 관객을 맞고 있다. 여기에 중국 관객들의 반응도 젊은 아이돌의 한류와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매우 진지했다. 또 각별한 것은 의외로 많은 젊은 관객이 요모조모 뜯어보고 자신들끼리 묻고 노트에 적고 토론하는 것이었다.

일찍이 실학파의 중심 초정 박제가(1750∼1805)를 사사한 추사는 그를 통해 청나라의 새로운 학문과 예술을 동경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초정이 세상을 떠나자 스승과 교유했던 청나라 대학자들을 만나 공부하는 꿈을 꾸었고, 결국 기회를 잡아 베이징에 갔다. 처음 상하이(上海) 사람 조강(曹江·1781∼?)을 통해 서송(徐松·1781∼1848)을 만났고 당대 최고의 대학자 옹방강(翁方綱·1733∼1818)과 완원(阮元·1764∼1849)을 만났다. 후일 이 만남을 추사를 연구하고 공부해 세상에 알린 일본의 동양철학자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1879∼1948)는 “19세기 조선 지성사의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했다.

하나 21세기 베이징 한복판의 추사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바로 진정한 문화외교, 문화교류의 장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한·중·일 관계는 마치 살얼음판같이 모든 것이 위태롭고 불안하다. 일본의 무역보복,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 이후 냉랭해진 중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 전시는 그래도 함께해야 할 이웃을 이어주고 관계 개선의 계기를 찾을 수 있는 실낱같은 끈이 되고 있었다.

21세기 외교력은 정무, 경제, 문화라고 하지만 실제로 이 엄중한 시기에 한·중·일 간 문화예술 교류의 기회와 장도 함께 닫혀 있다. 오늘날 외교가 주변국과의 선린과 유대강화가 아니라 위정자들의 권력유지를 위한 수단처럼 변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국가 간 어렵고 힘들 때 유효한 것은 문화외교다. 따라서 이 전시는 매우 시의적절한 때 펼쳐진 문화외교의 장이다. 요즘 같은 때 조선의 추사가 청나라의 옹방강과 완원을 만나 새로운 글씨의 지평을 열었고 이를 알아본 이가 일본의 후지쓰카라는 사실을 되새기면서 한·중·일의 유서 깊은 형제애를 서로 확인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무대 뒤에는 꾸준히 중국미술관 및 예술계와 교류해 온 예술의전당 서예관의 이동국이란 이가 있어 가능했다. 전문가보다는 유능한 관리자를 원하는 우리 문화예술 기관에서 서예 주특기 때문에 그는 가끔 소위 순환(?)근무도 했지만 결국 돌고 돌아도 갈 곳은 서예관이었다. 그곳에서 30년을 오롯이 서예만 붙들고 산 그의 인내와 내공은 전문성과 소장가들과의 신뢰로 이어졌다. 그래서 기관 보고 추사를 내어 준 것이 아니라 사람 보고 내주었다는 것이 미술 동네 설이다. 품과 시간, 깊은 신뢰의 인간관계가 필요한 이런 전시는 2∼3년 임기의 미술관장이나 비정규직 학예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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