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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인 초대석 게재 일자 : 2019년 07월 22일(月)
“‘뒷돈’ 없애니 계약·대출 딱 끊겨… 투명경영 포기할까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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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규 KSS 해운 고문이 지난 12일 제주 서귀포시 비오토피아 단지 내 산책길에서 자신의 경영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출범 50주년 맞은 KSS해운 박종규 고문

첫 외항 석유화학 운반선 도입
1969년 창업 1년만에 ‘기적’
한국 해운산업 발전에 도화선

이익공유제로 창의성 극대화
‘회사의 주인’이라는 인식심어
부도 직전 직원들 돈모아 해결

‘리베이트 없는 회사’로 운영
아들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
강소기업으로 성장 밑거름 돼
“사람 쓰는 것을 투자로 봐야”


국내에 석유화학산업이 태동하지 않았던 지난 1970년 7월. 서울 중구 무교동 광일빌딩에 있던 33㎡(약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창업한 지 갓 1년 된 KSS 해운에 일본으로부터 ‘제1호 선박 도입 계약 성공’이란 전문(電文)이 날아들었다. 한국 최초로 외항 석유화학 화물 운반선을 도입한 순간이었다.

이때 들여온 배는 700t급 소형 운반선이었다. 작고 초라한 중고선이었지만 위험한 적재물을 옮기는 만큼 당시 한국 조선 기술로는 엄두를 못 내던 배였다. 1969년 KSS 해운을 세운 박종규(84) 고문은 첫 배를 들여오기 위해 석유화학산업이 번창하던 일본을 7개월간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자본금 300만 원짜리, 이름도 낯선 한국 해운사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승부수를 던졌다. 보통 8년간 용선 계약을 해 배 값을 갚는데 이를 3년 만에 갚겠다는 계획서를 내놓았다. 일본 선주는 결코 갚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면서도 낡은 배 한 척을 내줬다. 선원들은 헌신적으로 일했다. 일본 배들이 한국과 일본을 한 달에 4번 정도 오갔다면 제1호 선박인 ‘제1 케미캐리호’는 7∼8번을 왕복했다. 3년 만에 배 값을 다 갚았다. 일본 선주들이 배를 서로 빌려주겠다고 나섰다. 창업 8년 만에 운반선은 27척으로 늘어났다. 일본이 장악한 아시아 석유 화학 운송 시장에서 한국 해운업도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KSS 해운은 지난 50년간 한국 산업계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화학 약품과 LPG를 운송하는 이 회사는 전 세계 해운업 경기가 얼어붙은 지난해에도 매출 2025억 원, 영업이익 471억 원을 벌어들였다. 설립 당시부터 ‘리베이트(뒷돈·비자금) 없는 회사’를 표방했고, 임직원 성과공유제와 전문경영인 체제를 한발 앞서 도입했다. 최근 창업자인 박 고문은 50년 동안 해운업 불모지에서 알짜기업을 어떻게 키워왔는지를 정리해 ‘직원이 주인인 회사’라는 책을 펴냈다. 지난 12일 제주 서귀포시 비오토피아 단지에서 박 고문을 만났다.

박 고문은 평생 자신이 천착하던 단어를 ‘투명경영’으로 꼽았다. 이를 뼈대로 삼아 리베이트를 주고받지 않고도 일군 성과를 임직원과 나누는 회사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얘기다. 계기는 첫 직장이었던 해운공사 근무 시절에서 비롯됐다.

“1970년대 국내를 비롯한 해외에서도 해운사의 뒷돈은 관행이었습니다. 국내 해운 시장의 70%를 독과점한 해운공사에서도 리베이트가 만연했습니다. 눈먼 돈이기에 이를 둘러싼 사고가 반드시 생겼습니다. 리베이트가 몰리던 영업부 직원들은 매일 밤마다 술을 흥청망청 마셨죠. 다른 부서 직원들은 영업부에 가기 위해 인사부서에 로비를 했습니다. 조직 내에서 인사 로비가 빈번하면 파벌이 생기기 마련이죠. 리베이트 한 가지로 여러 형태의 부패가 나비효과처럼 퍼져서 회사 전체를 썩게 만들더군요. 조직이 썩으면 회사가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해운공사에서 10년간 일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점은 창업한다면 반드시 리베이트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를 세우자마자 리베이트와 밀수부터 없앴다. 운송 계약은 줄줄이 취소됐다. 뒷돈을 주지 않으니 은행 돈도 빌리기 힘들었다. “투명경영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순간이 많았죠. 뒷돈을 주려면 비자금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럴 경우 회계를 투명하게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은행에 한번 들러서 꿀 수 있는 돈을 10번 넘게 가서 사정해야 했죠. 창업 후 2∼3년 사이에 은행 문턱을 100번 넘게 드나들었습니다. ‘은행 문턱만 오가다가 내 인생이 끝나겠구나’ 싶어서 저 자신이 한심해 보인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키지 않으면 투명성 원칙은 유리창처럼 깨져 복원될 수 없었어요. 저부터 월급 외에는 회삿돈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영수증 없는 돈도 결코 쓰지 않았습니다.”

▲  박종규(사진 우측) KSS 해운 고문이 1970년 7월 일본에서 처음 들여온 선박 ‘제1호 케미캐리호’ 앞에 서 있다. KSS 해운 제공

영업부에서 리베이트를 받지 않는 회사들을 가까스로 찾아냈고, 신뢰도가 높은 외국 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하기 시작했다. 위기는 1979년 말 다시 찾아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날은 보통 운임을 받던 날인데 시장이 온통 마비됐습니다. 1억2000만 원짜리 어음이 돌아오기 시작하는데 부도가 날 것 같아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간부들에게 전화로 ‘나를 보고 회사를 봐서라도 돈을 모아달라’고 사정했습니다. 간부들은 부하직원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죠. 직원들이 집이나 은행에 모아뒀던 돈을 찾아서 회사로 모두 돌아왔습니다. 그날 입금된 돈이 1억5000만 원이었어요. 직원들이 부도를 막은 것입니다. ‘사장의 회사’가 아닌 ‘자기 회사’라고 여겼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죠. 그때 결심했습니다. 나를 위해 돈을 벌지 않고 직원들을 위해 돈을 벌겠다고요.”

박 고문이 되새긴 각오는 훗날 이익공유제의 근간이 됐다. KSS 해운은 2014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이익공유제를 도입했다. 이는 회사의 순이익 중 주주에게 배당금을 주고, 사내유보금을 쌓듯 직원들에게도 이익을 나눠주는 제도다. 실적이 좋을 때는 임직원에게 이익을 나눠주지만 경영 위기 때는 감원 대신 임금총액을 줄인다. 안건을 제안한 이는 박 고문이다.

“회사가 돈을 많이 벌면 직원도 이익을 많이 받고, 적자가 나면 못 받는 거죠.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게 되면서 전 직원이 이익을 많이 올리기 위해 단결했어요. 이익공유제는 여러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같이 뛰게 하는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이를 시행하면 강성노조가 발붙일 곳이 없어져요. 이익공유제는 투명경영이 전제돼야 합니다. 숨겨둔 비자금도 없고 이익이 안 난다고 파업할 명분이 사라집니다. 직원들이 자기가 열심히 일한 만큼 공동으로 배당받는데 노조가 선동할 틈이 어디 있겠어요?”

제도가 시행된 뒤 가장 큰 변화는 조직 자율성과 생산성이 올라갔다는 점이다.

“기업 내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이익공유제의 목적이었습니다. 예전 조직은 상명하복 체제였죠. 제도가 시행되니 회사의 이익을 위해 최고경영진과 일선 직원들이 ‘계급장’을 떼고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어요. 회사 이익을 창출하는 방법이 토론 주제가 된 거죠. 토론 문화가 생겼다는 것은 자발성이 생기고 명령체계가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기업에서 자유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율성이 없는 상황에서는 창의력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직원들 창의력이 나오기 시작하면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이 경우에만 기업이 지속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익 창출은 주주가 아니라 직원들이 하는 것입니다.”

이는 박 고문이 회사를 세울 때부터 직원을 동업자로 여겼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해운공사 근무 시절 ‘낙하산 인사’가 횡행해 직원들이 좌절하곤 했습니다. 그때부터 사원이 사장이 될 수 있는 회사를 꿈꿨습니다. 평사원이 사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회사와 희망조차 없는 회사는 직원들의 업무 태도부터 다릅니다. 우리 직원들을 회사의 주인으로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이 같은 신념은 경영권 상속 불가 원칙으로 이어졌다. 그는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을 위해 2000년대 초 고문으로 물러났다. 세 아들도 각자 전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직원들이 동업자이기에 이익을 같이 나눴고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겼습니다. 실력이 아닌 핏줄로 경영권을 물려받을 수는 없습니다. 회사 업무와 전혀 관련 없는 가족에게 회사를 맡길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겐 돈을 물려주는 것보다 독립심을 심어준 게 가장 큰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

전문경영인 체제를 꿈꾸면서 사람을 냉철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박 고문이 수십 년 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후계자의 요건은 무엇일까.

“첫째는 주관과 가치관이 확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주관이 흔들리는 사람에게 회사를 믿고 맡길 수는 없죠. 두 번째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람’을 기피했습니다.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물든 사람은 언제든 회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오너에게 반대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CEO에게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애사심이 강한 편입니다. 불이익을 당할 줄 알면서도 회사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말하는 것입니다.”

KSS 해운을 강소기업으로 키울 수 있었던 비결도 전문경영인 체제의 자율성이었다.

“후배 사장들에게 권한을 주고 동시에 책임도 지게 했습니다.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인 CEO로 만들어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권한인 인사권과 자금 운용권부터 먼저 내줬습니다. 일절 간섭하지 않기로도 약속했습니다. 오너가 간섭하기 시작하면 자율성이 사라지고 사장들은 오너만 쳐다보게 됩니다. ‘가짜 사장’인 거죠. 권한 없이 영업 실적이나 올리는 사장은 영업부장에 불과합니다.”

박 고문은 ‘사람’을 쓰는 것을 투자로 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자본가는 돈을 내놓고, 직원은 노동력을 내놓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기업이라는 이유에서다.

“대부분 기업은 노동을 비용으로만 여기고 출자로 보지 않습니다. 자본과 노동력을 동일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이 노동력을 출자했다면 이익을 나눠줘야 한다고 봅니다. 직원들은 정년이 될 때까지 자기 인생을 그 기업에 바치기 때문입니다. 돈을 투자해 망하면 그 돈만 잃어버리는 것이지만 직원들은 노동력을 투자해 잘못되면 인생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서귀포 =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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