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文대통령 ‘경제 克日’ 발언과 기업환경 惡化의 괴리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256M D램 개발에 성공한 것을 대외에 공표한 날은 1994년 8월 29일이었다. 공교롭게도 ‘8월 29일’은 대한제국이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경술국치일이다. 일본 샤프의 반도체 기술을 따라 배우며 시작했던 삼성전자가 메모리 시장 기술력으로 일본을 눌렀다는 ‘극일(克日) 선언’을 발표 날짜 택일을 통해서 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경제 극일’의 재현을 강조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2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가전·전자·반도체·조선 등 많은 산업 분야에서 일본의 절대우위를 하나씩 극복하며 추월해왔다”며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공개된 발언에서만 ‘경쟁력’을 네 차례 언급했다고 한다. 경쟁력은 평등·분배를 강조하는 문 정부 ‘코드’와는 잘 맞지 않는 개념이어서 새삼 관심을 끌었다.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동요하는 기업들을 다독이고, 과거 경험을 상기시키면서 ‘이번에도 할 수 있다’는 결의를 다지려는 고심이 느껴진다.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경제 극일이 말로만 되는 건 아니다. 과거 현대중공업이 일본 가와사키조선소의 도면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다가 독자 기술을 축적해 일본을 넘어섰던 일이나, LG전자가 일본 히타치 TV를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하다가 세계 1위로 올라선 건 기업들의 땀과 눈물, 그런 기업을 적극 지원한 정부의 열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기업 환경은 악화일로다. 지난해 국내 기업소득은 전년 대비 5.25% 줄어 13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했다. 올해 1분기 상장기업의 영업이익은 37% 급감했고 앞으로는 더욱 캄캄하다. 비정규직 0, 최저임금 과속 인상 등 문 정부의 반(反)기업·친(親)노조 정책의 영향이 가장 크다.

문 대통령이 극복 대상으로 지목한 일본은 ‘아베노믹스’에 기반해 일본 전역에 국가전략특구를 만들어 파격적으로 규제를 풀고 법인세를 대폭 낮추는 등 총력을 기울인 결과 호황을 만끽하고 있다. 법인세를 올리고, 겹겹 규제로 기업을 옥죄면서 일본 기업을 넘어서 주길 바라는 건 연목구어다. 진정으로 극일 의지가 있다면, 백 마디 거창한 말보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위한 작은 정책들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