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팀장의 북레터>음악·철학·신학 넘나들며…더 깊이 분석한 ‘악학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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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神學)에서 일가를 이룬 한태동(95) 연세대 신과대학 명예교수는 국내의 권위 있는 ‘외솔상’(2002)과 ‘용재학술상’(2008)을 받았습니다.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를 기리는 외솔상은 한글연구 분야, 연세대 초대 총장인 백낙준의 아호를 딴 용재학술상은 한국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학자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신학자가 받는 건 지극히 이례적입니다. 이처럼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나온 한 명예교수는 신학에서 출발해 동서양 및 불교 철학은 물론 한글의 음성론, 음성수리학, 나아가 음악과 수학, 컴퓨터에까지 조예가 깊었던, 말 그대로 ‘석학’입니다.

한 명예교수의 ‘세종대 음성학’(연세대출판부, 1998)은 그에게 ‘한글을 몹시 사랑한 한 신학자’란 별명을 줬지만, 한글 연구뿐 아니라 그가 천착해온 전 분야가 녹아든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성-음운-음악의 집대성’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음성학, 수학, 해부학, 물리학 이론이 종횡무진합니다. 책의 Ⅳ부 ‘악학궤범 연구’는 독보적인 분석으로 평가받았지만, 후속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달 초 출간된 ‘악학궤범 신(新)연구: 한태동의 악학궤범 연구에 대한 이해와 고찰’(솔과학)은 1960∼1964년 연세대 신학과 제자인 김상일 전 한신대 철학과 교수가 스승의 ‘악학궤범 연구’를 더 깊고 넓게 검토한 학술서입니다. 수학적 두뇌 없이 학문으로서 음악은 하기 어렵다는 말처럼, 음악은 수학과 불가분의 관계이고, 수학은 철학과 뗄 수 없습니다. 이 책도 한마디로 어렵습니다. 김 전 교수는 “한 명예교수가 현대수학의 자연로그함수(e)를 12악률에 적용해 동서양 음악의 최대 난제 가운데 하나인 ‘피타고라스 콤마’(0.0315)의 정체를 밝혔지만, 후학들이 연구를 잇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요컨대, 피타고라스 콤마는 한 옥타브를 연주하고 났을 때 남는 정체불명의 음으로, 마치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회전하고 나면 남아도는 윤일(閏日)과도 같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철학적으로는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초과분’(excess)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음악에서 으뜸음과 따름음으로 나누는 한 초과분(피타고라스 콤마)이 나타날 수밖에 없답니다. 신학적으로 봤을 때, 에덴동산의 구조가 중앙(으뜸)과 주변(따름)으로 나뉘었기 때문에 콤마 같은 것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신학은 그것을 타락의 원인으로 규정해왔다는 겁니다. 저자는 탈중심화와 함께 독일의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의 대각선 논법에 의해 신학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음악과 철학, 신학을 넘나드는 책입니다. 463쪽, 3만8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