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檢·警 쌍방수사 부른 ‘피의사실공표죄’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피의사실 공표죄를 놓고 검찰과 경찰이 충돌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수사기관 간 대립보다는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공개적인 무대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왼쪽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오른쪽은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건물이며 가운데는 피의사실 공표죄 검경 대립 배경으로 알려져 있는 2017년 울산 고래고기 환부 사건 당시의 고래고기 압수품 사진이다. 자료사진

기소전 누설땐 ‘3년이하 징역’… 재판 넘긴 사례 없어 사실상 사문화
‘망신주기식 수사’로 인권침해 비판…“국민 알권리 위해 필요” 주장도

警의 ‘가짜 약사’ 보도자료 놓고
檢 ‘피의사실공표’ 기소로 재점화
警, 김성태 기소한 檢수사로 맞불

공익 부합땐 공개 허용하지만
판단기준 모호해 논란 계속돼

“인권·국민 알 권리 동시 충족할
수사기관 공통준칙 마련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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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사실 공표’를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갈등이 쌍방수사로 이어지면서 정면충돌 일보 직전 상태로 흐르고 있다. 이에 따라 수사기관 간 소모적 논쟁이 아닌 ‘수사 대상자의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를 동시에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검찰청 산하 검찰수사심의위원회(위원장 양창수 전 대법관)는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회의를 열고 울산지검의 ‘경찰관 피의사실 공표 사건’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사건은 1월 울산지방경찰청이 면허증을 위조해 약사 행세를 한 일반인 A 씨를 구속하면서 낸 보도자료가 발단이 됐다. 울산지검은 “A 씨가 공인이 아닌데도 경찰이 재판에 넘기기 전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며 울산경찰청 광역수사대장과 직속 팀장 등 2명을 지난 6월 입건했다. 검찰이 피의사실 공표를 수사하는 첫 사례다. 경찰관 측 변호인은 이 사건의 수사 여부를 심의위 안건으로 올려달라고 요청했었다. 심의위의 결정에 대해 경찰은 “수사를 계속하라는 것이지 기소 여부까지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고, 수사는 계속하되 불기소로 절충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하고 있다. 또 경찰은 울산경찰청이 2017년 울산지검 검사의 ‘고래고기 불법 환부 사건’을 수사한 것에 대해서 검찰이 보복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경찰도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에 칼끝을 겨누며 맞대응에 나섰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들을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23일 배당받아 수사에 들어갔다.

형법 제126조는 검찰이나 경찰 등이 업무 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외부에 누설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한다. 피의사실공표는 1953년 우리나라 형법이 최초 제정될 때부터 규정돼 있던 범죄행위다.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 공표하면 처벌하도록 해 형사사법의 대원칙인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취지다.

하지만 해당 법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피의사실 공표 문제로 접수된 347건 가운데 재판에 넘겨진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2012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 씨 비리 의혹을 수사했던 창원지검 소속 검사가 피의사실 공표로 감찰에 넘겨졌지만, 징계 처분을 받기도 전에 사표가 수리됐다. 검경은 각각 법무부와 경찰청 훈령에 따라, 일부 예외적인 경우에만 수사 상황을 공개하도록 정하고 있다. 추가 범죄나 추측성 보도를 방지하는 등 공익에 부합할 경우 공보 책임자를 통해 일부 내용을 공개할 수 있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 오히려 ‘망신주기’식 수사에 악용된다는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이 같은 훈령이 ‘국민의 알 권리’와 상충한다는 지적도 있다. 피의사실 공표죄를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살인이나 아동학대 등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는 범죄조차 공판 청구 전에는 언론을 통해 공개돼선 안 된다. 다단계 사기나 불법도박, 마약 등 유사·추가 피해를 막아야 하는 범죄를 일반에 즉각 알릴 수 없는 점도 문제다. 해외에서도 수사 내용 공개 자체를 금지하는 법은 찾아보기 어렵다. 독일과 프랑스는 ‘공무상 비밀’ 유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공소장을 거의 원문 그대로 공개하는 수준에 한해 제한하고 있다. 영국은 ‘법정모독법’으로 재판 전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한 경우만 처벌하도록 기준을 완화했다. 검경 양측은 수사 대상자의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를 동시에 보장하는 수사기관의 공통된 공보준칙 마련이 해법이라는 사실에는 공감하고 있어, 새로 취임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판단에 따라 피의사실 공표를 둘러싼 검경 대립의 확전 여부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