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화·경제보복… ‘아베의 일본’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 일본의 우익세력은 전후 전범 단죄 및 과거 청산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어진 전전 세력의 후손이다. 태평양전쟁과 원폭 패망, 천황제의 존속(작은 사진 왼쪽부터) 등 과거 역사를 제대로 인식해야 아베 신조(큰 사진)로 상징되는 현재 일본 우익의 군사대국화 행보를 알 수 있다. 자료사진

- 일본 이해에 도움되는 서적 출간 ‘봇물’

美·日 타협으로 천황제 존속
戰前 보수지배세력이 日통치
‘잘못 없으니 청산할 것 없다’
책임 회피하고 敗戰도 은폐

경제 ‘잃어버린 20년’ 겪고
보수 우익 자민당 장기집권
패전 이전 ‘강한 일본’ 꿈꿔
개헌을 유일한 출구로 인식

일본이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 제외를 결국 결정했다. 7월 내내 한반도에는 먹장구름이 끼었었다. 한·일 관계 경색 속에 러시아 공군기의 한국 영공 침범과 중국의 동조,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호르무즈해협 파병 압박, 북한의 신형 잠수함 공개와 미사일 시험 발사 등이 동서남북에서 터지면서 구한말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직후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협이 여전히 변한 게 없다는 불안을 새삼 되새기게 했다. 특히 우경화 경향을 노골화하며 평화헌법 9조 개정을 통해 종전 이전 체제로 회귀를 도모하는 일본 정치는 우리에게 또 다른 위협으로 대두됐다. 이번 무역보복이 강제징용 보상 즉 식민지배의 사과와 청산 문제로 촉발됐다는 게 함축적으로 말해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총대를 멘 현재의 우경화 일본은 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현대 일본’을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한다.

현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패전 전후, 천황제 존속, 자민당 장기집권, 전쟁범죄 불인정, 잃어버린 20년과 한국의 부상 및 한반도 화해 무드를 둘러싼 계산, 평화헌법 폐기와 군사대국화의 꿈, 지식·시민사회의 움직임 등 씨앗이 배태된 과거부터 현재로 훑어야 한다. 이번 주 출간된 ‘일본 제국 패망사’(존 톨런드 지음／글항아리)는 그 시작으로, 바로 우리의 운명과 직결됐으며 일본제국 군부의 실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태평양전쟁을 종합적으로 다룬 책이다. 미국의 전쟁사학자이자 논픽션 작가가 쓴 이 책은 1972년 논픽션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출간이 오래된 책이지만,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당대 미·일의 고위 관계자 등 500여 명을 인터뷰하고 현장을 답사하며 쓰여 여전히 높게 평가받는다.

캘리포니아 크기밖에 안 되는 나라가 무엇 때문에 진주만을 공격했고 열 배는 더 강한 적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행동을 했단 말인가? 책을 쓰게 된 저자의 이런 궁금증은 사실 현재 일본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섬뜩하다. 전쟁 수행의 실질적인 총수였던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함대 사령관을 비롯해 해군의 지휘관들은 미국의 역량을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고 싶어 했다. “준비가 부족하니 경솔하게 전쟁에 나서면 안 된다”는 해군의 보고에 육군은 분노하는 척했지만 실상은 그들도 책임을 떠넘기며 우물쭈물했다. 하지만 동맹국인 나치 독일이 승승장구하는 마당에 그 승리에 편승해 한몫 챙길 수 있다는 기회주의적 욕심이 득세했다. 결국 독일이 있는 이상 어찌 되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생각에 국가 전체의 판단능력이 마비됐다. 그들은 지금 다시 군사 대국화를 꿈꾸고 있지만, 내부에서 제어할 능력은 없어 보인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민주와 애국’(오구마 에이지 지음/돌베개)은 전쟁 전후를 가로지르며 변천해 온 일본 현대 사상의 언어들을 분석해 사실상 단절적인 변화가 없이 패전 이전의 사고들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일본의 1인당 국민총생산이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된 1955년 앞의 전후를 ‘제1의 전후’, 뒤를 ‘제2의 전후’로 부른다. 제1 전후의 ‘유동적’ ‘불확실’은 제2 전후의 ‘질서’ ‘안정’이라는 말에 상대되지만, ‘개혁의 가능성’과 개혁 열기가 식어버린 ‘구질서로의 복귀’로도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일본은 기이하게도 여전히 ‘건국 ○○년’을 취하지 않고 ‘전후 ○○년’이란 말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한다. 저자는 “일본 정부와 정권 내부에 새로운 체제를 환영하지 않은 사람이 많았던 것이 한 가지 이유”라면서, 이를 “그런 시대구분을 나타낼 말이 없다는 ‘사태’”라고 우려했다. 미군 점령기에 이루어진 신헌법 제정, 농지 혁명, 군대와 재벌의 해체 등 개혁은 ‘위로부터’ 강제된 혁명이었으며 개인, 자유, 권리, 민주주의 같은 사상도 민중의 요구를 통해 성취되지 못하고 미국에 의해 수혜를 주듯 던져진 것이다. 패전 이후 피해국에 대한 사죄와 과거청산 없이 정치적·군사적 갈등을 조장하는 현재의 일본 사회와 정부는 70여 년 전 패전 직후 일본에서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천황제의 연속은 패전 전후 일본의 연속을 의미한다. ‘잘못이 없으니 청산할 것이 없다’는 논리로 연결돼 대외적인 과거청산의 부재로 이어졌음은 물론 일본 사회의 기억마저 왜곡하고 윤색했다. 이는 점령군인 미국과 일본 보수의 타협에서 가능했다. ‘천황의 전쟁 책임’(박진우 지음／제이앤씨, 2013)은 전범인 히로히토의 1989년 사후 공개된 자료들을 통해 천황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전쟁지도에 관여했는지 밝히며, 천황의 전쟁 책임을 은폐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을 분석한다. 숙명여대 일본학과 교수인 저자는 천황의 전쟁 책임을 일본 국민이 어떻게 인식해 왔는지, 그 인식의 배후에는 천황의 전쟁 책임에 대한 자각적인 의식화를 가로막는 은폐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용해 왔는지 일본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파헤친다.

일본 소장 정치학자의 ‘영속패전론’(시라이 사토시 지음／이숲)은 바로 천황제 존속이 일본을 영원한 패전국으로 스스로 남게 된 발판으로 본다. 미국은 일본의 천황제를 인정하고 전범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었으며, 전전 보수 지배 세력에 전후 일본의 통치를 맡겼다. 일본은 2차 대전 패배 이후 모든 책임과 ‘패전’조차 은폐하는 ‘영속패전’ 상태라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공산주의를 막아낼 최후의 방어선으로 ‘미국의 파트너’라는 환상, ‘대미종속’(對美從屬)이었다. 일본은 미국의 보호 속에 고도 경제성장을 구가했고, 한국과 중국에 대한 사죄와 반성은 외면했다.

얼마 전 출간된 ‘사쿠라 진다:전후 70년, 현대 일본을 말하다’(우치다 다쓰루, 시라이 사토시 지음／우주소년)는 바로 ‘영속패전론’의 전제하에 전범 세력의 후예인 아베 정권이 들어서고 일본 사회에 내셔널리즘과 우경화 움직임이 거세지는 분위기를 분석한 대담집이다. 아베 세력은 그토록 열망하는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 곧 스스로 택해왔던 ‘영속패전’을 끝장내는 것을 평화헌법 9조의 개헌으로 이루려 한다. 한국이나 중국과의 영토 분쟁을 쟁점화해서 군사적 충돌을 유발해 자연스럽게 평화헌법 9조를 무력화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중국과 한국이 일본이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 국력이 커졌지만 상대적으로 수월한 한국을 상대로 시비를 거는 게 작금의 아베 정권의 대한 무역규제로 볼 수 있다. 저자들은 미국이 아베처럼 전쟁을 하는 것보다 아시아에서의 군사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쪽이 돈이 더 되기 때문에 일본의 개헌은 쉽지 않으리라 진단한다.

이번 주 출간된 ‘한반도 분단의 기원’(오코노기 마사오 지음／나남)은 한반도 분단이 일본의 현대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여전히 현재적이라는 데 주목한다. 저자는 지금껏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1차 자료를 풍부히 사용해 분단의 역사적 과정을 치밀하게 보여주면서 ‘독립을 하려면 분단이 불가피하고, 통일을 하려면 독립이 불가능한’ 당대 한반도의 역설에 주목한다. 이 책에서 얻는 각성은 지금 우리가 70여 년 전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보기 드문 성취를 이뤘으나 남북분단 상태와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조는 당시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남북 분단과정은 여전히 살아있는 역사다.

이번 주 나온 ‘대세를 따르지 않는 시민들의 생각법’(우치다 타츠루 지음／바다출판사)은 일본 시민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일본의 반지성주의를 경계하고, 평화헌법을 폐기하려는 아베 내각을 향해 ‘독재’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던 저자는 현재 일본 사회가 강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고 진단한다.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어떤 이유인지, 어떤 형태인지, 대응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는 정치담론이 유행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개방과 경제대국화, 한국의 성장, 남북관계의 호전 분위기 속에서 일본은 출구를 찾지 못하는 분열적 상황이다. 일본 우익은 전후 체제 이전으로의 복귀를 유일한 출구로 여긴다.

저자는 아베에 대해 “너무나도 지성이 없기 때문에 도저히 논리적일 수 없거나, 아니면 국민이 알아듣도록 정책 결정의 이유를 얘기하면 지지율이 내려갈 것을 알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라면서, “어느 쪽이든 이런 총리대신을 두었다는 것은 일본 국민의 역사적 불행”이라고 말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