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북 구미 봉곡초 5학년 학생들이 지난달 17일 교내 강당에서 열린 학교 공간 개선을 위한 발표회에 참여해 황석수 교장에게 ‘학교 내 빈 공간을 활용한 놀이 공간 구상안’을 설명하고 있다. 봉곡초 제공
구미 봉곡초교 황석수 교장
5학년엔 운동장개선 프로젝트
아이들이 스스로 모형 만들고
친구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학생생활지도· 민원 등 도맡고
제자와 텃밭· 햄스터 사육체험
학부모·교사‘교장 재발령’요구
경북 구미의 봉곡초 황석수(55) 교장은 ‘학교 자랑 좀 해달라’고 묻자 매월 한 차례씩 진행되는 ‘프로젝트 수업’을 꼽았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삶과 연결된 문제를 찾아내, 친구들과 공유하고 함께 해결하도록 하는 봉곡초만의 수업 방식이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교과 지식을 전달하는 보통의 수업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특히 5학년 학생들은 현재 6개월 장기과제인 ‘놀 권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연말이면 봉곡초 운동장에 5~6학년 학생들도 즐길 수 있는 놀이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5학년 학생들이 “전교생이 700명에 달하는데 학교 운동장 놀이 시설은 저학년 키에 맞춰 있어 사용하기가 어렵다”며 자신들이 원하는 운동장 모습을 학교에 제안한 결과다. 학생들이 학교의 변화를 주도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2월 5학년 교사들이 올해 교육과정 속에 ‘아동 권리 교육’을 포함하면서 시작됐다. 구미초는 경북 지역 최초 ‘혁신학교’로, 다른 학교와 달리 획일적인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특성화된 교육이 가능하다. 이에 학생들이 직접 유엔 아동권리 협약에 명시된 ‘아동 권리’를 인식하고, 자신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 필요한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프로젝트 수업을 넣은 것이다. 이를 위해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북아동옹호센터와 업무협약(MOU)도 맺었다.
“우리에게 권리가 있다고요?”라고 의아해했던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이 있는 학교, 그중에서도 운동장이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꼽혔다. 자신들이 원하는 학교 모습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모형으로 만들어내기도 하고, 친구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해 보이기도 했다. 학교 구조물을 바꾸는 데에는 예산 및 법적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전교생과 학부모를 초대해 자신들이 완성한 ‘운동장 개선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자리도 가졌다. 이 과정에서 어른들은 ‘든든한 지원자’가 될 뿐이었다. 지역 내 건축디자이너와 건축사 등을 모셔,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건축 용어’로 바꾸는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황 교장은 “법적 한계까지 고려하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매우 놀랐다”며 “인내심을 갖고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는 성취감, 도전의식들이 아이들을 더욱 성장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봉곡초의 이러한 프로젝트 수업이 가능했던 건 황 교장의 역할이 컸다. 그는 교사들이 다양한 커리큘럼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업무를 줄여왔다. 교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학생생활지도와 학부모 민원, 부적응 학생 상담 등도 도맡아 하고 있다. 교사들이 원하면 프로젝트 학습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곤충프로젝트나 생태 프로젝트는 사실상 전담 교사가 됐다. 학교 내 텃밭, 수중생태장, 동물농장, 희귀식물원, 달팽이사육장, 도마뱀사육장, 지렁이사육장, 햄스터사육장 등은 황 교장과 아이들이 함께 만든 결과물이다. 교장실 문턱도 높을 리 없다. 매일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하이파이브’를 건네는 것이 그의 일과 중 하나다. 교장실은 늘 아이들로 붐빈다. 교장공모제를 통해 지난 2015년 봉곡초에 부임한 황 교장의 임기는 오는 9월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 “교장 선생님이 없인 안 된다”며 재발령을 요구한 상황이다.
황 교장은 진정한 ‘학교의 민주화’는 “학생, 학부모, 선생님들이 최고의 서비스를 받는 것”이라며 “그것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교장의 역할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학교가 ‘뛰어난 아이들’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지만, 지금은 학생 한 명 한 명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미래 인재’로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다름’의 관점으로 아이들에게 접근하고, ‘넌 뭘 잘하니?’라는 질문에 학생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학교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조만간 최근 우연히 만난 30여 년 전 제자와 등산에 나설 계획이라고 전했다. 당시 4학년 학생이었던 제자는 졸업 때까지 한글을 제대로 떼지 못할 만큼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가정환경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퇴근 후 자주 가정방문을 했을 만큼 애정을 가진 학생이었다고 한다. 황 교장은 “30대 청년으로 성장해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제자를 보니 교사로서 보람을 다시 한 번 느꼈다”며 “봉곡초 학생들도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 달려오는 해결사’로 저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정아 기자 jayo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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