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경제전쟁>“승자없는 게임”… 文도 발언수위 ‘변화’

- 국민경제자문회의 주재

“고도화된 국제적 분업체계속
우위부문 무기화땐 질서훼손”
외교 협상여지 남겨뒀다 판단

李총리도 “외교적 노력 강화”

문재인 대통령은 8일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며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 조치를 하루속히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전반적인 발언의 수위는 극일(克日)까지 강조했던 지난주와 비교해 톤다운됐다. 일본이 전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한 시행령을 공포했지만 추가 보복 조치를 내놓지 않은 데다 수출규제 품목 3개 중 하나에 대한 수출을 허가하는 등 일본의 유화 제스처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변명을 어떻게 바꾸든 일본의 조치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이라고 밝히는 등 일본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승자 없는 게임”이라고 한·일 ‘경제전쟁’ 양상을 진단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은 당초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이유로 내세웠다가 이후 전략물자 수출 관리 미비 때문이라고 그때그때 말을 바꿔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며 “일본의 조치는 경제보복으로 민주주의 대원칙인 ‘삼권분립’에도 위반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은 국제적으로 고도의 분업 체계 시대로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국제 자유무역 질서가 훼손된다”며 “결국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게 될 것이고 일본의 기업들도 수요처를 잃는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측 수출규제 주장의 부당성에 대한 논리적 비판으로, 다자외교에서 우리 정부가 내세우는 핵심 ‘무기’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일본 측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지만 발언의 수위 자체는 사실상 ‘대국민 담화’ 형식으로 진행된 2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과 비슷하거나 낮아졌다는 게 대체적 평이다.

이낙연 총리도 이날 오전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 공격은 세계지도국가답지 않은 부당한 처사이며, 자유무역의 최대 수혜국으로서 자기모순”이라며 “일본의 경제 공격이 원상회복되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총리는 일본 정부가 전날(7일) 화이트리스트 제외 시행세칙을 발표하며 기존 품목 외 추가로 규제 품목을 지정하지 않은 것과 수출규제 3대 품목의 한국 수출을 처음으로 허가한 사실을 소개했다. 이는 경제보복 조치 후 일본 측에서 처음으로 나온 ‘전향적’인 조치로, 경제전쟁 양상으로 번지는 상황에 대한 양국의 부담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과 이 총리가 일본의 행태에 대해 강하게 지적하면서도 숨 고르기에 나서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일본이 향후 ‘전향적’인 태도로 나올 경우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김상조 정책실장은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앞서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5대 그룹 부회장급 경영인들과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은 이 자리에서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와 관련한 업계의 목소리를 듣고 지원책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병기·이은지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