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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후여담 게재 일자 : 2019년 08월 09일(金)
박서보 화백 ‘修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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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위원

“그림은 내 수신(修身)의 도구다. 나를 비우기 위해 그린다. 스님이 목탁을 치며 하루 종일 염불하는 것과 같이 내가 무심하게 수없이 반복해 선(線)을 긋는 것도 그 선과 선 사이의 골을 다스리는 것이다.” 흔히 ‘단색화 거장’ ‘한국 현대미술의 변천을 선도한 화가’ 등으로 불리는, 본명이 박재홍인 박서보(88) 화백의 말이다. ‘손의 여행’으로도 불리는 ‘묘법(描法)’을 통해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그는 ‘누구와도 닮지 말고, 자신만의 공식과 언어를 창조할 것’을 좌우명 삼아 ‘변화하면서 추락하지 않는 예술’을 평생에 걸쳐 추구해왔다.

그는 모든 정형(定型)을 부정하고 즉흥성을 강조하는 미술인 앵포르멜의 한국 최초 작품 ‘회화 No. 1’을 1957년에 발표했다. 6·25전쟁으로 허물어진 서울 종로 거리를 보며 착상했다고 한다. 낡은 군대용 천막 조각을 캔버스 삼아 물감을 뚝뚝 흘리기도 하고 흘러가게도 하면서 전쟁이 불러온 불안과 고독 등을 나타냈다. 그 후로도 그는 ‘원형질’ ‘허상’ ‘유전질’ 등 연작마다 다른 양식과 미학을 창출했다. 1969년 인간의 달 착륙을 앞두고 무중력을 화폭에 담기 위해, 물감의 무게를 최소화하는 ‘스프레이 분사’로 그린 1968년 연작 ‘비키니 스타일의 여인’도 그 일환이었다.

그가 ‘묘법’ 연작을 내놓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다. 세 살이던 둘째 아들이 형 공책의 작은 네모 칸 안에 연필로 글자 ‘닭’을 적어넣다가 바깥으로 획이 삐져나오자 짜증을 내며 자신이 쓴 글자들을 마구 지우듯이 선을 그어대는 모습을 목격하고 무릎을 쳤다고 한다. 빈 캔버스에 유백색 물감을 칠하고 연필로 선을 반복해서 그은 초기 묘법 작품이 탄생한 배경이다. 캔버스에 바른 닥종이를 손으로 문지르거나 긁어서 밀어붙이는 행위를 반복해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한 중기 묘법, 손의 흔적을 없애고 막대기나 자 등으로 일정한 간격의 고랑처럼 파인 면들을 만들어 풍성한 색채까지 드러내는 후기 묘법 등으로 이어졌다.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160여 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회고전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지난 5월 18일 개막해 오는 9월 1일까지 계속된다. “디지털시대에는 그림이 관객의 스트레스를 빨아들여 편안하고 안정감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그의 말도 체감하게 해주는 작품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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