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학문·예술은 농사처럼 농축된 시간 필요… ‘쟁이정신’ 가져야”

김병종서울대 미대 명예교수

대학은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씨 뿌리고 진득하게 기다려야
‘서울대 농부론’도 그런 맥락

日엔 미술관 2만 곳 넘는데
韓 100곳 될까말까 한 실정
예술 홀대받고 저변 좁으니
신진작가들 작품 걸 곳 없어

英·中·日 전시회 등 가보니
정체성 가미된 작품 빛 발해
예술분야 ‘전통’교육 급선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 과천시에 있는 작업실에서 김병종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는 40여 년간 교수로서 지켜본 대학 미술 교육의 현실, 그리고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 한국화의 정체성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줬다. 신창섭 기자 bluesky@

“문제는 미술대학을 나온 청년 작가들이 열심히 작업해도 그 작품들을 수용할 공공기관이나 미술관이 태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김병종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는 우리 미술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첫 말문을 열었다. 그는 화가이자 동시에 문인이고 인문학자다. 서울대 재학 시절 전국 대학생 미전에서 대통령상을 받고 각종 관·민전에서 수상하며 두각을 드러내며 화가의 길을 걸었고 동시에 주요 일간지 두 곳의 신춘문예에 당선한 문인이다. ‘바보 예수’ ‘생명의 노래’ 연작 등으로 한국화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이면서 20여 권의 저서를 펴내는 등 문필가로서도 필명을 날렸다. 또한 젊은 한국화 작가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중국회화연구’(서울대 출판부) 같은 명저로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 같은 명성에 비해 교육자로서의 그의 면모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김 교수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서울대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김 교수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 대해 말하는 도중 일본의 예를 들며 2만여 개의 미술관이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수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부러움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제자들에 대한 사랑과 교육자로서의 신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는 또 한국화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한국화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한국화를 ‘한국에서 그려진 동양화’ 정도로 알고 있다.

김병종 교수를 지난 6일 경기 과천시 작업실에서 만났다. 40여 년간 교수로서 대학 예능 교육의 현실, 그리고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 한국화의 정체성 문제를 그는 하나하나 짚어줬다. 그리고 ‘바보 예수’로부터 ‘생명의 노래’ ‘송화분분(松花紛紛)’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도 담담하게 들려줬다. 작업실에는 최근 작업한 ‘송화분분’ 작품들이 벽을 따라 도열해 있었다. 봄바람을 따라 흘러가는 송홧가루의 흐름을 화폭에 옮긴 것들이었다. 대부분의 작품에 ‘분분히’ 흩날리는 송홧가루가 그림 속 실체들의 배경처럼 깔리며 화폭을 지배하고 있다.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열며 다시 새로운 주제로 대작 ‘송화분분 시리즈’를 선보이셨는데 여기 있는 작품들이군요. 국내외 전시 때마다 유난히 대작을 많이 제작하시는 것 같습니다.

“대작을 할 때면 긴장과 설렘이 두 배는 되는 것 같아요. 맹수 앞에 선 듯한 흥분상태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그런 맛에 끌려서이기도 하지만 어떤 작업은 소품으로 풀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나아트 전시가 서울대 정년 퇴임 후 첫 개인전이었죠. 지난해 서울대 정년 퇴임식 때 대표 연설에서 ‘서울대 농부론’을 강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인지요.

“대학이 시류나 거대 담론에 휩쓸려 다니기보다 씨 뿌리고 열매를 걷는 농부처럼 각 분야에서 진득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장인 정신의 미덕을 보이자는 뜻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적대하고 폄훼해 마지않는 일본만 하더라도 어느새 노벨상이 30개 가까이나 되고 2014년 이후에는 매년 상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도 어쩌면 한 가지에 끝을 보려는 그들의 학문적 오타쿠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학문 영역을 등수로 정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요.”

이어서 그는 “속도주의와 성과주의, 물량주의 파고가 대학까지 집어삼키고 있다”며 “학문적 성과와 예술적 결실은 농사짓는 것처럼 농축된 시간이 필요하며, 조급하게 몰아세워선 안 된다. 후학들도 요란한 것에 눈길을 빼앗기지 말고 ‘쟁이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퇴임식에서 정부로부터 녹조근정 훈장을 받으며 “근 40년간 근무하며 나에게는 피부처럼 육친화된 서울대 교수라는 옷을 벗게 됐다”면서 “대학과 동문, 제자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고 감사를 표했다. 정년 퇴임을 앞두고는 서울대 미술관에서 ‘바보 예수에서 생명의 노래까지’라는 타이틀의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다.

―정년 퇴임을 하면서 반평생 동안 본인이 공부한 대학에서 또 제자들을 가르쳐온 만큼 소회가 남달랐을 것 같았습니다. 특히 예술 교육자이셨는데 그 분야의 교육은 어떻습니까.

“얼마 전 도쿄(東京)의 다케우지 미술상 시상식에도 다녀오고 몇 년 전에는 중국의 루쉰 미술대학, 영국의 브라이턴 예술대학 전시 심사에도 참여했는데 예컨대 예술가적 상상력이 기술이나 자본과 연결될 때 큰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에 고유한 정체성이 가미되면서 더욱 빛을 발하고요. 앞으로는 세계 각국 사이의 문화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 같습니다.”

세계 각국 간의 문화경쟁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에게 무역전쟁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일본의 문화적 경쟁력에 대해 물어 봤다.

―문화 예술 분야에서 우리와 일본의 경쟁력을 굳이 비교한다면 어떻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요즘 분위기가 정말 안 좋습니다. 그래도 질문하셨으니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건축 부문만 해도 일본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벌써 여덟 명이나 받았습니다. 특히 ‘건축의 꽃’이라는 미술관 설계를 많이 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기도 하고요. 사실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우리는 문화적으로 일본의 ‘스승 국가’입니다. 일본의 국보 중에는 반가사유상이나 이도다완 등 그 원형이 우리 것인 게 다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 이 현상이 역전된 것 같아요.”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먼저 저변의 확대를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축구 강국 브라질이나 멕시코에 가면 수많은 축구장을 볼 수 있듯이 일본은 2만 개 가까운 미술관에, 1만 개가 넘는 박물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대로 된 미술관이 100개나 될까 말까 한 정도인데요. 상당수의 서구 인상파 작품들뿐 아니라 조선 민화나 고려 불화 또한 그 대부분이 일본에 가 있는 실정이죠. 우리가 예술을 홀대하는 사이에 이렇게 된 것이죠.”

―선생님은 화가이자 문필가 그리고 미술운동가이기도 해서 1980년대에 ‘동방의 빛’이라는 전시를 조직해 유럽을 중심으로 순회전시를 하기도 하셨죠.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동방의 빛 1과 2’를 조직해 40여 명의 한국화 작가 작품을 선보이고 강연도 했습니다.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한 작은 시도들이었습니다. 현지 언론들이 잘 소개해 줘서 크게 성과를 거뒀지요. 그때만 해도 동서 유럽을 돌아보니 우리 미술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어요. 강연하고 수묵 시연회를 계속했더니 어느 나라 대사관에서는 자기들이 3년 동안 할 일을 우리가 3일에 했다고 하더군요.”

―서울대에서는 직접 ‘미술의 이해’라는 교과목을 만들어 강의하셨는데 매년 강의를 듣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학생이 몰려들었다고 들었습니다.

“1983년부터였습니다. 어찌 보면 그때가 예술교육의 벨 에포크(belle epoque·호시절)라고 할 수도 있어요. 많은 학생이 몰려 대형 강의실을 구하느라고 매번 진땀을 냈죠. 지금은 다양한 매체에서 미술강좌들도 생기고 해 상황이 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비전공 학생들이 예술교육에 목말라 하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지요.”

김 교수가 198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대 비(非) 미술전공생을 대상으로 개설해 강의한 ‘미술의 이해’는 유명했다. 당시 미대에서는 얼마나 수강하겠느냐며 주저했는데, 한 학기 400~500명씩 10여 년 동안 1만 명 가까이 수강한, 깨지지 않는 비공식 기록을 가지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병종 교수는 인문학자로서도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김 교수는 젊은 한국화 작가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중국회화연구’를 펴내 한국출판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서울대 미술관이 전시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때 관장도 맡으셨지요.

“당시는 건축 이전의 단계여서 전시는 없었습니다. 대신 과연 서울대에 미술관이 필요한가 같은 담론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은 대학 문화상징의 하나가 됐지요. 100여 년이 된 도쿄 예술대학 미술관에 비하면 출발단계이지만 서울대에서 또 하나의 유리천장(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을 깬 셈입니다.”

―미대 학장을 하실 때는 실기 부문 박사과정 개설에도 애를 쓰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역시 주관적인 창작 세계를 객관적으로 학문적인 성과로 인정할 수 있느냐로 장장 10여 년을 끌었던 문제입니다. 작고하신 하동철(1942~2006) 학장께서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앞으로의 한국미술에서 짚어봐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전통 교육을 잘 다져야 한다고 봅니다. 중국만 하더라도 어려서부터 지필묵을 다루도록 하고 있어서 소위 ‘국화(國畵)’의 인구가 엄청납니다. 자기네 근현대 작품들 또한 그 가치를 견고히 하고 있고요. 앞서 건축 얘기를 했지만 일본은 건축에서 전통적 일본 미학을 현대 미학에 접목해 꽃피우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부분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전통과 정체성을 다져서 그 외연을 확장하고 재창조하는 것이 예술교육의 급선무입니다. 정년퇴직 후에도 석·박사 과정의 강의는 계속하고 있는데 매번 강조하는 사항도 그런 점입니다.”

대부분의 미술애호가가 한국화란 지필묵으로 그린 수묵화를 이르는 것인지, 아니면 한국에서 그려진 동양화를 말하는 것인지 혼동하고 있다. 그 틈새에 서구 미니멀리즘 등이 밀려들며 근대미술사는 공백으로 남겨진 채 서구 미술 일변도로 흘러갔다.

실제로 회화의 국가별 명칭을 돌아보면 중국은 국화(國畵), 일본은 일본화(日本畵), 북한은 조선화(朝鮮畵)라고 해 그 가치를 자국의 이름을 붙여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한국화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실정이다.

―침체에 빠진 한국화의 발전 방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침체라고 하기보다 그 특성상 변화의 속도가 좀 느린 거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중국화, 일본화의 주요 교육기관인 베이징(北京)의 중앙미술학원이나 도쿄 예술대학 등과 교류를 하며 전시 및 세미나 등을 함께하는 것도 방안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한국화의 정체성을 말할 때 많은 분이 재료를 언급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정신의 문제라고 봅니다. ‘한국적 미의식’이 담겨야 한국화입니다.”

―이제 작품에 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1980년대에 ‘바보 예수’ 연작으로 큰 화제를 모으셨고, 이어 ‘생명의 노래’를 제작하셨습니다. 먼저 주제를 정하고 작업하시는 스타일인가요.

“그건 아니고 작품의 주제가 바뀔 때마다 나름의 절실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보 예수’ 연작을 발표하던 1980년대에는 우리 사회가 연일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국면을 보이고 있을 때여서 대학에도 편할 날이 없었죠. 어느 날 최루탄 연기 자욱하던 저녁 캠퍼스를 내려오다가 2000년 전 로마 군대와 유대 민중의 대치 속에서 홀로 골고다로 향했던 예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분이 여기 오신다면 무슨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하고요. 바보 예수는 그 상상력의 소산이었습니다.”

―막상 전시를 하면서 거센 저항과 비판에 맞닥뜨린 것으로 아는데.

“신성 모독이라는 비판이 컸습니다. 더구나 격조를 중시하는 전통 문인화 쪽 아카데미즘에서는 주제 자체를 이단시했고요. 그래서 독일 등 외국에서 전시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서울대 미대 역사서를 쓰게 됐어요. 서울대 미대는 일본 도쿄예술대 100년사 같은 역사 정리가 없었거든요. 그렇게 미대 역사서를 쓰다가, 마감에 쫓겨 학교 앞 고시촌으로 들어가 집필을 했는데, 그만 연탄가스에 중독돼 사경을 헤맨 적이 있어요. 연거푸 큰 수술을 하게 되고 병원에도 오래 입원해야 했죠. 1989년 늦은 가을 병원에 들어갔다가 다음 해 이른 봄에 퇴원해 보니 세상이 온통 창조주의 미술관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명의 노래’ 연작이 발표된 사유도 궁금합니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한 후 작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눈길을 주게 됐죠. 서울대 교수 아파트에 살던 때였는데 2월 말의 어느 날 관악산에 오르다가 두꺼운 동토를 밀고 올라온 노랗고 작은 꽃 한 송이가 파르르 떨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눈물이 핑 돌면서 그 순간 ‘생명의 노래’라는 주제가 번쩍 떠올랐죠. 꽃도 나무도 심장이 있고 눈이 있다. 그들은 언어가 아닌 눈짓으로 대화한다. 이런 생각들이었죠.”

평론가들은 김 교수의 1980년대 ‘바보 예수’ 연작에서는 인간의 순수와 원초적 고뇌가 관통하는 화면을, 1990년대 ‘생명의 노래’의 연작에서는 어려움 속에서 찾아낸, 세상 가득한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독일의 미술평론가 에크하르트는 “김 교수가 현대미술의 속성을 무거운 주제와 정신으로 통제하고 있으며 가슴을 울리는 따스함과 휴머니즘을 회복시키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난 4월 가나아트 전시에서 ‘송화분분’ 시리즈를 선보였고 투병 중이신 이어령 선생님께서 전시를 보신 소감을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밖에서 생명을 그리다가 이제는 생명 속으로 작가가 풍덩 빠져들어 갔다.”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재 암 투병 중이신 이어령 선생님과는 지난 2014년 5월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영인문학관에서 ‘생명 그리고 동행(同行)’이라는 타이틀로 2인전도 함께했어요. ‘생명’을 화두로 이어령 선생님의 글과 제 그림을 어울려 선보이는 전시였습니다. 강연이나 방송을 통해 제 작품을 잘 소개해 주셨습니다. 당시 2인전에서도 축사에서 선생님은 ‘생명의 노래는 생명이 풍성할 때는 나오지 않는다. 생명이 고갈돼 갈 때 생명의 노래가 나온다. 그래서 생명의 최소 단위에 주목하는 김 화백의 그림이 놀랍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가나아트에 전시됐던 작품들에 대해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해 주시죠.

“이동하는 생명의 최소 단위인 송홧가루에 주목해 탄생한 작품들이 걸렸습니다. 우성 교배를 위해 때로는 몇 ㎞씩 수꽃이 날아간다고 하는 한 식물학자의 강의를 듣고 착상이 떠올랐던 겁니다. 만물에는 지성이 있다는 인도의 의사 디팩 초프라의 글도 생각이 났고요. 질주하는 과학 만능의 시대에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싶었습니다.”

김 교수는 신작들에 대해 “자연과 하나됐던 ‘유년의 소환’ 그리고 짙은 문학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며 “낙락장송 아래에서 잠들고 깨며 경이롭게 봤던, 신비한 노란색의 이동을 화면 속에 다시 불러내어 그 생명의 미립자 속에서 발견한 놀라운 비의(秘意)를 자전적 그림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미술사가 전영백(홍익대 교수) 씨는 “김병종의 세계에는 안착하는 범주가 없다. 눈길을 끄는 것은 역사에 대한 실존적 고민에 천착했던 1980년대, 1990년대와 달리 노란 가루를 가득 담은 화면에는 그 모든 분투를 되돌아보는 회고의 사색과 절제의 기운이 온화하게 녹아 있다”며 “소나무가 내보낸 생명의 씨앗이 화면의 재료와 내용”이라고 평론 글에 쓰기도 했다.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계획을 세워놓고 일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서울대 농부론’에서 말한 것처럼 스스로 예술과 글쓰기의 농부가 돼 게으르지 않게 살아야겠지요. 아울러 우리 한국화의 저변 확대와 세계화 방안을, 다양한 국제교류나 전시 세미나 등을 통해 꾸준히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20여 권의 저서와 ‘화첩기행’ 등에서 알 수 있듯 김 교수는 화단에서 소문난 글쟁이다. 평소 그는 “그림을 그리다 보면 허해져서 문자의 세계로 돌아오고, 문자의 세상에 지쳐서 그림으로 돌아가곤 한다”는 말을 주변 지인들에게 하고는 했다. 그리고 세계 각국의 풍물을 찾아 돌아다니는 여행 마니아이기도 하다.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화첩기행’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얼마 전부터 그는 이와 관련, 또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도시 70여 곳과 그와 관련된 인물에 대한 생각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화첩기행이 사람 중심의 기록이었다면, 새로 준비 중인 원고는 수많은 사람이 살다간 도시에 대한 기록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가이자 문인 그리고 인문학자인 그의 역량이 또 한 번 화·문(畵·文) 양 날개를 타고 힘차게 비상할 것을 기대해 본다.

인터뷰 = 이경택 문화부 부장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