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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효정의 에로틱 시네마 게재 일자 : 2019년 08월 20일(火)
‘낮잠’처럼 몽환적인… 귀신의 性的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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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에스타

1987년에 나온 영화 ‘씨에스타’(사진)는 ‘나인 하프 위크’와 ‘와일드 오키드’의 시나리오 작가 퍼트리샤 루이지애나 놉과 공포영화를 전문으로 만들던 메리 램버트 감독이 참여한 여성 팀 프로젝트다. 1980년대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거의 모든 에로티시즘 테마의 영화를 남성 감독들이 연출해왔던 사실을 고려하면 주목할 만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영화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스페인의 공항 근처 수풀 속에서 깨어나는 클레어(엘렌 바킨)를 비추며 시작된다. 클레어의 드레스에는 여기저기 피가 묻어 있으나 상처가 없어 그는 자신이 누군가를 살해했다고 생각한다. 기억을 모두 잃은 클레어는 정처 없이 떠돌며 기억을 더듬다가 자신이 유명 스턴트우먼이었으며 목숨을 건 쇼를 앞두고 옛 연인 어거스틴(가브리엘 번)을 만나러 스페인에 와있음을 알게 된다.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자신이 처음 도착했던 호텔로 가던 도중 클레어는 파티가 열리고 있는 한 갤러리에 들어가게 된다. 갤러리에서 만난 화가 키트(줄리언 샌즈)와 낸시(조디 포스터)는 위험에 처한 클레어를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두 사람과 함께 호텔을 찾는 과정에서 클레어는 더 많은 것을 기억해낸다. 어거스틴을 찾아가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했지만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한 상태인 그가 거절했던 것. 그러나 떠나기 직전 어거스틴이 시에스타 시간에 찾아오면 밀회를 갖겠다는 약속을 했던 사실이 메아리처럼 들리기 시작하면서 클레어는 지난 3일간의 행적을 조합할 수 있게 된다. 여정의 끝에서 클레어는 가장 중요한 기억을 떠올린다. 클레어는 어거스틴이 좋아하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그의 오두막에 갔고, 그들은 모두가 잠이 든 시에스타 동안 섹스를 했다. 앞으로 만날 수 없다는 걸 아는 그들은 서로를 집어삼키듯 격렬한 섹스를 하고 잠이 들었다. 그러나 시에스타가 끝나갈 때 즈음 어거스틴의 부인 마리(이사벨라 로셀리니)가 오두막으로 들어와 가지고 있던 칼로 클레어를 찔렀던 것이다. 결국 드레스에 묻어 있던 피는 클레어의 것이었으며 그는 며칠 전 이미 시체로 공항 근처에서 썩어가고 있던 것이었다.

▲  김효정 영화평론가
‘씨에스타’는 ‘식스센스’(1999)가 나오기도 훨씬 전에 귀신을 주인공으로 한 파격적인 영화다. 그러나 영화의 반전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주요 플롯이 주인공의 사건을 추적하는 미스터리에 기인하고 있음에도 영화의 중추가 사건의 단서가 아닌 클레어의 성적 욕망을 통해 보이는 에로티시즘에 있다는 점이다. 가령 클레어가 처음 묵었던 호텔을 찾으러 가는 중 만나게 되는 택시운전사는 원하는 장소에 데려다주는 조건으로 섹스를 요구한다. 클레어는 그의 요구를 거절하고 택시운전사는 그를 강간한다. 그러나 이 강간 장면은 클레어의 환상일 가능성이 크다. 이 장면에서 지나치게 밝은 하얀색 톤이 사용된 것도 그렇거니와 강간이 일어나는 저택은 이야기의 전후 맥락과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또한 택시운전사라는 인물이 영화 전반에 걸쳐 시도 때도 없이 클레어의 여정에서 나타나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클레어의 기묘한 성적판타지를 그려낸 것임이 거의 확실해진다.

클레어의 성적 환상과 관련해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또 하나의 시퀀스는 키트와 낸시가 함께 등장하는 유사 ‘스리섬’ 에피소드다. 파티가 끝난 후 키트와 낸시는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클레어를 옆에 두고 섹스를 한다. 이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며 클레어는 어거스틴을 생각한다.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어거스틴의 손길을 떠올리는 순간, 그와 나눴던 시에스타 동안의 정사를 기억해낸다. 그들의 섹스가 끝날 즈음 클레어의 환상 속 어거스틴도 절정을 지난다.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제목이 뜻하는 ‘낮잠’만큼이나 나른하고 몽환적이다. 영화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클레어가 시에스타에 꾸었던 꿈일 수도, 혹은 그가 평소에 가졌던 판타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성을 통해 여성이 성장하는 스토리를 만들어왔던 놉의 ‘여성 에로티시즘’ 서사와 여성 호러 감독 램버트의 귀신 장르 조합이 전대미문의 기묘한 영화를 만들어낸 건 사실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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