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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His Story 게재 일자 : 2019년 08월 21일(水)
“몸 돌리기도 힘든 비좁은 녹음실… 수천번 들락날락 11곡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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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팅캡에 빨간색 셔츠를 입은 김도향이 그의 오피스텔 작업실에서 통기타를 들고 새 앨범 타이틀곡 ‘쓸쓸해서 행복하다’를 연주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 14년만에 새앨범 ‘인사이드’로 컴백 김도향

어릴때 1년간 영화 1000편 봐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 진학뒤
학비 위해 카바레서 노래 시작
1970년 데뷔했지만 곧 해체돼
대마초 파동 겹치며 방황 거듭

우연한 기회에 광고음악 시작
‘아카시아 껌’등 3000곡 작곡
1990년대엔 명상음악도 손대
투자자 잘못 만나 다시 빚더미
2000년 무렵 내 노래로 돌아와

늙는 것은 병이 아니라 ‘진화’
‘Old & Wise’가 필요해지는데
음악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줘


[인터뷰 = 김인구 문화부 차장]

헌팅캡, 하얀 구레나룻, 통기타, 그리고 서정적인 노랫말에 끓는 듯한 보이스. 가수 김도향(74)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미지들이다. 1970년에 데뷔해 내년이면 50주년을 맞이하는 김도향을 여름이 한창 깊어가던 이달 초 그의 작업실 겸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벌써 20년도 넘게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오피스텔을 사용하고 있다. 15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김도향 음악의 원류 같은 곳이다. 이번 새 앨범 ‘인사이드(Inside)’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2005년 발표한 ‘브레스(Breath)’ 이후 14년 만이다.

‘인사이드’에는 김도향 특유의 구수하면서도 달관한 듯한 음악적 색채가 담뿍 배어 있다. 타이틀곡 ‘쓸쓸해서 행복하다’부터가 그렇다. 서정시를 연상시키는 역설적인 표현에 유장한 멜로디를 입은 게 마치 재즈 같다. 그는 “편안한 음악, 포크 재즈로 불러달라”고 말했다.

▲  1인용 녹음실 속 김도향.

“기다리다 난 다 늙어 버렸어/ 기다리다 난 다 놓쳐 버렸어∼/ 가는 세월이 그리워서/ 쓸쓸해서 참 눈 시리다/ 여기까지가 나의 끝인가∼/ 살아 있어 느껴지는/ 이 순간이 참 생생하다∼/ 흰구름 두둥실 떠가고/ 흐르는 강물은 굽이굽이 돌고/ 내 마음이 텅 비워지니∼쓸쓸해서 난 행복하다.”

앨범엔 총 11곡이 담겨 있는데 다 이런 식이다. 제목만 들어도 무엇을 말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내가 내껀가’ ‘실버 카페’ ‘돈 좀 주라’ ‘굼벵이’ 등 모두 직접 작사·작곡했다.

“불교에서 스님들이 하는 것 중에 ‘오도송(悟道頌)’이란 게 있다.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시(禪詩)를 이르는 말이다. 요즘 들어 느끼는 게 더 많다. 인생이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인데 사람들이 번잡한 곳에 같이 사는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보면 혼자 사는 것 아닌가.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말고 홀로 외로워져야 마음이 고요해진다. 마음은 소리 같다. 소리로 마음의 파장을 잡는다. 마음이 복잡하면 소리를 못 듣는다. 외로워지면 비로소 나의 존재를 느끼면서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음악과 가까워지는 길이 그것이다.”

‘아내가 내껀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어록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이 세상에 내 것은 없으니까 서로 위로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인생의 교훈을 전하고 있다. ‘실버 카페’는 은유와 상징을 담고 있다. 근사한 카페에 들어선 노년의 신사가 과거를 추억하는 이 곡은 요양원의 답답한 현실을 그린 것이다.

“대학교 은사가 요양원에 들어갔다. 내가 학생 때 소위 잘나가던 교수였다. 그녀의 남편은 외교관이었다. 엘리트였는데 남편이 죽고 나니 갈 데가 없다더라. 그때 병문안을 갔다가 보고 느낀 게 많다. 만약 치매라도 걸렸다면 그 환자에게 요양원은 그저 죽음만을 기다리는 공간에 지나지 않을까. 그런데 그건 내 이야기도 될 수 있었다. 너무 끔찍했다. 그래서 요양원이라는 말부터 바꾸고 싶었다. ‘실버 카페’로 하자. 우선 노래로라도 그들에게 자유와 꿈을 주고 싶었다.”

김도향은 이번 앨범의 전곡을 사실상 ‘원맨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피아니스트 안동렬과 기타리스트 하타 슈지(畑秀司)가 세션으로 참여했으나 대부분은 공덕동 오피스텔 안에 있는 1인용 녹음실에서 나 홀로 녹음했다. 중고로 구입한 녹음실은 공중전화 부스처럼 생겼다. 가로 180㎝, 세로 120㎝에 성인 남자 키 정도의 높이. 방음을 위한 벽 두께가 50㎝나 돼서 실제 내부는 0.5평에 불과하다. 녹음자가 안에 들어가면 좌우로 몸을 돌리기도 어려울 만큼 비좁다. 김도향은 거의 진공상태처럼 고요한 이 녹음실을 수없이 들락날락하며 11곡을 ‘홈 레코딩’으로 완성했다.

“녹음실 안에 헤드폰과 마이크를 설치해두고 밖에서 컴퓨터를 작동시킨 후 들어가 녹음했다. 어떤 곡은 몇 번, 또 어떤 곡은 100번 이상 들락거렸다. 정말 운동은 제대로 한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앨범엔 별다른 기교나 장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수수하고 담백하다. 진공상태 같은 정적을 뚫고 흘러나오는 보이스는 다소 거칠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매력이 있다.

“노래를 만들 때는 기타로 코드를 먼저 잡아본다. 그걸 바탕으로 곡의 인트로와 간주를 만들고 나중에 멜로디를 붙인다. 어떤 곡은 10분 만에, 어떤 곡은 수백 번의 수정을 거쳐 나왔다. 하지만 어떤 과정이든 미사여구는 철저히 배제했다. 과거 히트곡 ‘바보처럼 살았군요’나 ‘벽오동 심은 뜻은’을 했던 때와 같다고 할까?”

지금의 가수 김도향을 있게 한 명곡 ‘바보처럼 살았군요’는 1980년 발표됐다. 군부 독재와 5·18로 얼룩진 가장 엄혹했던 시절. 30대 중반의 김도향도 데뷔 10년이 지나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을 때다. 사람들은 그에게 “천재”라는 수식어를 붙였으나 그는 지독한 공허함을 느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자신을 괴롭혔다. 그때 문득 이 곡이 마음 깊은 한 곳에서 흘러나왔다.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흘러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흘러버린 세월/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곡은 어지러운 시대 상황과 맞물려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잠시 정권을 이어받았던 최규하 대통령의 주제가로 통했다. 최규하 대통령은 전두환 군부의 압력으로 대통령이 된 지 불과 8개월 만에 물러났다.

사실 김도향의 어릴 적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학창 시절 서울 집 근처 우미관에서 영화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

“어려서는 이사 다닌 기억밖에 없다. 15세가 될 때까지 이사만 수십 차례. 자꾸 밖으로 도는 아버지를 믿지 못한 어머니가 날마다 보따리를 싸는 바람에 방랑자처럼 수시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공부하거나 뭔가에 집중하기엔 어려운 환경이었는데 그때 영화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우미관 근처에 살던 1년여 동안 한 1000편은 본 것 같다. 내게 혹시 예능의 자질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그때의 경험 덕분일 듯하다.”

그러나 김도향은 세 살 때 한글을 뗄 정도로 영특한 아이였다. 떠돌았지만 학교도 당시 최고의 명문고인 경기고에 진학했다. 늘 무관심해 보이던 부친이 대학 입시를 앞두고 어느 날 아들을 불러냈다.

“아버지는 매우 유명한 수학 강사였다. ‘도의 고향(道鄕)’이라는 이름도 부친의 작품이다. 아들 하나 있는 게 성적이 꼴찌를 맴도니 걱정이 많으셨을 것이다. 어느 날 나를 불러내 진지하게 술을 한잔 사주시며 대학 진학을 논의했다. 그때의 일로 겨우 서라벌예대(현 중앙대)에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릴 적엔 집안일에 소홀한 아버지를 원망한 적도 있지만 어른이 돼 보니 대단한 분이셨다는 생각이 든다.”

김도향은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어릴 적 꿈을 되새겼지만 현실은 팍팍했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영화 현장에 뛰어들었다가 벌이가 시원치 않아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카바레에서 처음으로 노래 부르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통기타를 들고 가서 팝송을 불렀더니 별말 없이 당장 출근하라고 하더라. 중학교 때 본 영화 속 주제가들을 거의 몽땅 외우고 있었으니까 팝송 레퍼토리가 한 1000곡은 됐을 거다. 여섯 군데에 나가며 월급을 5만 원씩 받았다. 당시 택시비가 20∼30원 할 때니까 학생으로선 매우 큰돈이었다.”

그러다가 밴드를 만들었고, 미8군 클럽 무대에도 진출했다. 지금 생각하면 발음도 엉터리이고 실수도 있었겠지만 생각외로 일이 술술 풀렸다.

“닥치는 대로 하다 보니 매일 6시간씩 노래했다. 따로 연습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6개월쯤 했을 때 목에서 피가 나왔다. 기본 성대가 터진 것 같았다. 그때 이미자 선배님을 만났고 그분의 소개로 1970년 손창철과 함께 투코리언스로 데뷔할 수 있었다.”

당시 김도향의 인기는 최고였다. 모든 TV 방송의 단골 게스트로 출연했고 미8군에서는 ‘스페셜A 클래스’ 대접을 받았다. 1시간에 550달러로 패티김, 김상희와 같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인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팀 내 불화로 2년 만에 손창철과 헤어지고, 다른 멤버와 함께 2년을 더 한 후 1974년 그룹이 해체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마초 파동에 휘말렸다. 군부 정권이 갖은 이유로 ‘딴따라’들을 옭아맬 때였다. 다행히 김도향은 벌금 10만 원만 내고 풀려났으나 인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그를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신혼 때라 뭐라도 해야 했다. 그런데 마침 광고계에서 러브콜이 왔다. 1972년 투코리언스 때 누군가의 부탁으로 오리온의 ‘줄줄이 사탕’ CM송을 만들어 준 적이 있는데 그게 히트하는 바람에 광고계에 내 이름이 알려졌고, 작업 제안이 온 것이다. 그 후로 만든 CM송이 3000곡이 넘는다.”

이를 계기로 김도향은 광고음악 작곡가로 승승장구했다. 그는 귀에 익은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이상하게 생겼네, 롯데 스크류바’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 아카시아 껌’ ‘우리 집 강아지 뽀삐, 우리 집 화장지 뽀삐’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LG’ 등이 그의 히트작이다. 그때 번 돈으로 충무로에 3층짜리 빌딩을 샀다.

1990년대엔 명상음악에까지 손을 댔다. 전국의 산을 누비며 다양한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태교 음반을 만들었다. 한 편에 한 시간도 넘는 곡이었다. 100만 장이 넘게 팔렸다. 그러나 투자자를 잘못 만나 수익은 고사하고 오히려 빚더미에 앉았다. 한동안 방황하다가 그가 다시 자신의 음악으로 돌아온 게 2000년 무렵이다.

“인생이란 게 다 그렇다. ‘아내가 내껀가’라는 노래처럼 내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 듦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이가 들면 느리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생각도 느리게 하게 된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다. 늙음은 병이 아니고 진화다. 서양에선 이를 ‘올드 앤드 와이즈(Old & Wise)’라고 하지 않나. 그게 필요하고 음악이 그걸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번 앨범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하고 싶다.”

clark@munhwa.com
e-mail 김인구 기자 / 문화부 / 차장 김인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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