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文정부 ‘오류와 착각’ 안보 허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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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주 예비역 육군 대장 前 제2작전사령관

北 핵개발 위해 남북관계 악용
추가 제재 피해 미사일 고도화
순진한 환상에 젖어 30년 허비

北정권 겨냥해야 核 폐기 가능
한·미, 전쟁 외에 다양한 카드
지소미아 파기는 안보 역주행

손자병법 모공편의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명구는,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반면, 부지피부지기(不知彼不知己)면 매전필태(每戰必殆)라고 강조한다. 상대도 모르고 자신에 대해서도 모르면 항상 위태롭다는 뜻이니 그야말로 지금 정부가 처한 처지를 요약한 말로 보인다.

대북정책과 북핵(北核)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우리는 주기적으로 북한 입장에서 북한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취약점을 안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북한의 의도와 속셈을 우리의 기대와 희망으로 대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오류와 착각 속에서 지내 왔는가.

첫째, 지금까지 북한의 핵 개발 일정은 대한민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받아 진행된 게 아니라, 전적으로 자기들의 기술적 문제에 따라 자신들의 스케줄대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농축우라늄 개발은 김대중 정부 시절이고, 1차 핵실험은 노무현 정부 때이며, 마지막 6차 핵실험 후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의 일이다. 북한의 핵 개발 일정에 있어 유일한 고려 사항은 기술적 문제였으며, 일시적인 전술적 고려 사항은 있었을지언정 남북관계가 그 일정에 결정적 영향을 줬던 건 아니다. 그들은 남북관계를 오직 자신들의 핵 개발에 유리하도록 이용해 왔을 뿐이다. 그동안 핵 문제에 대한 수많은 선언과 약속이 있었지만, 결국은 그 모든 것이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선언과 약속에 의지하려 한다.

최근 잇달아 발사된 미사일의 경우, 한·미 군사훈련을 빌미로 지난 18개월간 누적된 미사일 고도화 시험을 합리화하려는 것이다. 그 덕에 북한은 유엔의 추가 제재를 피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미사일에 핵탄두 탑재를 위한 기능시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대담한 적반하장 식 막말로 그 의도를 숨기는 데 성공한 것이다.

둘째,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고 경제적 지원이 이뤄지면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감 역시 우리의 시각에서 바라본 순진한 생각의 결과다. 종전선언을 한 다음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북 간 국교가 정상화된다고 해서 북한이 체제보장으로 받아들이고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상대를 모르는 우리만의 생각이다.

미·북 정상회담 장소를 베트남으로 선정했던 것은, 핵을 포기하면 북한도 베트남처럼 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우리의 기대를 반영한 것뿐이다. 북한은 베트남식 경제 개방을 할 경우 자신들의 체제 유지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은 1986년 도이머이(개혁개방) 이후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면서 평균 3.5년 주기로 권력이 교체되고 있는데, 지금의 북한 정권이 인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권력 교체를 감수할 리는 만무하다. 북한이 체제 유지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는 장성택 처형과 이복형 김정남 독살이 말해준다.

대가를 통해 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는 유혹 때문에 우리는 북한이 핵을 개발하기까지 30년이란 시간을 허용했다. 적을 모르는 부지피(不知彼)이다 보니 위기에 빠지는 필태(必殆)의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제 우리의 전략적 선택은, 어떤 대가를 통해 북한 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직접적으로 북한 정권의 생존을 겨냥해야 하고,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정권이 무너진다는 인식을 북한이 가질 때 비로소 핵 포기는 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전쟁하자는 거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한·미는 전쟁 이외의 다양한 군사적·비군사적 카드를 가지고 있다.

북핵 위기의 상황에서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파기했다. 이는 북핵 문제에 대한 현 정부의 위기감이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 한·일 간의 지소미아는 정보 공유의 차원을 넘어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일 간 지소미아가 한·미 동맹과 무관하다는 외교부의 입장은 필자를 아연케 한다. 손자병법에 의하면 승자는 이길 준비를 한 뒤에 싸움을 시작하고, 패자는 싸움부터 걸고 난 뒤 이길 방법을 찾는다. 편협한 시야를 가지고 주먹구구식으로 안보를 끌어 가는 당국자들을 보면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