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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9년 08월 28일(水)
“은마아파트서 한 달간 촬영… 직조하듯 1994년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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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창섭 기자 bluesky@
29일 개봉 ‘벌새’ 김보라 감독

“시나리오는 10고(稿)까지… 그리고 나서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한 달간 촬영할 수 있어 행운이었죠.”

29일 개봉하는 작은 영화 ‘벌새’를 보고 나면 아마 감독이 궁금해질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어떻게 특별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을까, 여중생의 소소한 이야기로 러닝타임 138분을 끌고 간 뚝심은 어디서 나왔을까.

개봉에 앞서 만난 김보라(38·사진) 감독은 “직조(織造) 과정이 매우 첨예하고 복잡했다”며 “직조”라는 말을 자주 썼다. 독립영화의 감독으로서 그만큼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이 직물을 짜깁기하듯 길고 고달팠음을 의미하는 듯했다.

‘벌새’는 1994년 아주 평범한 여중생 은희(박지후)가 겪는 다양한 사건과 감정을 담고 있다. 어느 해나 다사다난하지 않은 때는 없었지만 김 감독이 주목한 1994년엔 실로 엄청난 일들이 있었다. 대한민국이 건국 이래 최고 폭염을 기록했고, 미국에서 월드컵이 열렸다. 김일성 북한 주석이 갑자기 사망해 세상을 놀라게 했고, 성수대교가 붕괴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제는 25년 전의 과거가 됐지만 우리가 모두 지나온 시간이고, 은희도 그 안에서 똑같이 작고 연약한 벌새처럼 그 시간을 견뎠다.

“저도 대치동에서 방앗간 하던 집의 딸이니까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창작인지를 말하기는 어려워요. 특별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도 저마다 아름답고 특별한 서사시가 있는 법이죠. 개인적인 것을 공통의 경험으로 승화하는 것이 작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전형적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지만 가부장적인 아빠, 자식들을 사랑하면서도 허무와 고독에 빠진 엄마, 사고뭉치로 일탈을 일삼는 언니, 공부는 잘하지만 여동생에게 쉽게 주먹을 휘두르는 오빠, 그리고 차별과 무관심, 폭력 속에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가꿔나가는 은희 등 1994년 우리 주변 어딘가에 살았을 법한 캐릭터들이다.

그러나 엄청난 사건과 시련 속에서도 차츰차츰 성장해가는 은희의 모습이 관객에게 고단함 속의 희망이라는 특별함을 전해준다.

김 감독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를 거쳐 미국 컬럼비아대학원 영화과를 졸업했다. 2002년 졸업 작품이었던 ‘계속되는 이상한 여행’을 시작으로, ‘빨간 구두 아가씨’(2003) ‘귀걸이’(2004) ‘리코더 시험’(2011) 등 단편을 연출했다. ‘벌새’는 그의 첫 장편으로 단편 ‘리코더 시험’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이미 전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25관왕을 달성했다.

여성 감독으로서 페미니스트적 시각에서 서사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100만 부를 넘긴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을 떠오르게 한다. 1994년 14세의 은희는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시간을 살아온 또 다른 김지영 같다.

“캐나다 판타지아영화제에서 ‘페미니즘 영화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제가 페미니즘을 결심하고 영화를 만든 적은 없습니다. 영화는 프로파간다(선전물)가 아니니까요. 그럼 촌스러워지잖아요. 일부러 신념을 지니고 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여성이고 페미니스트이므로 그런 관점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배어들었을 것 같아요.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를 통해 삶 자체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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