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테킬라 vs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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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직 논설위원

한 국가의 경제위기가 주변 국가로 파급되는 현상을 통칭해 경제학에선 ‘테킬라 효과’라고 일컫는다. 지난 1994년 멕시코의 금융위기가 인근 중남미 국가로 번졌던 것을, 멕시코 국민주(酒) 테킬라에 이웃 나라들이 모두 취한 것 같다는 식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와 상반되는 경제학 개념으로 ‘이웃 효과’라는 게 있다. 이웃 또는 친구의 재산이나 소비 수준에 비추어 자신을 평가하려는 경향을 일컫는 말인데, 이웃과의 비교가 스스로 분발토록 자극하는 요인이 될 때 이 개념을 원용하기도 한다. 즉, 인접해 있는 국가가 자국 경제에 위기인지 기회인지, 저주인지 축복인지에 따라 ‘테킬라 효과’와 ‘이웃 효과’가 갈리는 셈이다.

한국과 일본은 어떠할까. 삼성전자는 지난 1994년 8월 세계 최초로 256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한 걸 자축하는 내용의 전면광고를 국내 신문에 게재했다. ‘한민족 세계 제패, 월드베스트 정신으로 해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광고 상단에 구한말 태극기 문양을 실었다. “일본을 따라 배웠던 한국이 D램만큼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가 됐음을 과시하기 위해 구한말 태극기 문양을 썼다”는 게 당시 책임자 설명이었다. 이렇듯 뒤늦게 산업화에 뛰어든 한국 입장에서는 인접한 경제 강국 일본은 벤치마킹하고픈 선망의 대상인 동시에 반드시 이기고 싶은 상대였다. 설립 초기 일본 가와사키 조선소의 도면을 그대로 보고 베끼다가 일본을 제치고 글로벌 1위로 올라선 현대중공업, 일본 히타치 TV를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제작하다 생활가전 세계 1위가 된 LG전자가 모두 그런 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한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로 맞대응하면서 경제 충돌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한 치 앞이 안 보인다. 일각에선 “경제 전면전도 해볼 만하다”며 전의를 북돋고 있지만, 경제계는 일본과의 협력 강화에서 길을 찾자고 호소한다. 경제5단체는 “한국 반도체와 일본 소재 산업은 글로벌 분업과 협업의 대표적 성공 사례”라고 평가했다. 또 “각각의 수출보다 한·일 양국간 분업구조와 보완적인 무역구조에서 비롯된 가치 창출이 글로벌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훨씬 더 크다”고 분석했다. 일본과 선린(善隣) 효과를 내도록 유도하는 세밀하고 전략적인 대응이 긴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정작 집권세력은 테킬라 효과를 앞세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