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영 어덜트’부진과 어른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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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문화부장

전 세계적으로 ‘영 어덜트(Young Adult) 서사’가 폭발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 영 어덜트는 22세에서 25세에 이르는 젊은이를, 마케팅 쪽에서는 20대 초반의 소비자를 말한다. 하지만 소설을 포함한 문화계에서 영 어덜트는 청소년, 영 어덜트 소설은 청소년 소설을 의미한다. 다만, 전통적인 소년소녀 소설과 달리 10대뿐 아니라 20대 이상 성인에게도 광범위하게 소구하는 서사를 뜻한다.

대표적인 영 어덜트 서사라면 ‘해리 포터’를 필두로, 판타지 쪽으로는 ‘트와일라잇’ ‘메이즈 러너’ ‘헝거게임’ 등으로 이어지고, 로맨스를 가미한 성장소설 계열로는 영화 ‘안녕, 헤이즐’로 제작된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존 그린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작품 면면만 봐도 규모나 영향력, 무엇보다 엄청난 문화적 부가가치를 알 수 있다. 이들 작품은 하나같이 우리 시대 새로운 문화 코드를 만들며 시대 변화를 끌어냈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근대 이후 규범화된 미성숙한 어린이와 성숙한 어른이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깨지고 어른 역시 여전히 성장이 필요한 불완전한 존재라는 자각 속에 어른들도 10대의 성장담을 적극 소비하면서 이 시장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세계적 붐을 지켜보며 ‘영 어덜트 시장’을 향한 기대가 넘쳤던 적이 있었다. 출판 쪽에서는 저출산으로 어린이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갈수록 쪼그라드는 어린이 책 시장의 대안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물론 ‘해리 포터’는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고, ‘트와일라잇’과 ‘헝거게임’은 인기를 끌었다. ‘안녕 헤이즐’에 많은 한국의 ‘영 어덜트’가 눈물을 흘렸다. 또 국내 작가들이 꾸준히 청소년 소설을 쓰고 있고, 10대 문제를 다룬 독립영화가 있긴 하다. 하지만 세계를 탐험하고, 고난을 뚫고 편견을 깨 나가는 전 세계의 폭발적인 10대 성장 서사의 규모와 내용에 비하면 한국의 10대 서사는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자생적인 영 어덜트 서사 시장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문화도 글로벌화된 시대,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계에서는 대입에 찌든 한국 청소년의 현실을 가장 큰 이유로 꼽곤 한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책 한 권 읽을 시간이 없는 아이들,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아이들이 거대한 판타지 세계를 꿈꿀 시간도 에너지도 여유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 영 어덜트들에겐 모험이 상상의 세계에서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요즘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과 관련된 각종 의혹을 지켜보며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들로부터 성장의 권리를 빼앗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국 후보자의 딸 사례는 부모가 대학을 목표로 아이들의 삶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에서 숙명여고 교무부장의 쌍둥이 딸 성적 조작 사건과 다르지 않다. 인류 성장담의 오랜 원형은 주인공이 안전한 집을 떠나 실패와 좌절, 온갖 고난과 모험을 겪고, 한층 성숙해져서 돌아오는 것이다. 떠나지 않으면 성장도 없다. 세상에 분노하고, 공정함을 주장하는 목소리 사이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실패할 기회를, 그래서 결국 성장할 권리를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c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