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음악동네>‘그냥 불러봤소~’ 지나친 해석… 때로는 상상이 본의를 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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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애 ‘누구 없소’

개그맨 김국진이 ‘밤 새지 마라 말이야’란 유행어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나는 그가 주인공인 ‘테마게임’의 책임연출을 맡고 있었다. 주 52시간이란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 얘기다. 그날도 예능국 회의실은 밤 새우는 청춘들로 꽤나 북적였다. 한쪽 벽엔 무시무시한 글씨가 도배돼 있었다. ‘아이디어가 없으면 나가 죽어라.’

아이디어는 없어도 낭만은 있었다. 막내 작가가 김국진의 유행어 ‘여보세요’를 흉내 내자 조연출이 ‘거기 누구 없소’ 하면서 가요로 응수했다. 노래채집이 취미활동인 나 역시 대열에서 낙오할 순 없었다. ‘어둠은 늘 그렇게/벌써 깔려 있어’ 순식간에 회의실은 뮤지컬 연습실로 변했고 플래시몹처럼 앙상블이 가동됐다. ‘창문을 두드리는 달빛에 대답하듯/검어진 골목길에 그냥 한번 불러봤소’. (한영애 ‘누구 없소’ 중)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지나가는 말로 동료에게 물었다. “이거 세태풍자 맞지?” 나른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냥 불면증 환자의 고충을 표현한 거 같은데.” 가사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날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 모두/오늘 밤도 편안히들 주무시고 계시는지/밤이 너무 긴 것 같은 생각에/아침을 보려/아침을 보려 하네’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았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세상의 등불, 아니 스스로 아침 이슬이 되고 싶은 선구자가 어둠에 길들어 버린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려는 의지가 역력했다. 마지막 구절은 거의 절규에 가깝지 않은가. ‘나와 같이 누구/아침을 볼 사람 거기 없소/누군가 깨었다면 내게 대답해줘’.

당시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던 나는 기어이 ‘누구 없소’의 고매한 실체(?)를 낱낱이 공개했다. 고발이 아니라 상찬이었다. 정의가 부재한 시대에 의인을 부르는 노래라는 게 글의 요지였다. 지금 다시 읽어 보니 좀 많이 나가긴 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이 시대의 어둠 속에선 지금 어떤 음모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우리가 그 범의를 차단하지 못한다면 우린 결국 한패가 되거나 훗날 궁색한 자기변명으로 더욱 초라해질 뿐이리라.”

얼마 후에 가수 한영애의 매니저가 나를 찾아왔다. ‘묻혀 있던 의미를 발굴해준 걸 감사하려는 의도겠지.’ 아니 그 반대였다. “그 글로 인해 본의 아니게 활동이 위축되고 있습니다.” 그냥 글자 그대로 보지 않고 색안경을 쓰고 봐서 노래의 ‘본의’가 흐려졌다는 거였다. 나는 당황했고 결국 사과했지만 실제로 내 생각을 정정한 건 아니었다. 생각을 외부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창작자나 가수에게 덧입혀질 이미지의 왜곡과 그로 인해 받을 타격을 미안해한 거였다. 그 후 상상과 표현의 자유를 얘기할 때 이 사례를 가끔 인용한다. 핵심은 창의와 예의다. 모름지기 상상은 창의적으로, 그러나 매체를 통한 표현에선 예의를 잃지 말자.

강의(?)를 마쳤으니 다시 예능국으로 돌아가자. 밤새도록 회의실에서 죽치다가 어둠이 옅어질 무렵엔 대개 두 부류로 갈리곤 했다. 하나는 자신의 주관을 굽히지 않고 강하게 주장하는 그룹. 나는 그들을 ‘성난 황소’라고 불렀다. 또 한쪽에는 좀체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낙서만 하던 그룹이 있었으니, 나는 그들을 ‘양들의 침묵’이라고 불렀다. 둘 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작품에서 따온 이름이다. 결국 누가 이겼을까. 통계는 말한다. 흥분은 황소가 하지만 결정은 양들이 한다.

록 그룹 오아시스의 명곡 중에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마’가 있다. 영국의 극작가 존 오스본의 희곡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를 비튼 제목이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마음의 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면/더 놀기 좋은 곳을 찾을 수 있다는 걸 모르는가’.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