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dership 클래스 >때로는 ‘인물 기용’ 보다 ‘측근 퇴출’이 더 필요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역사속 ‘토사구팽’

변화하는 현실 판단 못하고
끝까지 기용땐 정권에 화근
민심에 맞서는 상황 번지면
정권 정통성·생존 위협당해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묘비명
“나보다 잘난 사람 기용했다”
한비자 “군주·신하 이해관계
달라지는 순간 꼭 오게 마련”

전병민 한국정책연구원 고문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당선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YS의 한명회’라고 불릴 정도로 선거에 큰 공을 세웠다. 외곽 조직 기획실장을 맡아 홍보 전략 수립에 기여한 공신이었고, YS 정권의 밑그림을 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태우 캠프에서도 선거 전략에 관여해 ‘보통 사람 노태우’ 슬로건 등도 그가 속한 팀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전 고문은 집권 후 하나회 숙청, 공직자 재산공개 등 개혁 과제를 다듬는 역할을 맡았고, 첫 청와대 인사에서 ‘정책기획수석’에 임명됐다. 기존 직제에 없던 전 고문을 위한 자리였다. 하지만 학력과 경력 관련 논란이 불거지고 결정적으로 장인이 해방 정국에서 고하 송진우 선생의 암살범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가차없이 ‘잘렸다’. 임명된 지 불과 3일 만이다. 그를 위해 신설됐던 정책기획수석이라는 자리도 폐지됐다.

YS의 즉흥적이고 가차없는 인사 스타일은 ‘깜짝 쇼’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논란이 확산하기 전에 인물을 무대에서 퇴장시켜버림으로써 정권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실제로 YS는 정권 출범 첫해 자녀 특례 입학 또는 재산 공개 과정에서 불·탈법이 드러난 박희태 법무·박양실 보건사회·허재영 건설부장관과 김상철 서울시장 등을 즉각 해임했다.

하지만 이런 YS의 인사도 아들은 예외였다. 한때 국정 지지율 90%대까지 올랐던 김영삼 정부가 나락으로 떨어진 데는 ‘소통령’으로 불리던 차남 현철 씨의 국정농단이 큰 영향을 미쳤다. 집권 초부터 ‘소통령’ 논란이 계속되자 박관용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공개적으로 현철 씨 관련 세평을 직언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차마 아들을 어찌하지 못했고, 공교롭게 그해 말 개각 때 박 실장은 청와대를 떠났다. 현철 씨는 결국 정권 마지막 해인 집권 5년 차에 구속됐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리더가 성공하기 위한 첫 계명은 바로 측근에게 냉혹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토사구팽(兎死狗烹)’ 리더십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버리지 못한 측근은 화근”= 정권의 흥망성쇠의 변곡점에는 꼭 측근을 향한 민심의 분노가 있었고, 버리지 못한 측근은 화근이 된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3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특정 인물에게 집착할 경우 몰락이 시작된다”고 밝혔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공직 후보자를 추천했는데 여론이 부정적일 경우 ‘여기서 물러나면 내가 밀리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된다”며 “뒤집어 얘기하면 그 사람을 자르지 않는 것은 결국 민심을 거스르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중 정부 집권 2년 차인 1999년 5월, ‘옷 로비’ 사건이 터졌다. 구속된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의 아내 이형자 씨가 남편 구명을 위해 고위직 부인들에게 옷 로비를 시도했고, 로비 대상 중 김태정 법무부 장관의 아내 연정희 씨가 있었다는 의혹이다. 옷값만 수천만 원대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시 순방에서 돌아와 “언론이 마녀사냥을 벌인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결국 김 장관은 취임한 지 15일 만에 사임했다.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으로 기록된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측근이 화근이 됐다. 한 자유한국당 중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는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의 존재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며 “2014년 최 씨의 전 남편 정윤회 씨가 문고리 3인방을 통해 국정을 좌지우지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때 단호하게 대처하거나 적어도 문고리 3인방이라도 쳐냈더라면 최 씨의 국정농단도 멈췄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찌라시’에 나라가 흔들린다”고 의혹을 제기한 쪽을 향해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국정 농단을 둘러싸고 민심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여기에 불을 활활 붙인 게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며 “우 전 수석을 상징적으로 자르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더라면 박 전 대통령이 염두에 뒀던 이른바 ‘질서있는 퇴진’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2인자를 버리지 못해 말로가 불행했다. 이 전 대통령에게 친아들을 양자로 내주면서까지 권력에 집착했던 이기붕 전 국회의장은 자유당 정권의 2인자로 군림하다 1960년 부통령에 당선되지만 한 달 뒤 모든 것을 잃었다. 이 전 대통령 역시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야 했다.

◇“읍참마속 못하는 건 민심에 맞서는 셈”=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자신의 묘비에 “여기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들을 고용할 줄 아는 한 남자가 잠들다”라고 썼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 전문가들은 측근을 잘 쓰는 것보다 버려야 할 때 버리는 게 더 힘들다고 설명한다. 이는 한비자(韓非子)가 일찍이 “군주와 신하는 하루에도 여러 번 싸운다. 기본적으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밝힌 것과 맥을 같이한다. 정권을 창출하고 권력이 넘칠 때는 지도자와 측근 혹은 2인자가 공동의 이익과 목표를 위해 움직일 수 있지만, 어느 순간 지도자와 측근의 이해관계가 갈리는 순간이 닥친다는 설명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그게 지지율 하락일 수도, 측근의 비리일 수도, 정책 판단의 잘못일 수도 있지만 자리를 유지하고 권력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측근의 목표가 지도자의 그것과 상충될 때가 반드시 온다”며 “이때 지도자들이 흔히 착각하는 게 측근의 목표가 자신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재자의 핸드북’의 저자인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뉴욕대 정치학과 석좌교수는 “정치적 과도기에 지도자가 집권하도록 돕고도 결국 밀려난 지지자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며 “이 같은 사정을 아는 측근들은 현 집권자에게 대체 인물을 찾을 빌미를 주지 않으려 몸을 사린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지도자와 측근의 이해관계가 갈리는 순간 측근을 축출하지 못하는 것은 민심에 맞서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판단보다 한 번 좋으면 끝까지 믿어버리는, 보수적인 인사 스타일은 민심이 불일치됐을 때 자칫 정권의 정통성과 정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인자의 성공적 후퇴 사례가 ‘文’= 대통령의 토사구팽 리더십이 빛을 발한 사례로 전문가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꼽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친구이자 동지, 가장 믿을 수 있는 참모였던 문재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자의 반 타의 반 그냥 놓아줬다. 법무부 장관으로 기용하려 했지만 야당은 물론 여권의 반대에 부딪혔고, 문 대통령 스스로도 더 이상 나서는 것을 원치 않았다. 실세로 주목받았지만 외부 노출을 꺼려 청와대 근무 시절 자신의 고교 동창조차도 만나지 않은 일은 유명하다. 이후 재야에 있던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정치권에 나왔고 결국 대통령까지 됐다.

한 친문(친문재인) 핵심 의원은 “문 대통령은 사람 관계에 있어서는 엄정치 못한 부분이 있다”며 “사람을 쉽게 내치지 못하는 스타일”이라고 밝혔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문 대통령은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고 자기가 믿는 사람을 중용하는 사람”이라며 “거기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정권을 함께 만든 개국공신인 만큼 쉽게 내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조 후보자의 상징성에 주목했다. “문 대통령에게 조 후보자는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을 넘어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다. 무한사랑이다. 옛날로 치면 조국은 이 정권 2인자다. 그러니 놓아줄 수 없는 것”이라며 “그렇지만 2인자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대통령한테 직접 욕을 못 하지만, 차곡차곡 쌓인 불만, 그 국민의 욕은 다 2인자에게 가게 돼 있다. 그걸 거스르면 국민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