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스승은 ‘동물’이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동물을 연구해 온 사이 몽고메리는 다른 종과의 교감이 인간의 영혼을 성장시킨다고 말한다. 저자가 나미비아에서 새로 사귄 치타와 촬영한 사진. 사진 제공 더숲

- 좋은 생명체로 산다는 것은 / 사이 몽고메리 지음, 레베카 그린 그림, 이보미 옮김 / 더숲

세계적 자연탐사 전문 작가
부모의 억압 분노로 마음 상처
반려견·거미·돼지·족제비…
동물들과의 온전한 교감통해
고통을 은총으로 바꿔 살게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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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울 준비가 되면 스승은 저절로 나타난다.”

아름답고 역동적인 이 회고록에는 부모의 지나친 엄격함과 잦은 분노로 ‘상처받은 어린 소녀’가 회복되지 않은 채 끝내 남아 있다. 이 어리고 여린 소녀는 만 3세 때부터 기르기 시작한 반려견 몰리를 거미, 돼지, 족제비, 에뮤, 캥거루, 문어 등으로 바꿔 가면서 평생 끌어안고 있는 중이다.

“나는 몰리와 함께 집을 떠나는 상상을 했다. 우리는 숲속에 살 것이다. 맑은 시냇물을 마시고, 숲에서 먹을 것을 찾고, 속이 빈 나무 안에 몸을 누일 것이다. (중략) 몰리는 내게 세상을 알려줄 것이다. 군부대, 학교, 아스팔트, 벽돌, 콘크리트를 벗어난 진짜 세상을 말이다. (중략) 지금은 어쩔 수 없지만 언젠가는 몰리와 함께 이곳을 탈출해서 그 세상으로 가리라는 것을 알았다.”

동물과의 첫 만남 이래, 소녀의 인생 스승은 늘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다. 인간이 아니라 동물로부터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듣는 이 독특한 삶의 형식은 저자 사이 몽고메리를 세계적인 자연탐사 전문 작가로 이끈다. 대학을 졸업한 저자는 환경과학 전문 기자라는 안정된 직장을 때려치우고, 앞날에 대한 보장도, 심지어 급여조차 없는 보조 연구원으로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숲에서 처음으로 동물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저자는 묻는다.

“고독하고, 혼란스럽고, 미숙한 인간인 나를 이제는 누가 인도해 줄까?”

반려견 몰리가 소녀의 손을 잡고 길을 이끌었듯, 이번엔 ‘날지 못하는 새’ 에뮤가 스승이 된다. 저자는 에뮤로부터 동물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을 배운다. 카메라와 망원경을 든 저자가 접근하면, 처음엔 에뮤가 순식간에 눈치채고 달아나 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여섯 달에 걸친 노력 끝에 저자는 마침내 에뮤와 같이 걷고 에뮤의 둥지에서 함께 잠을 자기에 이른다. “호기심, 기술, 지식만으로는 동물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몰리와 유대감을 쌓았던 것처럼 에뮤와도 유대감을 쌓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마음뿐만 아니라 가슴 깊은 곳까지 열어야 하는 일이다.”

완전하고 충실하게 서로한테 속해 있다는 근원 경험 없이 인간은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다. 인간은 보통 이런 유대의 경험을 가족으로부터 얻는다. 하지만 몽고메리는 부모로부터 ‘분노의 피’를 물려받았을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으로 장군 자리에 오른 아버지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온갖 노력 끝에 FBI 직원이 된 어머니. 둘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난 저자는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엄격한 나머지 딸의 사소한 일탈조차 용납하지 않는 억압과 학대 속에서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입은 듯 보인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분노가 두려웠다. 분노의 피가 내게 흐를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우리 아빠는 매우 존경받는 분이었는데, 부하 직원이 우리 아빠가 너무 무서운 나머지 그 앞에서 기절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엄마는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화를 잘 내는 편이었다.”

어머니는 심지어 청소년 시절 저자가 남자친구와 집 앞에 있는 것을 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집에 둘만 있었는지 의심하고 추궁한 끝에 순결을 잃었는지 확인하려고 병원에 가자고 할 정도였다. 장군이 될 만한 군인을 남편으로 삼기를 강요하고, 결국 저자가 평범한 중산층 집안 출신 작가 지망생인 남편과 결혼해 집을 떠나려 하자 연을 끊어 버린다. 아버지가 죽을병에 걸려 병상에 누운 순간에도 소식을 듣고 놀라 달려온 딸한테 “먼저 아버지한테 사과하라”는 말부터 꺼내는 어머니, 끝내 딸을 용서하지 않은 채 세상을 뜬 아버지. 저자는 부모를 “끝없는 식욕을 갖고 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삶”을 살아가는 북방족제비에 빗댄다.

몽고메리는 자기 삶이 “분노의 피”로 물들지 않도록 부단히 애씀으로써 슬픔을 기쁨으로, 고통을 은총으로 승화하는 기적을 연출한다. 삶은 곳곳에서 좌절, 절망, 비탄의 징후들을 드러내지만, 행복에 대한 끝없는 갈구 속에서 삶을 “온당하고 온전하게 만들어 가려는” 저자의 끝없는 분투가 놀라운 감동을 준다. 은총은 한쪽이 완벽히 무력한 상황에서 누군가 전적인 증여를 실행한 결과 기쁨과 유대의 공동체가 출현하는 일이다. 어린아이를 낳고 보살필 때 우리는 은총을 경험한다. “은총은 우리를 희생시키고, 고결하게 만들며, 영감을 주고, 강하게 만드는 신성한 힘”이다. 인간은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 영혼을 단련함으로써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좋은 생명체로 산다는 것”은 결국 은총의 생명체로 사는 것이다. 평생을 동물과 함께하면서 분노에서 사랑을 이룩한 저자의 삶은 우리한테 이 엄연한 사실을 잘 알려준다. 224쪽, 1만4000원.

장은수 이감문해력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