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조국 불법성 희석한 ‘제도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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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범 사회부 차장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 특혜 의혹으로 마음이 상한 것은 청년층만이 아니었다. 중장년층도 마찬가지였다. 아내와 세 아들을 둔 40대 중반의 직장인 김모 씨는 추석 연휴에도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현직 교사인 아내조차 조 장관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토로하던 게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고 털어놓았다. ‘교육 개혁’을 약속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고교서열화와 대학입시의 공정성 등 기회의 공정성을 해치는 제도부터 다시 한 번 살피고, 특히 교육 분야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 씨 아내처럼 불공정한 교육 현실에 절망한 국민의 귀에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오히려 조 장관 딸의 입시 특혜 의혹을 제도의 문제로 돌리고 마는 것처럼 들렸을 법하다.

‘제도에 길든 학부모 중 한 명이었다’고 강변하는 것처럼 해석되는 화법은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세기의 재판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재판에서 유대인 수백만 명을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시킨 책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죄책감을 느낀다면서도 “법적으론 무죄”라고 강변했다. 자신은 국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무력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유대인 출신으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해당 재판을 지켜본 뒤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냈다. 부제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였다. 아렌트가 지켜본 아이히만은 세상 사람들이 상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파괴적 이념과 반인간적 정치에 몰두한 악마적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때 정유회사 직원이기도 했던 그는 지극히 평범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타인의 관점에서 사유할 능력이 없었고, 의지도 없었으며, 판단도 하지 않았다. 도덕적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아렌트가 보기에 조 장관 딸의 입시 의혹은 어떤 것이었을까. 교수들끼리 자식에 대한 특혜를 주고받으면서 교육이란 합법적 수단으로 포장해 명문대 학벌과 전문직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세습하려 했다는 정황 말이다. “계층 상승 통로인 교육마저 특정 계층에 유리하게 짜여 있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부르짖던 그였기에 더욱 충격을 주고 있는 상황 말이다. 자신의 딸과 아들에게 주어진 특혜를 한 번도 누려 보지 못한 청년과 부모의 상실감과 절망감에 대해서는 전혀 사유할 능력도 없었고, 의지도 없었으며, 판단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아렌트는 (살아 있다면) 진단하지 않았을까. 조 장관은 쏟아진 각종 의혹에 대해 “개혁과 진보를 주창했지만, 많이 불철저했다”고 뒤늦게 사과했지만, 진정성은 확인할 길이 없다. 법무부 장관이 된 그가 ‘악의 평범성’에 대한 아렌트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과연 어떤 대답을 해나갈 것인가. 법과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관점에서 사유하고 도덕적 판단과 의지로 자신과 일가, 여권 등을 아우르는 선택을 해나가야 할 텐데 말이다.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