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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황성준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9년 09월 16일(月)
이완용의 독립문, 문재인의 新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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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독립문 건립 주역이던 이완용
친일 매국노 전락 교훈은 선명
공허한 자주·독립은 망국의 길

反淸 독립이 反日로 방향 바꿔
韓美동맹 균열은 안보 흔들어
文대통령이 美 여론 설득해야


이완용이 애초부터 친일매국노였던 것은 아니다. 청나라 조공국이 아닌 독립국을 꿈꾼 반청(反淸)·친미(親美)파였다. 그런데 정세에 어둡고 지피지기(知彼知己)도 못 한 자주·독립론의 종점은 일본 식민지였다.

“독립을 하면 나라가 미국과 같이 세계에 부강한 나라가 될 터이요, 조선 인민이 합심을 못하여 서로 싸우고 서로 해하려고 할 지경이면 구라파에 있는 폴란드란 나라 모양으로 모두 찢겨 남의 종이 될 터이다. 미국같이 독립이 되어 제일 부강한 나라가 되든지, 폴란드 같이 망하든지 사람 하기에 있는지라. 조선 사람은 미국같이 되기를 바라노라.”

이완용이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한 연설 내용이다. 이완용은 독립협회 사무위원장으로서 독립문 건립에 앞장섰으며, 그 후 독립협회 제2대 회장이 된다.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청나라와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는데, 제1조가 ‘청국은 조선 종주권을 영구히 포기하고, 조선의 완전한 해방을 승인한다’이다. 일본 배려로 ‘독립’한 뒤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프랑스 개선문을 본떠 독립문을 지었다. 일본도 음양으로 지원했는데, 한반도 지배를 위해 중국 영향력 제거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병탄 이후에도 독립문을 그냥 내버려 둔 것 역시 그런 연유에서다. 정초식에서 배재학당 합창단은 ‘이백여 년 병자지치(丙子之恥)/ 오늘이야 씻는구나’라는 독립가를 불렀다. 서재필 등 많은 인사도 자주독립국을 세우려는 ‘좋은 의도’에서 앞장섰다.

국제정치에서 힘(power)은 공백을 싫어한다. 독립문 완공 한 달 전 조선은 국명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왕을 황제라 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힘도 동맹도 없으면서 독립을 유지한다는 것은 당시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다. 중국의 공백을 일본과 러시아가 차지하겠다고 달려들었고, 러일전쟁으로 일본의 독무대가 됐다. 역사는 그대로 재현되진 않지만, 미래를 비추는 등불이다. 역량과 정세를 냉철히 파악하지 못하고, ‘좋은 동맹’과 ‘나쁜 동맹’을 구분하지 못해 망국의 길을 자초했던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불행히도 문재인 정부 들어 그런 역사가 반복되려 한다. 다만, 반중(反中)·친일(親日) 독립이 ‘반일·친중’ 자주로 그 방향만 뒤집혔을 뿐 본질은 흡사하다. 19세기 말 동북아에서 기존 국제질서를 흔드는 ‘현상변경세력(revisionist power)’은 일본이었다. 당시 청나라와 연대했더라도 일본을 저지하지는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사실상 망한 중국이 떠났다고, 그것도 일본의 축복 속에서 자축하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 국제 흐름에 얼마나 몽매했는지를 말해준다.

현재 한반도 주변 국제정치의 현상변경세력은 중국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거론될 정도로 미·중 패권 싸움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런데 문 정부는 중국에 대해서는 고분고분하면서, 일본에는 각을 세운다. 중국이 사드 문제로 윽박지르자,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에 불참하고, 한·미·일 군사동맹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사드 3불(不)’ 약속을 해 줬다. 그러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선언을 하는 등 일본에는 강하게 나가고 있다. 최악의 전체주의 체제인 북한에는 한없이 굽실거리고, 북한·중국·러시아의 3각 체제 강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반대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일본과는 멀어지려 한다. 심지어 미국이 동북아 안보 체제 수립을 위해 ‘보증’하다시피 한 1965년 한·일 기본협정조차 존중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곧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맹보다 국익이 우선’이라는 자세로는 한·미 불신을 미봉할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을 ‘비용’ 문제로 생각한다면, 한국이 더 적극적으로 ‘가치 동맹’의 가치를 강조하고, 의회와 행정부는 물론 미국민을 상대로 설득에 나서야 한다. 자칫 잘못되면, 방향은 전혀 다르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이 맞아떨어져 동맹 균열을 더 키울 수 있다. 한·일 관계 ‘비수’인 징용배상도 위험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일본과의 관계를 약화하고, 중국·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자주의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120여 년 전 이완용의 독립문 건립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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