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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19년 09월 18일(水)
“文정부, 국가보다 민족 관념에 의존… 매우 위험한 국정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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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개인 연구실 창가에 서서 책을 읽고 있다. 최 교수는 “내가 부정했던 것을 나부터 안 하는 것에서 변화가 시작된다”며 리더의 도덕적 진실성을 강조했다. 김호웅 기자

■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

민족은 상상, 국가는 현실체제
개념 혼동땐 국가정체성 ‘흔들’

국민 재산·생명 수호 국가역할
정책은 부국강병에 맞춰져야

이념이 현실지배땐 근본주의화
진영 갇혀 미래보다 과거 집착

4차혁명 대전환 올라타는 게
적폐청산·친일청산보다 시급

86세대 탐욕스러운 기득권화
2030 반영한 세대교체 시급

[인터뷰 = 유병권 정치부장]


약산 김원봉 서훈 논란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 이후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논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나라가 좀 못살면 어때, 부유하지 않더라도 도덕적으로 살면 되지’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국가 운영에 있어 아주 위험한 사고”라며 “이런 사고로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킨다는 국가의 역할을 다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든 삶이든 현실을 자세히 관찰한 후, 그 현실에 맞는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념으로 현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념을 생산하면서 가야 합니다. 결국, 실용적인 노선이죠. 그런데 현 정부는 이념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념에 갇히면 도덕주의나 근본주의적 특성을 보이고 미래보다는 과거에 집착하죠. ‘나라가 좀 못살면 어때, 부유하지 않더라도 도덕적으로 살면 되지’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국가 운영에 있어서 아주 위험한 사고입니다. 이런 사고로는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 수 없고, 부강하지 않으면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킨다는 국가의 역할을 다 할 수 없습니다.”

‘이게 나라냐’라고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이건 나라냐’라는 비판을 들으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논쟁이 일고 있다. 박근혜 정부를 촛불 시위로 몰아내고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공정’과 ‘정의’를 앞세웠지만, 현 정부의 지난 2년 4개월은 당위론적 가치론만으로 국가가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소득주도 성장은 양극화 문제 해결에 실패했고, 성장에 부작용을 초래했다. 평화만을 강조한 남북관계는 되레 안보 불안감을 부추겼으며,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사태는 현 정부가 제1 가치로 제시한 공정과 정의에 대해 의구심을 낳게 했다.

2009년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한 ‘용산 참사’ 이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발간하며 논쟁을 일으켰다. 유 이사장이 당시 제시한 화두는 정의와 복지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문 정부에서는 ‘법치’와 현실론을 내세운 ‘국가란 무엇인가’란 논쟁이 불붙고 있다. 이런 논객 중 국가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는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를 지난 10일 만났다.


‘모든 철학은 그 시대의 아들’이란 헤겔의 말로 운을 뗀 최 교수는 “국가와 민족 관념을 혼동하고 있어 국정에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며 “국가 운영에서 국가보다 민족 관념에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민족 지도자로서 역할에 더 심취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때 일어난 일들이 문재인 대통령 때 그대로 다시 일어나고 있다”며 “기득권을 누리는 특권층이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더 나은 나라를 만들려면 리더가 도덕적 진실성,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며 “내가 부정했던 것들을 나부터 안 하는 것에서 변화가 시작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나 개인이나 자기가 가진 시선의 높이 이상을 살 수 없다”면서 “그래서 시선의 높이를 계속 높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지금 당장 가장 크고,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적폐청산이나 친일청산보다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문명 전환의 흐름에 올라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라며 “창의성과 독립성으로 무장해 선진적인 높이로 도약하는 도전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강대국의 노리갯감이 됐던 조선 말 역사가 재현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다시 꺼낸 이유가 있습니까.

“김원봉의 서훈(敍勳) 문제가 자극이 됐습니다. 김원봉은 독립운동가로서 훌륭한 사람일 수 있죠. 하지만,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국가로서의 배타적 정체성이라는 기본 중의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시작됩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국가의 높이에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국가를 진영의 논리로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국가보다는 민족 개념에 더 기대는 정치 세력이 형성됐죠. 우리는 프랑스나 독일이나 미국처럼 피 흘리며 투쟁해서 자력으로 근대적 국가를 세운 게 아니라 외부의 힘으로 해방됐고 외부의 영향하에 국가가 세워졌습니다. 조선이라는 왕조 국가가 근대 국가로 이행하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식민지가 됐습니다. 식민지 시기에는 민족이라는 개념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요.”

―국가가 국가 운영 체제로 관리되지 않고, 민족 개념과 혼동돼 운영되고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김원봉 서훈이라든지, 헌법에서 자유란 개념을 빼려는 시도들이 국가와 민족 관념을 혼동해서 나타나는 일들입니다. 서훈이란 것은 대한민국 정부에서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해를 끼친 사람은 서훈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민족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김원봉을 서훈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국민의 안전과 이익을 보장하는 배타적 존재 집단인 국가의 존립 기반과 정체성이 흔들리는 겁니다. 국가는 법률로 관리되는데 민족은 법률로 관리되는 대상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입니다. 상상의 공동체를 중심에 놓고 현실체인 국가를 보기 시작하면 국가 정체성이 흔들리고, 국가 운용 방향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위험이죠.

“국가가 민족을 관리하지, 민족이 국가를 관리하는 일은 없죠. 국가는 민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민족은 민족 자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통일을 위해서 민족 관념을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지만, 통일이란 현실적으로 국내법과 국제법에 의해서만 완성됩니다. 남북이 통일을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 즉 국가 간 통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민족이라는 동질감이 통일 추동력으로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통일을 완수하는 법적 주체는 국가입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해야 통일 논의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현 정부에서는 ‘아무나 흔들 수 없는 나라’, 지금보다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부든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약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결과가 중요합니다. 소득주도 성장이나 복지 정책이 실제적으로 더 강한 나라를 만드는 방향으로 역할을 했을까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시행해서 성장이 이뤄지면 옳은 정책이고, 성장에 방해가 됐으면 옳은 정책이 아닙니다. 만약 소득주도 성장 정책으로 성장이 꺾였는데도 이 정책을 계속하려 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죠. 복지 확대도 사회 건강성을 회복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도를 맞춰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 교수의 국가론은 ‘부국강병’론으로 이어졌다. 국가는 자본주의 발전국가와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국가, 그리고 실업과 빈곤, 재해 등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복지국가 등 여러 형태가 있지만, 최 교수는 “국가의 최우선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는 구성원들이 임의대로 폭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그것을 모두 거둬 총체적으로 관리합니다. 예를 들어, 국군의 날 행사는 국가가 폭력을 얼마나 잘 관리하고 있는지, 얼마나 잘 훈련했는지를 보여주는 행사입니다. 대내적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잘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을 주려는 것이고, 대외적으론 우리가 이렇게 강하니 함부로 건들지 말라는 것을 과시하는 겁니다. 국가란 원래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국군의 날 행사인 군사 퍼레이드를 없애고, 가수를 불러 위로 공연을 한 것은 국가가 무엇인지 모르는 행위와 같습니다. 국가와 민족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 때문에 발생한 일일 것입니다.”

―교수님은 시선의 높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선의 높이란 무엇입니까.

“어떤 인간도 자기가 가진 시선의 높이 이상을 살 수는 없습니다. 국가도 국가가 가진 시선의 높이 이상으로는 운용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선의 높이를 계속 높이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중진국 중에서는 최상위에 위치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다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갈수록 더 듭니다. 더 높은 시선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딱 여기까지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선진국으로 가려면 창의성이 있어야 합니다. 창의성이란 아직 보이지 않은 곳, 아직 해석되지 않은 곳으로 넘어가려는 무모한 도전입니다. 우리가 아직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누가 만들어 놓은 것만 따라가고 이미 만들어 놓은 것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익숙한 문법과 태도에 갇힌 것이죠.”

―어떤 불안한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는 거죠.

“모든 면에서 본질적 가치보다는 기능에 갇혀 있습니다. 공정이나 도전이나 언행일치나 곰곰이 생각하는 능력 등과 같은 본질적 가치들은 눈에 잘 보이는 것이 아니지만, 기능은 매우 직접적이죠. 눈에 보이고 직접적인 것에 더 쉽게 반응하는 습관들이 그런 징후들입니다. 정치를 버리고 정치 공작에 더 열심인 것이나 능력을 따져서 사람을 쓰지 않고, 내 편인지 아닌지를 따져서 사람을 쓰는 일도 그렇죠. 나라 전체가 예술이 밀려나고 예능이 대세인 것도 우리의 한계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선도력은 눈에 보이지 않은 곳을 향한 도전의 결과이고, 따라 하기는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직접적인 것에 반응하는 습관을 갖게 하죠.”

―시선의 높이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박 전 대통령 때 일어난 일이 문 대통령 때도 그대로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기득권이 저 기득권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가치나 태도가 바뀐 것이 아니라 사람만 바뀐 것이죠. 별 차이 없이 똑같은 수준의 사람들이 옷만 바꿔 입고는 전혀 다른 사람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르지만, 시선의 높이가 같기 때문입니다. 혁명은 삶의 방식이나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겁니다. 이 낙하산이 저 낙하산으로 바뀐 것은 혁명이 아닙니다. 낙하산 인사 자체를 하지 않아야 혁명입니다. 기능에 빠진 삶의 습관이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으로 바뀌어야 시선이 높아집니다. 또 시선이 높아져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계속 물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이 기능에 갇힌 삶을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개인 연구실에서 “내가 정한 뜻대로 내가 기필코 가야 한다는 생각은 제도를 넘나들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말하며 공자의 ‘4무(毋)론’을 설명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새 어젠다는 ‘선진화’ … 사유의 종속 벗고 국가의 시선 높여야”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내가 부정했던 것들을 내가 안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공자는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인격이 가져야 할 황금률을 제시합니다. “자기가 원하지 않은 것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 가장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자립형 사립고를 폐지해야 할 학교로 비판했으면 자기 자식은 자사고에 안 보내야 하고, 외국어고를 폐지해야 한다고 했으면 외고에 안 보내야 합니다. 다주택을 비판하면서 장관이 다주택자이면 안 됩니다. 표절을 방지해야 할 장관이라면 스스로는 표절을 안 해야 합니다. 본질을 포기하고 기능에 빠지면 이런 웃지 못할 일들이 권부(權府)에서까지 태연하게 일어납니다. 계속 이러면 선진국으로 가지 못하고 혼란만 계속되는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창의성과 독립성 문제를 철학 종속성 관점에서 해석하신 적이 있지요.

“조선 시대에는 중국 철학을 우리 생각 삼아 썼고, 나중에는 일본, 미국 등의 생각을 따라서 살다 보니 우리는 사유의 종속성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아직 우리는 지식 생산국이라기보다는 지식 수입국입니다. 종속성에 빠지면, 믿고 따르는 바로 그 생각 방식을 기준으로 삼게 되죠. 습관적으로 기준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따지다가 기준에 맞으면 참이나 선, 맞지 않으면 거짓이나 악이라는 진위 관념과 선악 관념에 매몰됩니다. 당연히 도덕 지향적인 특성을 갖게 되죠. 진위·선악 관념에 빠져서 논리를 따르지 않고 감성을 따르는 원초성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적이라기보다는 감각이나 본능에 의존하게 되죠. 지적으로 가장 높은 시선인 과학과 철학이 우리나라에서 아직 시작되지 못한 이유입니다. 종속성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속성을 극복해야 비로소 독립적인 삶이 가능합니다.”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진(秦)나라는 원래 힘이 크지 않은 작은 나라였다. 국력을 키우기 위해 변법(變法), 즉 혁신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나라에서 어떤 정책을 내놔도 백성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상앙이라는 재상이 성의 남문에 말뚝을 하나 박아 놓고 이를 북문에 옮기는 사람에게 거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를 믿지 않았던 주민들은 말뚝을 옮길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장난삼아 말뚝을 뽑아 북문에 옮겼다. 상앙은 이 사람에게 약속대로 거금을 주었고, 신뢰를 회복한 진나라는 혁신에 성공해 마침내 중국 대륙을 통일하게 됐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이 있듯이 국가 운영에서 신뢰가 우선이라고 봅니다.

“국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국가의 말을 국민이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신뢰가 있으려면 대통령이 거짓말을 해선 안 됩니다. 지금 국정이 이렇게 꼬이게 된 최초의 사건은 문 대통령이 스스로 만든 인사 5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의 의혹이 드러난 후보자는 장관에 임명하지 않겠다고 해 놓고 지키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신뢰가 무너진 겁니다. 신뢰는 모든 국민과 공유해야 하는데, 같은 진영끼리만 공유하고 있습니다. 신뢰라는 본질적 가치를 포기하고 내 사람을 써야 한다는 기능을 선택한 결과입니다.”

―국가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문명이 급변하는 시점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올라타 어떻게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 선도적 위치로 뛰어오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이 나라가 진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시야가 국내에 갇히면 안 됩니다. 국제 경쟁 구도 속에서 정책을 펴야 합니다. 근로시간 단축 등도 국가 간 경쟁을 고려했어야 합니다. 정치권은 기능적인 권력 싸움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권력을 차지해야 제대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큰 착각입니다.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놓치고 싸움만 하고 있으니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조선의 말기를 보고도 똑같은 행태를 반복하고 있으니, 우리는 아직 역사에서 배운 바가 없습니다.”

―‘2030’과 ‘5060’세대 간 갈등도 심각합니다.

“나라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세대교체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돼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어떤 논쟁에도 20대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국회의원 연령만 봐도 40대가 아니라 50대와 60·70대가 주축입니다. 세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정치권력 영역에 2030 젊은 세대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선 정치권 세대교체가 필요합니다.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할당제가 시행되듯이 젊은 세대 할당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2030에게 활동의 장을 마련해 주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낼 수 있도록 해 줘야 합니다. 2030세대는 대한민국을 책임질 미래 세대입니다. 그런데 요즘 어디를 가도 젊은 세대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기성세대의 탐욕이 극에 이르렀습니다.”

―86세대가 기득권이 강고해 세대교체가 더디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어느 진영에 속하는가와 관계없이 86세대는 이미 탐욕스러운 기득권층이 됐습니다. 사회가 선순환된다고 하면 시대마다 거기에 맞는 어젠다를 설정하고 그걸 잘 해결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는 건국(정부 수립) - 산업화 - 민주화라는 어젠다를 시대에 맞게 설정하고 해결하며 직선적 발전을 했는데, 지금은 민주화 다음의 어젠다 설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어도 86세대는 아직 민주화 시대의 습관적인 태도로 급변하는 현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진보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간 대한민국의 발전은 건국(정부 수립) 세력이 산업화 세력에 의해 도태되고, 산업화 세력은 민주화 세력에 의해 도태되는 과정이었습니다. 민주화 세력을 도태시킬 새로운 세력의 출현 여부가 우리나라의 발전과 진보를 결정할 것입니다.”

―민주화 다음의 어젠다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선진화라고 생각합니다. 선진화는 선도력을 가진 사회의 모습입니다. 선도력은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데, 창의성은 독립적 주체들이 발휘할 수 있습니다. 독립적 주체들은 ‘우리’라고 하는 우리에서 이탈해 자신만의 고유한 독립적 자발성에 의존합니다. 독립적 주체들이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면서 스스로 책임지는 그런 토양에서만 창의성이 나옵니다. ‘우리’ ‘진영’ ‘과거’에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함에 집착하는 주체들이 우리 역사의 무대에 등장해야 합니다.”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하며 비판도 많이 했습니다.

“시선을 한 단계 더 높여 거기에 맞는 어젠다를 설정하고, 그것을 완수할 새로운 세대로 주도 세력이 교체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조선 말기와 같이 엄청난 국력 약화를 겪고 강대국들의 노리갯감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미 그 비극적인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존해 온 민족인데 어떻게 번영시킨 나라인데 여기까지만 살다 가도 괜찮겠습니까? 지금 심각한 문제는 고급 지식인들마저 반성적 사고력을 잃고 진영의 대변자로 전락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진영의 대변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영을 넘어서서 새로운 길이 어디인지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지식인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식인들이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높이의 새로운 시선을 가지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정치라고 하는, 그것도 기능적인 레벨의 정치라고 하는 블랙홀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 용해돼 버립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회를 작동시키는 톱니바퀴가 2개 있습니다. 교육과 정치입니다. 우리나라는 교육이 독립적인 사고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치가 독립적인 사고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하지 않는 정치로 변질된 것이죠. 교육과 정치가 악순환 고리로 고착됐습니다. 대오각성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 구도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악순환 고리가 끊어지지 않으면 비효율이 쌓이게 되고, 국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본질을 포기하고 기능에 빠진 태도로는 고칠 수 없습니다.”

유병권 정치부장 yb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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