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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게재 일자 : 2019년 09월 20일(金)
‘놀이터 관리인’과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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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성균관대 명예교수·유교철학

밤새 놀이터 깨끗이 정리하면
아이들은 관리인 의식도 못해

모든 혼란의 중심엔 정치 관여
정치에 관심 갖지 않을 수 없어

훌륭한 사람을 지도자로 뽑을
새로운 방법에 대해 고민할 때


맹자는 심오한 진리를 설파한 대철학자였지만, ‘맹자’ 앞부분을 읽다가 보면 온통 정치 이야기여서 앞부분만 읽어본 사람은 맹자를 정치학자로 오인하기 일쑤다. 나라가 어지럽고 정치가 혼란해지면 사람들의 관심이 정치로 쏠리게 마련이다. 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유사 이래 가장 혼란했던 시대였으므로 그는 어쩔 수 없이 정치 문제를 먼저 꺼냈을 것이다.

오늘날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해답은 과거에 있다. 특히, 인문·사회 분야는 더욱 그렇다. 고전은 옛날에 있었던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책들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참고할 만한 것이 많다. 고전은 지하수와 같다. 지상의 물은 고갈되기도 하고 오염되기도 하지만, 깊숙한 땅속에 있는 지하수는 변함없이 흐르다가 사람이 뚫기만 하면 영락없이 솟아나 목마름을 해소해 준다. 그러나 지하수가 아무리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명약이라 하더라도, 지하수를 뚫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에겐 해결해줄 방법이 없다.

공자는 ‘중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좋은 정치 방법이 고전 속에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 정치가 실행되지만, 그런 사람이 없으면 실행되지 못한다.’

오늘날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어 가고 있고, 그 중심에 정치가 관여돼 있기에 오늘날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란 참으로 어렵다.

‘노자’라는 책에는 정치의 수준에 대해 네 단계로 구분해 설명한 부분이 있다.

‘임금이 최고의 정치를 하면 백성들은 그 임금이 있다는 사실만을 안다. 그다음 수준의 정치를 하면 백성들은 그 임금을 좋아하고 찬양한다. 또 그다음 수준의 정치를 하면 백성들은 그 임금을 두려워한다. 최하의 정치를 하면 백성들은 그 임금을 업신여긴다. 임금에게 신의가 없으면 아무도 그를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을 아껴야 한다. 공이 이뤄지고 일이 끝나면 백성들은 모두 말한다. 우리들 스스로가 그렇게 했노라고.’(‘노자’ 제17장)

임금을 어린이 놀이터의 관리인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최고의 관리인은 밤에 나가서 뾰족한 돌이나 유리 조각이 있으면 주워서 어린이들을 다치게 할 만한 것을 다 정리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둔다. 다음 날 어린이들은 종일 재미있게 놀지만, 관리인의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관리인은 일부러 숨기려는 게 아니라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다음 수준의 관리인은 그 전날 미처 놀이터를 다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만약 어린이들이 다치면 마치 자기 집의 아이가 다친 것처럼 지극정성으로 치료해 준다. 이 경우 어린이들은 그 관리인을 부모를 따르듯 가까이하며 좋아한다. 세 번째 수준의 관리인은 두 번째 수준의 관리인처럼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 경우 그 관리인은 어린이들이 다치도록 밤에 나가서 유리 조각을 깔아 놓기도 하고, 뾰족한 돌을 묻어 놓기도 한다. 그런 뒤에 어린아이가 다치면 정성을 다해 고치는 시늉을 한다. 이 경우의 어린이들은 왠지 속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또 다칠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해 그 관리인을 두려워한다.

최하 수준의 관리인은 밤에 유리 조각을 깔아 놓기도 하고, 뾰족한 돌을 묻어 놓기도 하지만, 막상 어린이들이 다치면 치료해 주겠다고 말은 잘하면서도 능력이 없어서 실지로 치료해 주지 못한다. 이 경우의 어린이들은 그 관리인을 업신여길 뿐만 아니라, 말만 하는 그를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능력이 없는 관리인일수록 말을 앞세우지만, 말을 앞세우는 사람은 믿을 수 없다. 참으로 훌륭한 관리인일수록 자기가 한 일은 잘한 일이 아니라 당연히 할 일이므로 내세울 게 없다. 그렇기에 어린이들이 행복하게 됐어도 어린이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렇게 됐다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서구인들에게 많이 속고 있다. 그들은 과학의 힘으로 무기를 만들어 온 세계를 점령, 지배했으므로 지배당했거나 뒤떨어진 사람들은 그들을 앞서가는 사람들로 생각해 정치·경제·교육·예술·예절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들의 것을 따르고 있다. 한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 제도 중에서는 서구의 민주주의가 제일 우수하고,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제도라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제는 한 번 생각해볼 때가 됐다.

선거를 하면 훌륭한 사람을 뽑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노자가 제시한 최고의 정치인과 그다음 수준의 정치인은 아마도 출마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출마를 하더라도 당선을 목적으로 헛된 말을 하지 않을 것이므로 당선되기 어렵다. 선거에 출마한 사람이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을 짜야 한다. 표를 얻는 방법 중에 눈앞의 욕심을 채워주는 것보다 더 빠른 것이 없다. 선거 전략을 짤 때는 세 번째 수준의 정치인과 네 번째 수준의 정치인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들은 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선거가 계속될수록 사람들의 욕심은 커지고, 그럴수록 정치인의 수준은 계속 떨어진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타락한 정치인이 속출하고 있는 근본 원인은 바로 이 선거제도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그렇다고 옛날의 임금 제도가 좋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군조선 때도 세습 제도가 아니었고, 신라 때도 세습 제도가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참으로 훌륭한 사람을 정치의 대표자로 모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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