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역사… 그 위대한 순간들>10세 캐디 대활약에… 20세 무명 위멧 US오픈 우승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13년 US오픈 당시 프랜시스 위멧(오른쪽)과 캐디 에디 라워리의 모습.

美 위멧, 1913년 초청선수로 출전
라인 잘읽는 캐디 덕에 깜짝 우승
英영웅 바든 꺾고 美골프영웅으로

‘내 생애 최고의 경기(The Greatest Game Ever Played)’라는, 골프를 소재로 만든 영화가 있다. 미국의 프랜시스 위멧과 영국의 해리 바든을 주인공으로 만든 영화다. 가난한 위멧은 뉴욕 인근 브루클린 골프장에서 캐디 일을 하면서 근근이 용돈을 벌었다. 위멧은 연습 라운드에서 바든이 코스에서 잃었던 공을 주워들면서 당시 최고 지존이던 바든을 동경하며 자란다. 위멧은 천재성을 보이면서 각종 대회를 휩쓸었지만 아버지의 반대와 가난으로 골프를 포기한다.

1913년 브루클린골프장에서 US오픈이 열리게 된다. 영국은 이미 바든과 테드 레이 같은 당대 최고의 골퍼들을 앞세워 US오픈을 정복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그들에게 대적할 대형 선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골프는 영국이 주도하며 1910년까지 16차례 열린 US오픈에서 모두 우승컵을 가져갔다. 미국 선수로는 1911년과 1912년 존 맥더못의 2연패가 전부였다.

디 오픈 역시 50년이 훨씬 지난 상황에서도 단 한 명의 미국인도 우승한 적이 없었다. 미국 관계자들은 바든을 이길 선수는 위멧뿐이라고 생각했다. 형편상 골프채를 놓았던 위멧을 원했다.

위멧은 1910∼1912년까지 US아마추어에 내리 참가했지만 우승은 못 했다. 하지만 당시 로버트 왓슨 미국골프협회(USGA) 회장은 그가 재목임을 알아차렸다. 위멧은 결국 초청 형식으로 참가했다. 위멧은 대회가 불과 몇 달 앞으로 다가와서야 골프채를 다시 잡았다. 다행히 대회 코스가 위멧의 집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브루클린 골프장이었다.

9월 17∼18일 이틀간 대회가 열렸다. 당시 US오픈은 2일 동안 오전과 오후 36홀씩 4라운드로 진행됐다. 기대를 모았던 위멧은 첫날 16위에 머물렀다. 영웅의 탄생을 기대했던 미국인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선두는 147타를 친 바든, 2타차로 레이가 2위였다. 이튿날 장대비가 쏟아졌다. 오전 18홀 결과 위멧이 4타를 줄여 바든, 테드와 함께 공동 선두가 됐다. 오후 마지막 라운드에서 셋 모두가 79타를 쳐 공동 선두를 지켰다. 결국 다음 날 18홀을 치르는 연장전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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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은 “미국의 무명 아마추어 선수가 US오픈에서 일을 내다”라며 위멧을 대서특필했다. 갤러리들은 미국 선수가 영국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며 일방적인 응원을 펼쳤다. 오전 연장 9홀까지도 세 선수는 타이였다. 승부는 오후에 갈렸다. 위멧은 줄 버디를 낚으며 피치를 올렸다. 위멧은 1언더파 72타를 쳤고, 해리와 테드는 4오버파 77타, 5오버파 78타를 쳤다. 20세 무명의 아마추어가 세계 챔피언 바든을 물리치자 하루아침에 미국의 골프영웅으로 떠올랐다. 캐디를 맡았던 에디 라워리도 역시 영웅이 됐다. 원래 캐디를 맡기로 했던 형을 대신해 학교를 빠진 라워리는 10세에 불과한 꼬마였다. 위멧 자신도 “골프백보다도 작은 놈이 어떻게 캐디를 보냐”고 업신여겼다. 하지만 라워리는 퍼팅 라인을 읽는 뛰어난 눈썰미를 가졌다. 꼬마 캐디가 가르쳐 준 대로 친 퍼팅은 백발백중이었다. 캐디가 우승의 ‘수훈 갑’이었다. 라워리는 훗날 자동차 딜러로 갑부가 됐고 위멧과 죽는 날까지 함께했다. 영화처럼 감명 깊었던 위멧의 우승은 미국에서 골프 붐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됐다. 너도나도 골프채를 메고 골프장으로 달려갔다. 미국 골프영웅은 이렇게 탄생했다.

골프역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