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北 비핵화와 중국의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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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한국군사문제연구원 북한연구실장

23일 미국 뉴욕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번째 정상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한·미 동맹은 동북아 평화 및 안보에 핵심 축으로 흔들림이 없으며 한반도에는 핵실험이 중단되는 등 평화를 위한 톱니바퀴가 잘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긍정적 평가를 했다. 3차 미·북 회담이 열리면 비핵화의 동력 확보 등 세계사적 대전환이 이뤄질 것으로 확신하는 회담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3차 미·북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려 진정한 평화의 길이 모색되길 바란다. 하지만 두 차례 미·북 정상회담의 성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회담 성과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비핵화를 지향한다는 모양새만 냈을 뿐 실제적인 비핵화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통해 중국 입김이 반영된 데서 찾아야 한다. 우선, 지정학적으로 북한은 중국이 자유 진영과 직접 맞닥뜨리는 충격을 완화시키고 있으며, 6·25전쟁 당시 230만~300만 명에 가까운 중공군이 참전, 약 92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함으로써 북한은 중국이 베풀어준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북한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국에 종속돼 있다. 2015년 이후부터 북한의 대중(對中) 무역 규모가 90%를 넘어서고 있어 중국 지원 없이는 북한 경제가 가동되지 않는다고 하겠다. 중국은 북한 경제를 완전하게 예속화시키기 위해 화폐 ‘표준 공유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주도의 신 실크로드 전략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도 표준화 제정 사업의 일환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미·북 정상이 3차례 만나는 동안 시진핑(習近平)과 김정은은 5차례나 만나 미국의 북한 비핵화 전략에 대한 대응 전략을 모색했다. 미·북 정상회담에서 논의할 비핵화 범위와 속도 등을 북·중이 사전에 조율하는데 이것이 미·북 정상회담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다. 두 차례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원칙에는 합의했지만, 완전한 비핵화(CVID)를 위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또한, 영변 핵폐기 범위(+알파)에 있어 북한이 중국과 사전 조율해 놓은 범위를 벗어나자 더 이상 회담을 진행할 수 없었다.

김정은의 4차 방중(2019. 1. 7~10) 언론 취재 과정에서 중국 CCTV가 김정은이 시진핑의 발언을 받아 적는 모습을 방영, 상하(上下)관계임을 보여줌으로써 비핵화 협상 결과에 중국 입장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음이 입증됐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유엔은 대북 제재 강도를 높여 갔는데,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대북 제재에 동의했다. 이는 1990년대 도광양회와 화평굴기에 의해, 화해를 위장한 몸짓에 불과하고 밀(密)무역을 통해 북한을 지원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북한 비핵화에 있어 중국의 영향력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은 6·25전쟁에서 중국에 크게 신세를 졌을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종속돼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중국이 뒤에서 리모컨으로 조종하듯이 북한을 조종하고 있으므로 중국의 동의 없이는 미국은 북한과 어떠한 합의도 도출할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이 망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 미국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나 않을지 우려하면서 북한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으로도 중국은 북한 사회 전반에 걸쳐 주종 관계를 형성, 북한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