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유튜버’로 변신한 김병주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 국방TV 유튜브 스튜디오에서 손자병법 강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 유튜버 된 김병주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4성장군 전역 2개월만에 국방TV 유튜브서 인기몰이…
전문성에 아재개그 화술 2030도 열광
손자병법은 인문학 서적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국가 생존 위한 전략 설파
때론 흐르는 물처럼 변하고
가둬놓고 한번에 터뜨려라
병법논리 인생사에도 적용
‘先勝以後求戰’ 가장 좋아해
준비해 이겨놓고 싸워야지
싸움부터 시작땐 피해만 커
손자는 ‘국력속의 道’ 강조
대내외적 복합위기 시대에
국민통합·한미동맹 중요
39년 3개월간 몸담았던 군에서 은퇴한 김병주(57)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올해 6월 ‘유튜버’로 변신했다. 민간인 신분이 된 이후 처음 택한 직업이다. 1강 ‘무한경쟁에서 이기는 비결, 여기에 다 있다’부터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최근 15강 ‘사막의 여우 롬멜, 그가 한순간에 추락한 이유’까지 이어진 ‘김병주의 손자병법’은 군을 넘어 일반인들에게도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조회수가 3만 회에 육박하면서 SBS뿐 아니라 해외 CNBC 방송을 탔고, 대기업의 러브콜도 쇄도하고 있다. 군의 대표적 ‘전략가’였던 김 전 부사령관이 ‘별 넷’의 권위를 내려놓고, 자칭 ‘옆집 아재’로 내려온 셈이다.
4성 장군이 전역 2개월 만에 유튜버로 변신한 것도 신선한 충격인데, 지난 19일 서울 용산 국방TV 유튜브 제작 현장에서 만난 김 전 부사령관은 한술 더 떴다. “꼰대가 되지 않고 합리적인 리더(지도자)가 되는 법을 알려드리겠다”면서 다양한 ‘아재 개그’를 늘어놨다. 군인 하면 떠오르는 딱딱한 이미지를 ‘개그’로 무너뜨리면서 감칠맛 나게 전하는 손자병법에 20∼30대까지 박수를 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듯했다. 지휘관 시절 매주 2시간씩 수십 년간 장병들에게 한 손자병법과 리더십, 전쟁사 강의가 밑천이었다. 여기에 국내외 대표적 전쟁 사례까지 간단명료하게 소개하는 화술 덕분에 ‘내용도 있고, 재미도 있는’ 유튜버로 등극한 김 전 부사령관은 이제 인생 2막을 즐기고 있었다.
김 전 부사령관을 일약 스타로 만든 ‘손자병법’, 왜 그는 이 오래된 고서에 꽂혔을까. 그는 “육군대학을 마치고 주로 ‘무경칠서(武經七書·중국의 일곱 가지 병서)’ 등 우리 조상들의 무과 시험 필독서를 쭉 공부했는데, 이 중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게 손자병법”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손자병법은 인문학 서적으로, 국가가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 경쟁하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설파한 것”이라며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윈윈 전략을 최고로 친다. 정 싸워야 할 경우에는 최소 피해로 이기라고 가르치는데, 피해가 크면 국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승리하더라도 바로 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춘추전국시대 140여 제후국이 패권을 가지고 싸웠던, 손자병법이 태동한 시기가 무한경쟁시대인 지금의 기업 환경과 비슷하다”며 “기업도 엄청나게 많은 기업과 국제적으로 경쟁하는데 어떻게 생존하고 번영해 나가야 하는지 손자병법을 공부하면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손자병법에 빠져들었나.
“육사 다닐 때부터 학문적으로 접하긴 했지만 관심을 갖고 깊이 빠져든 것은 1997년 육군대학 졸업하고 전방에서 소령으로 근무하면서부터다. 사실 그 전까지 군사학 중 전쟁사에 관심을 갖긴 했지만 전쟁 원리까지 터득하진 못했다. 손자병법은 군대에서는 전쟁 연습, 조직에서는 리더십, 개인에게는 인생사에 두루두루 적용된다. 그 후로 제 삶 속에 손자병법이 체화되면서 대대장·연대장 시절 전투 연습을 할 때마다 쉽게 상대를 이기는 법을 알게 됐다. 손자병법은 리더십의 보고로, 지휘관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전쟁 원리를 터득하니까 상대의 허점이 보여 자유자재로 작전을 하게 되더라.”
―어떻게 공부했나.
“손자병법 책을 책상 옆에 두고 수백 번 틈나는 대로 읽고 그 문장의 의미가 뭔지 고민해 보고, 전쟁사에 적용되는 사례를 연구했다. 손자병법은 전문 6109자로 아주 짧다. 한문으로 읽으면 한 시간 정도, 직역한 것을 읽으면 2시간이면 다 읽는다. 하지만 매우 압축돼 있기에 그것만 읽어선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 선조들은 수백 번을 반복해 읽으면 그 원리가 터득된다고 했다. 당 태종 때 지은 병서인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에 보면 당 태종과 신하가 손자병법 해석을 놓고 토의한 것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보면 원래 의미를 깨치는 데 도움이 된다.”
―손자병법이 2500년 동안 베스트셀러를 유지한 비결은.
“1년 동안 베스트셀러를 유지하기도 어려운데, 2500년 동안 세계 100대 베스트셀러에 항상 들어갔다. 과거 2500년 동안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성경·불경 등 종교서적 외에 일반 서적은 많지 않다. 어떤 병서들은 유교·법가 사상 등을 반영, 시대에 따라 좋게도 나쁘게도 평가되지만, 손자병법은 시대와 관계없이 물리현상, 자연현상, 인간 심리를 기초로 해서 작성됐기 때문이다.”
그는 손자병법의 ‘병형상수(兵形象水)’라는 고사성어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병형상수’는 ‘흐르는 물처럼 주변 형세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해야 전투에서 이길 수 있다’는 뜻으로, 군대 운영은 물같이 해야 한다는 의미다. 물은 높은 데를 피하고 낮은 데로 끊임없이 흐른다. 군사도 적이 대비한 데를 피하고 적이 대비하지 않은 허한 데로 끊임없이 파고 들어가야 하는데, 물과 닮았다. 또 물은 높은 저수지에 저장되면 엄청난 위치 에너지를 갖게 된다. 그것을 한꺼번에 터트리면 엄청난 세기로 내려온다. 물을 가득 채워놓은 게 양병(養兵)이다. 전시에는 가둬놓은 걸 한꺼번에 터트려서 엄청난 위력으로 이겨야 한다. 그건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이겨놓고 싸운다는 ‘선승이후구전(先勝以後求戰)’을 가장 좋아하는 구절로 꼽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전쟁할 때 현명한 사람은 이미 이겨놓고 싸우고자 한다. 반대로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일단 싸움부터 하고 이기려고 드는데, 그렇게 하면 피해가 커진다. 이겨놓고 싸우면 별로 피해가 없다. 이겨놓고 싸운다는 것은, 군사력을 강하게 만들고 대비태세를 잘해 두면, 적을 쉽게 이긴다는 의미다. 그런데 강하지도 않고 대비도 잘 안 돼 있는 상황에서 싸우면 피해가 엄청 커진다. 우리 군에 필요한 게 선승이후구전이다. 군을 강하게 만들고 대비태세가 잘돼 있으면 전쟁을 억제할 수 있고, 대비태세가 안 되면 적이 얕보고 공격할 빌미를 줄 수 있다.”
―우방이던 한국과 일본이 경제 전쟁을 하고, 안보 갈등까지 가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장기전으로 가면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는데.
“손자병법에 답이 나와 있다. ‘선승이후구전’ 구절은 싸움 이전의 얘기고, 이미 싸움이 벌어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손자가 싸움이 벌어진 다음에 가장 중요시한 것은 국민을 하나로 단결시키고, 전쟁을 오래 끌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장기전으로 가면 피해가 너무 커지고, 피해가 커지면 위기가 오고 제3국의 침략을 받을 수 있다. 한·일이 장기전으로 가면 중국이나 북한 등 다른 나라가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국민이 단결한 가운데 속전속결로 단기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근 미·중 경쟁 심화 등 대내외적 갈등으로 복합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손자가 이 시대에 나타난다면 어떤 해답을 내놓을까.
“손자는 심플(간단)하다. 지금은 동북아 지역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다. 그건 우리에게 굉장한 도전 요인이다. 새로운 질서가 재편되는 때는 국가 지도자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전략적 지혜와 혜안이 필요하다. 이럴 때 우리에게 유리한 질서를 만들어내야 한다. 손자는 우리에게 유리한 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 첫째, 국력을 높이고 군사력을 키울 것을 주문한다. 손자는 국력 속에서 ‘도(道)’를 매우 중요시한다. 국민이 비전 아래 하나로 뭉치는 것이 도다. 그렇게 뭉치면서 국력을 높이고 군사력을 키워야 한다. 둘째, 손자는 ‘동맹’을 굉장히 강조한다. 왜냐면 혼자만으론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동맹을 어떻게 하느냐에 운명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손자가 살아 있다면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면서 주변국과의 관계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두 수레바퀴 중 한쪽 바퀴는 한·미 동맹이고, 다른 쪽 바퀴는 주변국과 잘 지내는 외교적 노력이다. 위기와 기회는 동일 선상에 있다. 이럴 때 국력을 키우고 군사력을 키우고 동맹을 잘하면 오히려 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는데, 그래서 전략적 혜안이 필요하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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