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훔쳐보는 시선을 경멸하듯… 누드화, 캔버스 바깥을 응시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아가씨들’, 1907, 캔버스에 유채, 243.9×233.7㎝.

■ 조주연의 현대미술 속으로 - ① 누드와 현대미술

- 서양미술사

피카소‘아비뇽의 아가씨들’ 볼품없는 몸매… 마네‘올랭피아’ 관람자의 은밀한 시선 차단

고갱은 죽음 암시하는 저승사자로 성욕 파괴… 400년 이어진 ‘여신같은 몸매 · 성적 대상化’의 관습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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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이 무엇인가는 간단한 답이 불가능한 질문이지만, 어떤 답을 하건 빠지지 않는 기본 답이 있다. 전통의 부정이다. 그리고 현대미술의 이런 면모를 더없이 잘 보여주는 장르는 누드다. 조금 과장해 루브르 미술관의 두 작품 중 하나가 누드라고 할 정도로 서양 미술을 주름잡은 장르이기 때문이다.

1863년에 파리에서 두 점의 누드화가 나왔다. 알렉상드르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과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다. 카바넬의 그림은 그해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의 연례 전시회 ‘살롱’에서 대상을 받았다. 마네의 그림은 2년 후 살롱 전에 입선했지만 엄청난 물의를 일으키며 비난에 시달렸다. 외설이라고. 글쎄, 그림만 놓고 봐서는 딱히 왜 ‘올랭피아’가 ‘외설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의아하다. 둘 다 여성의 신체를 내놓고 보여주기는 매한가지인 데다, 남성 관람자의 성적 환상을 부추기거나 만족시키기는 카바넬의 그림이 오히려 더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비너스의 요염한 자세와 이를 마음껏 훔쳐보는 아기 천사의 음탕한 눈길을 보라! 이런 카바넬의 ‘비너스’에 비할 때 마네의 ‘올랭피아’는 차라리 ‘깬다’고 할 수 있는 모습 아닌가? 신체는 빈약하고 얼굴은 각진 데다 고개는 빳빳이 들고 시선은 관람자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뭔가 이상하고 불편한데, 왜 그런가를 헤아리려면 다른 그림 한 점이 더 필요하다. 바로 마네가 ‘올랭피아’를 그릴 때 염두에 둔 누드화의 고전,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그것이다.

마네의 그림은 여러 점에서 티치아노의 그림과 유사하다. 실내의 침상에 여성의 신체를 위치시킨 것, 침상에 기대 누운 신체의 방향, 관람자를 바라보는 시선, 발치께 동물을 둔 것, 시녀가 등장하는 광경 등 구성을 거의 베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티치아노의 그림은 마네의 ‘올랭피아’와 달리 무척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도대체 왜? 그것은 티치아노의 그림이 누드화의 전통과 관례를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누드에 대한 기념비적인 저서 ‘누드의 미술사’(1956)를 쓴 영국의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 경에 의하면, 누드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인들이 창안한 미술 형식이다. 클라크에 따르면 “대부분 볼품없고 가엾은 인체”를 신이나 가질 법한 아름다운 신체로 이상화한 것이 누드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완벽한 신체에 대한 이상은 시대별로 다르기에 누드의 모습도 시대마다 다르다. 하지만 클라크는 어떤 경우든 누드라면 보는 이에게 성욕을 촉발한다고 했다. 타인의 신체와 결합하려는 욕망은 불완전한 인간에게 근본적인 본능의 일부인 데다, 그 신체가 아름답기까지 할 때는 욕망이 더 커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적 이상화와 성적 대상화는 누드의 두 근본 요소라 할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들의 비중이 시대에 따라 달랐다는 사실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 누드는 신적 이상화가 성적 대상화보다 강조되는 경우다. 가령, 밀로의 ‘비너스’를 보자. 이 고대의 누드 입상은 상당히 큰 남자보다 머리 하나는 족히 더 큰 203㎝다. 양팔은 잘린 상태이나 신체의 비례와 묘사는 다부지고, 얼굴을 올려다보면 대단히 숙연하다. 봉긋한 젖가슴을 드러내놓고 있기에 이 비너스에도 성적 대상화는 있다. 그래도 등신대보다 훌쩍 큰 키와 강건한 신체 그리고 엄숙한 표정을 볼 때, 고대인들이 재현한 이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은 신적으로 이상화된 비너스, 즉 신의 위엄이 앞서지, 성적으로 대상화된 비너스, 즉 성의 관능이 먼저라고 하기는 어렵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폴 고갱 ‘저승사자가 지켜본다’, 1892, 캔버스에 유채, 116.1×134.6㎝.

사정이 180도로 달라진 것은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면서다. 근대의 누드는 신적 이상화보다 성적 대상화가 점점 더 강해졌다. 말인즉슨 이제 비너스는 위엄에 찬 여신이라기보다 관능에 찬 여신으로, 남성 관람자의 은밀한 즐거움을 감춰주는 미명이 됐다는 이야기다. 우선, 누드가 일단 누웠다. 집 안이든 풀밭이든 파도 위든 아주 편안하게 기대 누운 다음, 눈을 감고 있거나, 눈길을 관람자에게 두지 않고, 혹 관람자를 바라본다 해도 티치아노의 누드화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며 초대하는 눈길이다. 따라서 관람자는 둘 중의 한 위치에 선다. 그림 속의 비너스가 자신을 쳐다보지 않기에 마음껏 훔쳐볼 수 있는 위치 또는 그림 속의 비너스가 자신을 유혹의 눈길로 쳐다보기에 성적인 초대에 응하는 위치. 어떤 경우든 관람자는 누드를 시선으로 만끽하며 성적으로 지배하는 위치에 선다.

이것이 바로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면면하게 이어진 근대 누드화의 전통이고 관례다. 그리고 마네의 ‘올랭피아’가 깨뜨린 것도 바로 이 전통과 관례였다. 하나씩 꼽아보자. 우선 ‘올랭피아’가 재현하는 신체는 여신의 누드가 아니라 여인의 나체다. 왜 여인의 나체냐고? 여신의 누드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이상화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저렇게 빈약한 신체와 네모난 얼굴의 비너스는 없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누드화의 관례는 깨졌다. 그러나 마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올랭피아’에 재현된 나체는 보통 여인도 아니고 매춘부의 것이다. 알렉상드르 뒤마 2세의 소설 ‘동백아가씨’의 등장 인물인 올랭피아는 마네의 당대 파리에서 매춘부의 대명사로 통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림 속에서 올랭피아가 걸치고 있는 각종 소품, 즉 한쪽 귀 뒤에 꽂은 화려한 꽃, 피부색을 도드라지게 하는 목의 검정 리본, 깔고 누운 화려한 동양풍 숄, 꽃다발을 들고 온 흑인 하녀 등도 이를 암시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니 마네는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비너스가 있어야 할 자리에 돈을 받고 몸을 파는 매춘부를 누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미 분기탱천한 전통주의자들을 더욱 격노케 한 한 방이 더 있었다. 올랭피아의 눈길과 손짓이다. 티치아노의 누드화와 비교해 보면 올랭피아의 눈길이 얼마나 무뚝뚝한지, 국부를 가린 올랭피아의 왼손에 얼마나 힘이 들어가 있는지 보일 것이다. 무뚝뚝한 눈길은 관람자를 똑바로 쳐다본다. 당신, 거기서 나를 구경하고 있는 거 알아! 손에 들어간 힘은 자신의 성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비록 매춘부지만 나의 성은 내 것이야! 따라서 ‘올랭피아’ 앞에 선 관람자는 관음도 할 수 없고 초대도 받지 못하는 발각과 거절의 상황에 빠지는데, 이는 누드화의 역사에서 남성 관람자가 겪어본 적이 없는 정말이지 모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것이 자세나 표정 모두에서 그다지 외설스러운 면이 없는 ‘올랭피아’가 아름답고 고상한 누드화의 전통을 더럽힌 외설이라며 비난을 뒤집어쓴 사태의 진상이다. 한마디로, 마네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을 미명 삼아 성적 대상화를 일삼아온 근대 400년 누드화의 내막을 매춘부의 나체로 완전히 까발린 것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 캔버스에 유채, 130.5×190㎝.

이렇게 해서 누드의 신적 이상화는 현대미술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마네의 ‘올랭피아’ 이후에는 더 이상 비너스의 미명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성적 대상화는 어떨까? 여성의 신체가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일도 함께 자취를 감췄을까? 물론 아니다. 사라지기는커녕 일종의 반동이 일어났다. 가령, 고갱이 타히티에서 어린 현지처 테하마나를 모델로 삼아 그린 ‘저승사자가 지켜본다’는 그림을 보자. 여기서 고갱은 마네보다 한 걸음 더 나간 것처럼 보이면서도 사실상 ‘올랭피아’를 후퇴시키는 작업을 했다.

백인 매춘부의 나체를 흑인 원시인 소녀의 나체로 대체한 것은 언뜻 진전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당시 서구의 인종주의적 위계에서 흑인 원시인은 분명 백인 매춘부보다 더 낮은 현실의 존재였으니, 원시인 소녀를 비너스의 자리에 두는 것은 누드화의 관례를 매춘부보다 더 능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고갱의 원시인은 마네의 매춘부가 박살 낸 신적 이상화의 여파 속에서 충분히 나올 법한 변종이다. 따라서 더 중요한 것은 이 원시인 소녀의 시선과 자세인데, ‘올랭피아’에 비할 때 시선은 불분명하고 자세는 무력하다. 능히 ‘올랭피아’의 도전을 무화시키는 후퇴라 할 만하다. 저런 눈길로, 엉덩이를 내밀고 양손은 베개에 붙인 채 납작 엎드려 있는 테하마나의 자세는 ‘올랭피아’ 같은 주장과 도전은커녕 대비나 방어도 어려운 지경으로 여성의 신체를 다시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고갱의 ‘저승사자’는 남성의 성적 지배가 확고했던 ‘올랭피아’ 이전의 누드화 전통으로 되돌아간 것일까? 그렇지는 않았다. 고갱의 테하마나는 물론 남성의 욕망에 순응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남성의 성적 지배는 예전처럼 관철되지 않는데, 저승사자가 죽음을 암시하며 성적 욕망에 재를 뿌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갱의 ‘저승사자’는 양가적인 누드화다.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지배하고 싶은 남성의 욕망을 테하마나의 시선과 자세로 긍정하지만 그림에는 테하마나보다 훨씬 또렷한 눈동자로 관람자를 응시하는 저승사자가 있다. 사자는 성적 욕망에 깃든 죽음에 대한 남성의 공포를 명시하니, 이 점에서 보면 전통 누드화는 물론 ‘올랭피아’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면이 있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양가적인 성적 대상화마저 근절하고 누드화의 전통을 완전히 끝장낸 그림은 누구의 어떤 그림일까? 피카소가 고갱으로부터는 약 15년, 마네로부터는 50년도 더 지난 시점에 그린 ‘아비뇽의 아가씨들’이 위업의 주인공이다. 우선 ‘아비뇽’에서는 누드가 누워 있지 않다. 마네와 고갱도 유지했던 르네상스 누드화의 관례, 즉 수평의 누드를 수직의 누드로 전복한 것이다. 물론 서 있는 누드를 피카소가 처음 그린 것은 아니다. 그리고 수직의 누드로도 얼마든지 성적 대상화는 가능하다. 그러나 피카소가 세워놓은 누드를 보면 백인의 신체에 원시인의 얼굴이다. 마네의 매춘부와 고갱의 원시인을 조합한 누드다. 누드가 이렇게 통일성이 없어서야 성적 대상화가 순조롭게 일어날 리 없다. 더구나 저 낯선 원시인의 얼굴도 한 종류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가면과 고대 이베리아 조각의 두상이 뒤섞여 있다. 또 이런 누드가 무려 다섯이나 등신대를 훌쩍 넘는 대형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어쩌면 이들은 마치 누드화의 전통을 종합이라도 하는 것 같다. 여성 신체의 모든 측면을 다 보여주기 때문인데, 가운데 둘은 정면을, 가장자리 둘은 좌우 측면을, 나머지 하나는 앉은 채로 후면을 보이고 있다. 이 누드들도 클라크의 말대로 남성 관람자에게 성적 욕망을 일으킬까? 그러기는커녕 이들은 모두 관람자와 도전적으로 대치한다. 마네의 ‘올랭피아’에 등장했던 냉정하고 직접적인 응시를 더욱 난폭한 방식으로 다섯 배나 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릅뜬 눈으로 화면 바깥을 응시하는 ‘아비뇽’의 매춘부·원시인들은 관람자의 시선을 강력하게 끌어들인 후 그대로 받아치며, 누드화의 전통에 내재한 관람자의 정체와 위치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남성이고, 이성애자이며, 관음의 위치를 통해 성적 지배를 욕망하는 관람자.

이로써 피카소는 마네가 시작한 르네상스 누드화 전통에 대한 전복을 그 어떤 유보도, 은폐도 없이 완전하게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피카소의 이 유명한 누드화는 서양 누드화의 전통을 종합한 다음 전복한 현대미술의 쾌거가 된다.

미술이론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동대학원 미학과에서 예술철학과 미술이론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 및 동시대 미술과 사진 이론 연구자로 서울대 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현대미술 강의’ 등을 썼다.


■ 고대 누드

여성 아닌 남성이 주류
고대의 누드는 근대와 달리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주류였다. 그리스의 인체 조각상은 기원전 7세기경에 나타난 젊은 남성상(쿠로스)과 젊은 여성상(코레)에 기원을 두는데, 쿠로스는 누드상인 반면 코레는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남성 누드상의 규범은 7등신의 비례로 창을 든 남자를 묘사한 폴리클레이토스가 기원전 5세기에 제정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비례는 이후 계속 길어져 기원전 4세기에 이르면 8등신으로 변하고, 기원전 1세기에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이상적인 인체 비례를 10등신이라고까지 한 적도 있다. 10등신의 비례는 아무래도 너무 비현실적이지만, 이상적 아름다움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