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있는 명성교회 전경. 김삼환 원로목사가 1980년 세운 명성교회는 등록 교인만 10만 명에 달하는 초대형 교회다. 자료사진
기업처럼 몸집불린 교회들, 2000년대 들어 ‘富·목회권’ 세습 본격화
교단 재판국 무효판결 뒤집고 ‘허용’… 수습안 반발 논란 장기화 예고
예장통합교단 9월 총회서 승인
“은퇴 5년후 직계비속 청빙가능”
“교회 사유화 있을수 없어” 반발
공정한 절차 필요 목소리 커져
2001년 광림교회 계기로 확산
2013 ~ 2017년 143곳 대물림
이중 3분의2 ‘父子 세습’ 해당
사위·교차세습 등 변칙도 등장
재산의 사유화를 인정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습은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그 같은 당연한 권리가 ‘교회’의 세습과 연관되면 복잡해진다. 지난 26일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교단이 2년 이상 논란을 빚은 명성교회 부자(父子) 목사의 목회직 세습을 사실상 인정했다. 교회는 ‘성(聖)과 속(俗)’의 세계에서 ‘성’에 속한다고 믿기 때문에 교인이건 비교인이건 교회를 ‘개인의 재산’처럼 세습으로 물려준다는 것에 대부분 부정적이다. 그러나 교회 세습을 긍정하는 쪽에서는 나름대로 분명한 논리적 근거를 대며 세습의 합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명성교회 담임목사직 세습 논란으로부터 한국 교회 세습의 역사와 찬반 논리, 성서 속 교회 세습의 근거, 명성교회 사태의 향후 추이 등에 대해 ‘10문 10답’ 형식으로 정리해 봤다.
① ‘교회 세습’이란
교회 세습이란 아들이 아버지를 이어 목사가 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교회 세습은 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를 그 아들이 담임목사의 직책을 그대로 물려받아 목회활동을 하는 것을 이르는 용어다. 그러나 세습의 범위는 단지 교회의 울타리 안에 국한되지 않고, 파라처치(parachurch, 지역을 기반으로 한 교회보다 폭 넓은 개념의 선교단체 등)와 기업(교회와 그와 관련된 기업) 등으로 확대됐으며, 세습의 방식도 단순한 부자 세습에서 사위 세습, 교차 세습, 지교회 세습, 징검다리 세습 등의 변칙 세습으로 다양해졌다. 한국 교회는 수많은 교단 신학교에서 배출되는 목회자 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담임목사 수요로 인해 임지가 없는 무임(無任)목사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한 교회 혹은 기관의 담임자이기 때문에 자녀들이 이익을 얻게 된다면, 그러한 조건을 가지지 못한 수많은 목회자는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세습이 아닌, 공정한 청빙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그래서 높다.
② 명성교회 세습 논란 과정
등록 교인 10만 명을 자랑하는 초대형 교회인 명성교회의 세습 논란은 교회를 설립한 김삼환 목사가 2015년 정년퇴임한 후 아들인 김하나 목사를 2017년 담임목사로 청빙하면서 본격화됐다. 명성교회는 김삼환 목사가 퇴임하고 2년이 지나서 김하나 목사를 청빙했기 때문에 교단 헌법의 세습금지 조항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교계, 시민단체 등은 명성교회 측이 교단 헌법의 취지를 왜곡했다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교단 재판국은 지난해 8월 김하나 목사의 청빙이 적법하다며 명성교회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한 달 뒤인 9월에 판결을 취소하면서 재심에 넘겼다. 교단 재판국은 지난달 초 김하나 목사 청빙 결의를 무효로 판결했다. 그러나 26일 열린 예장 통합 교단은 2021년 1월 1일 이후에 김하나 목사 청빙을 가능토록 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장로회신학대 관계자들이 ‘교회 세습’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③ 한국 교회 부자 세습의 역사
한국 교회의 세습은 1973년부터 공식기록이 나타나지만,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고, 2001년에 광림교회가 세습에 성공하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1970년대에 목회를 시작했던 대형교회 목사들의 은퇴 시기가 집중된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국 교회의 세습이 특히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다. 그해에 충현교회가 교회 개척자 김창인 목사의 아들 김성관 목사를 제4대 담임목사로 결정했다. 그 결과 교회 안팎에서 극심한 갈등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④ 교회 세습 현황은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가 2013년 3월 12일∼2017년 11월 10일 접수한 교회 세습 관련 제보에 따르면, 전국 교회 143곳에서 대물림, 세습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3분의 2인 98곳은 명성교회처럼 부모가 자녀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직계 세습’이었다. 나머지 45곳은 자녀가 독립해 교회를 세운 뒤 부모 교회에 합병하는 형태나, 친분이 있는 두 교회 담임목사가 상대편 자녀를 차기 담임목사로 데려오는 ‘교차 세습’ 같은 변칙 세습이었다. 지역별로는 서울 55개 교회, 경기·인천 58개 교회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강남제일교회, 순복음성민교회, 경산중부교회, 양평성민교회, 꿈과사랑의교회, 제천동부교회, 대성교회, 충현교회, 수원성감리교회 등은 세습받은 목사가 떠나기도 했다.
⑤ 왜 다시 사회문제가 됐을까
1960∼1970년대에는 목사 아들이 ‘가난한 목회자’였던 아버지로부터 교회를 물려받는 것은 ‘가난’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1980년대 이후부터는 양적으로 급성장했다. 양적인 성장이 이뤄짐에 따라서 교회는 ‘기업’의 모습으로까지 성장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한국 교회가 대형화되고 기업화되며 교회 세습을 통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게 됐다. 교회 세습은 단순히 교회를 물려주는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단체를 물려주거나 파라처치나 기업의 형태로 물려주기도 한다. 시민사회는 한국 교회의 세습을 쟁점화하는 데 앞장섰다. 세습 문제의 핵심이 됐던 2001년 광림교회 세습 사건 때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독시민사회연대 등 10여 개 기독교계 민간단체가 광림교회의 세습을 사회문제화했다. 이처럼 2000년대 대형교회의 세습이 이어지면서 2010년대에는 개신교 교단들이 세습방지법을 제정했다.
⑥ 해외에서의 교회 세습은
몇 해 전 ‘교회 세습’에 대해 ‘미국 목회자’ 10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교회 세습에 대부분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아들이 목회자의 길을 가더라도 다른 교회에서 사역의 길을 걷도록 하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 교회에서도 교회 세습이 종종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흑인 대형교회나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교회 중에서 세습이 목격되고 있다. 이 조사에서 흑인 교회의 한 목사는 “흑인 대형교회는 대부분 세습하고 있다. 대형교회가 한 가족이 운영하는 소형 제국과 닮았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일부 흑인 교회의 세습 행태를 비판했다. 이 목사는 세습이 미국 내 많은 교회에서도 큰 이슈가 되고 있다며,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교회의 경우 이런 일이 많이 생긴다고 말했다.
⑦ 교회 세습의 찬성 논리는
안정적인 교회 운영에 유리하다는 의견이 많다. 후임자가 전임자와 같은 목회철학을 가지고 같은 스타일의 설교를 증거하며 그 교회의 교인들로부터 신뢰를 얻게 되는 것은 어느 한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여러 대형교회에서 아들을 훈련시켜 담임목사가 되게 함으로써 목회의 위험 부담을 줄이고 후임자의 시행착오와 적응의 시간을 줄이고자 했다. 실제로 한국의 일부 대표적인 교회들이 후계자 승계에 실패하며 골머리를 썩인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러한 차원에서 명성교회는 지금까지 해왔던 성스러운 일들을 잘 진행하기 위해 외부의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아들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교회 구성원들이 목회자의 아들이 교회를 이어받기를 원하고 그것을 공식 통로를 통해 결정한다면 세습에 그다지 큰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교회 내에서는 큰 힘을 얻고 있다. 교인들이 다수결로 결정했기 때문에 합법적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⑧ 교회 세습을 반대하는 이유는
우선 신학적인 측면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다. 교회 세습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부와 명예와 권력이 동반되는 담임목사직을 그 자녀 또는 자녀의 배우자에게 세습하는 행위는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하더라도 안으로는 교회의 성경적 정체성을 파괴하고, 밖으로는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방해하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성경적 공교회 정신에 근거할 때 교회 세습은 절대로 허용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보편적 교회를 믿으며,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고, 절대로 특정 목회자 또는 그 가문이 사유할 수 없다는 것이 세습을 반대하는 쪽의 주장이다.
⑨ 성서에서의 근거는
역사적으로 볼 때, 구약시대에는 아론의 제사장직이 세습됐으며, 다윗의 왕직도 세습됐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혈족주의는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와서 끊겼다. 예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컸으나 영적 측면에서는 혈족의 의미를 무시했다. 신약 성경에는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48-50)라는 예수의 말씀이 실려 있다. 가톨릭 교회는 사제에게 결혼을 허가하지 않으므로 교회 권력 세습의 문제는 개신교회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한편 신약성서 안에서는 교회 세습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교회는 혈육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며, 예수의 말대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신앙의 공동체다. 따라서 한국 교회에서 세습의 근거를 굳이 찾자면 유대교의 제사장과 개신교의 목사를 동일시함으로써 구약성서에서 성서적 근거를 찾아야 한다.
⑩ 명성교회 사태 향후 추이는
명성교회 부자 목사의 목회직 세습을 둘러싼 2년여의 갈등이 교단의 중재로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지만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어떤 이유로든 목회직 세습을 허용한 것은 이를 금지한 교단 헌법을 어긴 것이어서 파장은 계속될 전망이다. 명성교회정상화위원회는 “은퇴 후 5년이 지나면 다른 교회는 (세습이) 안 되지만 명성은 된다는 이 결정은 도대체 어느 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라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빠른 시일 내 교회법이 아닌 사회법에 근거해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교회 세습에 반대해온 교계 시민단체인 평화나무도 명성교회 수습안을 채택한 교단 총회 결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교회 일각에선 명성교회의 부자 세습 허용이 타 교단에도 영향을 미치는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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