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집권세력의 ‘민란’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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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전임기자

대통령은 국민의 공복이다. 쉽게 말해 주인 된 국민의 종이다. 종이 화가 많이 난 것 같다. 드디어는 조국 법무부 장관과 그 가족 비리 의혹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는 윤석열 총장의 검찰에 대해 사실상의 수사 중단을 요구하고, ‘오만한 검찰 권력’ 타도를 국민에게 선동하고, ‘민란’(민병두 의원)을 지휘하기에 이르렀다. 주말인 지난 28일 서초동 검찰청사 앞 대로는 조국 수사를 규탄하는 인파로 뒤덮였다. 국민통합의 정점에 있어야 할 대통령이 분열의 최전선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대결과 투쟁을 총지휘하는 형국이다. 사법 방해이고 민주주의 파괴 행위다. 마오쩌둥(毛澤東) 시절 계급 청산을 위한 문화혁명, 히틀러 시절의 인종 청소를 위한 군중동원 기운이 느껴진다.

사건 현장에 지문이 남듯 집회 현장에도 지문이 남는다. 주말 군중집회에는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지문이 남아 있다. 이날 시위는 하루 전인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에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주문하고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총동원령을 내린 뒤 벌어진 ‘조국 지키기’ 관제 데모였다. ‘조국 반대 = 반문(反文) = 매국’이라는 논리로 무장한 군중은 문 정부의 권위를 훼손시킬지 모르는 검찰 수사에 불타는 적의를 갖고 시위에 임했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이들의 손에는 한결같이 ‘조국 수호’ ‘검찰 개혁’ ‘윤석열 아웃’ 등 구호가 적힌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시위는 원래 권력에 대한 힘 없는 대중의 항의 수단이다. 하지만 이번 군중집회는 그 목적이 살아 있는 권력의 비호·옹호에 있었다는 점에서 자유당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4·19혁명, 신군부 정권 출현에 맞섰던 5·18항쟁,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을 저지한 1987년 민주화운동 때의 그것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문 대통령의 선동은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조국 수사와 관련한 여론조사로 뒷받침되는 국민의 일반 의식에 반한다. 똘똘 뭉친 극렬 지지층의 힘으로 다수의 생각을 제압하려 한다는 점에서 반(反) 공화적이고, 포퓰리즘적이며, 전체주의적이기까지 하다. 군중심리는 쉽게 권력에 선동당하고 거짓에 함몰되며 분노에 젖는다. 군중심리는 쉽게 카인의 본성을 닮고, 파괴와 폭력성에 물들며, 대량학살이라는 정신적 기원을 향한다. 우리 편 아닌 건 몽땅 싹쓸이하겠다는 의식이다. 전체주의의 교본이었던 마오이즘이 그랬고 나치즘이 그랬다.

열성 지지 대중의 동원과 세 과시에 힘입은 문 대통령은 30일에는 청와대에서 조 장관과 회의를 하면서 자리에 있지도 않은 윤 총장을 거론하며 “지시한다. 개혁안을 만들어오라”고 경고했다. 조국 수사를 덮으라는 주문과 다름없다. 윤 총장이 지휘하는 검찰의 ‘죄’는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댄 것이다. 윤 총장은 임명장 수여 자리에서 문 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와 정부 잘못도 엄정하게 수사해달라’는 주문을 받았지만, 지금 그걸 실행한 이유로 언제 해임당할지 모르는 처지가 됐다. 특정 정파의 논리와 군중심리에 의존한 권력의 선전선동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존 로크 이후 근대 법정신은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게 인민의 권리라고 가르친다. 권력도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 다만 끝내 잘못을 반성하지 않으면 그땐 국민이 바로잡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