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경제회생 골든타임의 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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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종 경제산업부 부장

최근 한 유통그룹이 제시한 마케팅에 눈길이 쏠렸다. 롯데백화점이 정기세일 기간에 식당가에서 첫 세일을 했다. 경제·산업 현장을 꽤 오래 출입했지만, 백화점 식당가 세일은 “그런 일이 있었나”를 자문하게 하는 ‘뉴스’다. 백화점 식당은 유통 마케팅의 자존심 격인데 이를 굽히고 세일을 한 것이다. 최악의 불황에 처한 유통 경기의 실상을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법원행정처가 집계한 올해 법인과 개인 파산 접수 실적을 보면 심각하다. 1∼8월에 전국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626건으로 전년 동기(533건) 대비 93건, 17.4% 증가했다. 역대 최다 기록이다. 추세대로라면 연내 1000건이 훌쩍 넘을 전망이다. 개인 파산도 1∼4월에 1만5122명으로 8.7% 늘면서 10년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얼핏 가볍거나, 정반대로 심각한 두 사례는 위기국면이 심화하고 있는 한국경제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부 지표는 오래전부터 환부(患部)처럼 곪고 있었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4%란 초유의 역성장 충격을 안겼다. 2분기에 1.1% 성장했지만, 정부 지출, 재정에 기댄 것이었다. 경제 버팀목인 투자, 소비, 지출 3대 성장엔진은 망가졌다. 설비투자는 2분기에 7.8% 감소했고 민간소비도 1분기에 0.1% 증가에 그친 데서 알 수 있듯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수출은 10개월 연속 뒷걸음질 쳤다. 일자리 역시 ‘경제 허리 격인 30∼40대 고용은 줄고 세금으로 땜질한 50∼60대만 소폭 늘었다. 당·정·청은 그런데도 고용이 양적·질적으로 대폭 개선됐다고 자찬한다. 대기업의 33.6%가 올해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밝힌 실상과 대조하면 코미디다. 재계의 한 고용 전문가는 “휴지줍기 등 공공근로 위주의 60세 이상 노인 일자리 등 세금으로 만든 일자리만 늘어나는 등 고용의 질은 악화했다”고 진단했다.

모두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소득주도성장, 급격하고 경직적인 노동정책, 글로벌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세제 환경,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에 대한 과도한 간섭에 따른 투자 위축의 병폐가 경제 활력을 옥죄며 한국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보다 못해 터져 나온 학계 원로들의 고언은 참담하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1일 “소득주도성장은 잠꼬대 같은 이야기다.” “2년 반 가까이 정책 실패를 한 중심에는 대통령의 무지가 있다.” “평화경제라는 공상과학소설 같은 소리 좀 그만하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일갈했다. L자형 침체 경고도 요란하다.

다음 달이면 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돈다. 애석하게도 현실을 진단하면, 얼핏 아름다워 보이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는’ 소주성 정책의 기조 전환, 투자 활력과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산업경쟁력 강화, 규제의 혁파 없이 현 정부 들어 급속도로 진행된 저성장 고착화 구도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경제는 정치와 극단적 대립에 치여 뒷전으로 밀렸고 그 회생의 골든타임은 망실(亡失)했다. 가위 ‘경제적 자살’ 수준이다. 환상에서 깨는 순간, 우리를 기다리는 건 돌이킬 수 없는 파탄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