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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문화]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게재 일자 : 2019년 10월 08일(火)
Q : 자연과 문화의 대립 바깥에는 어떤 세계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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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부록 작가

A : 자연주의와 애니미즘 넘어 ‘존재할 수 있는 것’을 탐구

⑥ 필리프 데스콜라(Philippe Descola, 1949∼)

‘인간은 동식물과 다르다’는
서구 자연주의 사고 비판하며
인간 우월적 존재론에 반기

아마존 아추아인들 삶 통해
자연을 대상화하지 않고
자신들의 세계와 동일시하는
인간 - 非인간의‘평등’밝혀

서구 인식론적 오류 대안을
원주민의 모델에서 찾지 않아
다원주의적 삶 탐구로 풀어


‘자연’이라고 마음속으로 말해 보자.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는 여기 제주의 풍광이 떠오른다. 지난 몇 년 수없이 아름답다는 말을 내뱉게 했던 숲, 오름, 바다, 하늘. 하지만 나는 도로 확장을 이유로 잘려나간 비자림로의 삼나무들과 제2공항이 생기면 콘크리트로 뒤덮일 성산의 들판도 생각한다. 이렇게 나는 제주의 자연에 찬탄하면서 그 파괴를 한탄하지만, 과연 내가 누리는 삶의 혜택들 중 자연을 길들이거나 해하지 않고 얻어 낸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

자연의 이용과 보호라는 상반된 입장은 사실 동일한 지평 위에서 적대적으로 공존한다. 두 입장 모두 자연을 대상화한다. 양쪽 모두에서 자연은 인간 중심주의에 복종한다. 인간의 기쁨을 위해 이용되고 희생되는 자연은 인간의 더 큰 기쁨을 위해, 또는 인간의 고통(가령 잘린 나무를 볼 때의 마음 아픔)을 없애기 위해 보호된다. 이처럼 자기중심적으로 자연을 대상화하면서 인간은 스스로를 자연 밖에 위치시킨다. 우리는 자연의 전제에 맞선 지난한 투쟁을 통해 쟁취한 ‘문화(또는 문명)’의 편에 서서 자연을 바라본다.

◇ 아마존의 인간주의

프랑스 인류학자 필리프 데스콜라는 이러한 관점이 근대 서구인 또는 서구화된 인류의 전유물임을 지적한다. 자연과 분리돼 있고 그것에 대립하는 문화의 영역 안에 인간이 자리한다는 관념은 르네상스 이후 모습을 갖춰 서구의 정치·경제 모델과 더불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됐다. 데스콜라는 이 같은 사고의 지평을 ‘자연주의’라고 부르는데, 그 핵심 명제는 인간이 여타의 종들과는 다른 부류, 다른 세계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데스콜라가 연구한 아마존의 아추아인에게는 서구화된 인류가 자연이라고 대상화하는 숲과 강이 바로 자신들의 세계이다. 그들은 숲과 강의 온갖 존재들과 육체적·영적으로 교류하면서 그곳을 자신들의 세계로 만든다. 동식물 종들이 영혼을 가지고 자율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여기면서, 아추아인은 자신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상호작용의 양식을 비인간과의 관계로 확장한다. 여자들은 밭에서 기르는 작물을 자식처럼 대하고 남자들은 숲에서 사냥하는 동물을 처남처럼 취급한다. 아추아인의 사회적 삶 대부분을 관장하는 친족의 원리는 아추아인과 비인간 존재들 사이의 교류 또한 조직한다.

그런데 이것은 일종의 전도된 인간 중심주의가 아닐까? 인간만이 독점하는 지적·영적·도덕적 속성에 대한 믿음에 입각해 다른 생명체보다 우월한 존재로 스스로를 표상하는 서구적 인간 중심주의를 반대로 뒤집어, 아마존 민족들은 인간적 속성의 공유라는 가설에 따라 비인간 종들을 자신과 동등한 사회적 파트너로 대우한다.

인간-비인간의 근본적 연속성이라는 존재론적 테제를 지지하는 흥미로운 과정 중 하나는 꿈속에서 이뤄지는 만남이다. 아추아인은 꿈꾸는 자의 영혼이 몸의 굴레에서 벗어나 역시 꿈을 꾸고 있는 다른 동식물의 영혼과 교류한다고 여긴다. 가령 사냥꾼은 내일 사냥할 동물의 영혼과 꿈에서 만나는데, 특기할 점은 꿈속에서 모든 존재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에서 서로 다른 껍질을 쓰고 있는 존재들이 꿈에서는 하나같이 인간의 모습을 띠고 서로를 만난다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동식물들의 삶에 대한 인간주의적 상상과 연결된다. 각각의 종들은 나름의 언어, 친족 규범, 의례적 실천, 추장과 샤먼으로 대표되는 분업 체계를 가진 ‘사회’를 이뤄 살아간다. 아마존적 세계에는 자연과 문화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근본적 동일성을 갖는 인간과 비인간의 ‘사회들’이 세계를 평등하게 구획하는데, 데스콜라는 세계를 만들고 살아가는 아마존 원주민들의 방식을 ‘애니미즘’이라고 부른다.

◇ 네 가지 존재론

애니미즘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있다. 예컨대 가축 사육이 그중 하나다.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을 취해서만 살아갈 수 있기에 살생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생명을 길들인다는 것, 가령 돼지를 우리에 가두고 주인 행세를 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마존 원주민이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길들일 동물이나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설정된 존재론적 관계로 인해 아마존 원주민은 사냥꾼에 머문다.

데스콜라는 아마존 원주민의 존재론과 근대 서구의 존재론을 대비시킨다. 서구의 자연주의는 인간과 비인간이 육체성의 차원에서는 유사한 반면, 내면성의 차원에서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전제한다. 비록 다른 종들과 같은 질료로 구성되지만, 오직 인간에게만 영혼이 있다. 반대로 아마존의 애니미즘은 육체성의 차원에서는 차이를, 내면성의 차원에서는 유사성을 가정한다. 인간과 비인간은 서로 다른 껍질을 쓰고 있을 뿐 동일한 속성의 내면을 가지고 자율적 삶을 영위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동등하다.

자연주의와 애니미즘 외에 논리적으로 두 가지 조합이 더 가능하다. 먼저 육체성과 내면성 양쪽 모두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유사하다고 간주할 수 있다. 데스콜라는 호주 원주민의 ‘토테미즘’에서 이 모델의 실현을 본다. 인간-비인간의 존재론적 연속성을 아마존의 경우보다 더 급진적인 방식으로 설정하는 토테미즘의 세계에서도 동식물을 길들이는 일은 물론 허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 동식물 종(예컨대 캥거루)은 세계를 창조한 신화적 영웅의 매개를 통해 특정 인간 집단(‘캥거루 혈족’)과 존재론적으로 일체화된다. 마지막 모델은 육체성과 내면성의 양 차원 모두에서 차이를 가정하는 ‘유비주의’다. 크고 작은 농경·유목 문명들에서 현실화되는 유비주의적 세계의 중심에는 신(조상)과 인간 사이의 위계, 보호, 복종의 관계가 있다. 이런 관계와의 유비를 통해 왕과 백성, 주인과 노예, 인간과 가축 등의 다른 관계들, 나아가 동물의 왕국의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 역시 파악된다.

◇ 가지 않은 길

데스콜라가 전하는 아마존의 삶과 사유는 매력적이다. 환경에 대한 파괴적 개입과 동식물에 대한 착취로 귀결되는 서구적 인간 중심주의를 버리고, 아마존 식의 공유와 공존의 사고를 되찾자고 말하고 싶은 유혹마저 든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포함한 서구화된 인류는 숲과 밭에서 이뤄지는 육체적·영적 교류가 아니라 대개 자본주의적 임노동과 슈퍼마켓에서의 소비를 통해 일용할 양식을 얻는다. 현대적 삶의 대부분은 친족 관계의 규제 밖에 놓여 있으며, 우리는 숲과 강 대신 빌딩과 상하수도에 둘러싸여 생활한다. 이러한 존재가 과연 아마존적 의식을 감당할 수 있을까?

데스콜라는 서구화된 인류의 인식론적 오류와 도덕적 파탄을 교정해 줄 대안 모델을 원주민들에게서 찾으려는 시도를 경계한다. 데스콜라가 생각하는 인류학의 사명은 인간이 세계를 만들고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인식을 생산하는 일이다. 데스콜라의 네 가지 존재론이 예시하듯 인류학은 인간이 밟아 온 여러 갈래의 길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 삶의 양식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지금 인류가 걷고 있는 것과 다른 길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서구화된 인류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까? 자연주의적 세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데스콜라 자신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충실한 과학자로서 그가 현재 집중하는 작업은 하나의 존재론에서 다른 존재론으로 변형을 가능케 하는 형식적 조건을 밝히고, 상이한 존재론들이 함께 묶여 혼종적 모델을 만들어 내는 사례를 분석하는 데 있다.

데스콜라는 이미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것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주창하는 ‘다원주의적 인류학’을 심화하고 있지만, 세계를 구성하는 인간적 방식의 복수성을 해명하고자 하는 이 기획을 ‘존재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탐구로 확장하는 것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인간이 아직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이 사고 실험은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존재론적 동등성을 설정하는 모든 세계에서는, 한 인간과 다른 인간 사이의 존재론적 위계가 사고되는 것 역시 거부되었다는 사실을.

박세진 제주대 사회학과 강사
공동기획 : 이감문해력연구소



■ 필리프 데스콜라는

분야 - 인류학-남아메리카 민족학

사상 - 구조주의, 인지 인류학

주요 활동·사건 - 자연/문화 이원론 비판, 네 가지 존재론 이론화

약력 -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생클루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파리 제10대학교와 고등실습연구원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구조주의 인류학을 선도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지도 아래 에콰도르 아마존 우림의 아추아인이 생태 환경과 동식물 종들을 사회화하는 방식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인간-비인간 관계의 비교 인류학’에 대한 세미나, ‘실천의 이유들: 불변항, 보편항, 다양성’을 주제로 한 연구 모임을 이끌었다.

2000년 콜레주드프랑스 자연 인류학 교수로 선출됐고, 이로써 마르셀 모스에서 시작되는 프랑스 사회인류학의 계보를 잇는 적자로 자리매김했다. 2012년 프랑스 학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간주되는 국립과학연구소 금메달을 수상했다.

저서 - 주요 저서로 ‘길들여진 자연’(1986), ‘황혼의 창(槍)’(1993),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2005)가 있다. ‘길들여진 자연’에서는 아추아인의 생태계를 분석해 이것이 인간과 비인간을 포괄하는 사회성의 관계망임을 밝혀냈다.

‘황혼의 창’은 삶과 죽음, 전쟁과 정치, 신화와 주술, 영토와 정체성 등 다양한 층위에 걸친 아추아인의 삶을 증언한다. 주저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에서는 민족지적·역사적 자료를 광범위하게 비교 분석해 인간과 비인간 종들이 관계를 맺고 상호 작용하는 다양한 방식을 탐구했다.

이로써 자연주의, 애니미즘, 토테미즘, 유비주의 등 이른바 ‘네 가지 존재론’을 도출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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