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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9년 10월 08일(火)
고조선 ‘8방의 후국들’ 통해 고대 연방제국 발전 기반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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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 문명의 천군(天君)이 의례·의식에서 사용하던 의기(儀器)인 ‘8주령’. 고조선과 8방 후국들의 관계를 상징한다.

■ 신용하의 인류 5대 ‘古朝鮮문명’ - ⑧ 고조선의 발전과 영역확대

지역 부족장들, 자신들 지위 유지한 채 선진적 정치조직 편입되는 ‘후국제’ 환영
봉건제와 유사하나 봉토 하사 없이 통치권 승인… 2000여 년간 지속되다 위만 정변으로 해체

- 한민족 고고학


약 5000년 전 고조선이 한·맥·예 3개 부족의 연맹 결합으로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로 건국될 때 ‘한’족과 ‘맥’족은 혼인 동맹으로 결합하고, ‘예’족 군장에게는 자치권을 줘 처음부터 ‘후국’(侯國) 제도를 채택했다. 후국은 고조선 제왕이 제후(諸侯) 또는 후왕(侯王)을 통해 복속 국가 또는 지역을 간접 통치하는 것이다. 고조선의 단군은 처음부터 왕인 동시에 황제인 ‘제왕’이었고, 예족은 고조선 제왕의 간접통치를 받는 동시에 예족 후왕(濊君)의 직접 지배 아래 있었다. 예족의 후국 지위는 고조선이 BC 108년에 멸망할 때까지 지속됐다.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 고조선은 한반도에서 건국된 후 만주의 요동·요서·연해주 일대로 진출해 나가면서 후국 제도를 활용함에 따라 고대 ‘연방 국가’로 발전하게 됐다. 이 지역 부족장 다수가 간접통치 방식인 후국 제도를 환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조선 고대 연방 제국은 현대 연방 제국처럼 치밀하게 잘 조직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교통·통신·사회정치 조직기술 수준에 따라 약간 느슨하게 묶인 ‘연맹적’ 성격의 고대 연방 제국이었다. 고조선의 후국 후왕의 임명 방식에는 ①기존 부족장의 후왕 임명 ②고조선 제왕의 왕족 파견 ③기존 부족장에게 제왕의 왕족 여자를 출가시켜 ‘고추가’(사위 후왕)로 삼는 방법 ④점령지에서 공훈이 큰 지역의 ‘대인’ 임명 등 여러 방식이 있었다.

고조선의 후국 제도는 여러 요인으로 비교적 단기간에 영역을 확대했다. 먼저 각 지역 부족들이 이미 소통 가능한 동일 계통의 ‘고(古) 한반도 초기신석기인 유형’(‘밝’족)의 사람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고조선 건국에 처음부터 참여한 맥족과 예족의 거주지역이 만주 요동·요서, 연해주 지역이었으므로, 이 지역 잔류 주민과 부족을 고조선 후국으로 통합하기가 용이했다. 고조선이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로서 선진적 정치조직이었기 때문에 국가형성 단계 이전인 부족들을 후국으로 편입하기도 보다 용이했다. 이와 함께 고조선의 후국 제도는 각 부족 지역의 기존 통치 질서를 인정한 ‘간접 통치’였으므로 고조선 영역 확대에 대한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  <그림 1> <그림 2>는 고조선 영역의 제1단계와 제2단계. <그림 3>은 제3단계 최전성기. <그림 4>는 제4단계 위만조선 시기(BC 194∼BC 108).
후국 제도에서 고조선 중앙정부와 후국의 관계는 간접 통치였지만, 본질적으로 ‘지배·종속’ ‘중앙과 주변’의 관계였다. 다만 그 통치 유형이 ‘직접 지배’가 아니라 ‘간접 지배’였을 뿐이었다. 고조선 후국들의 중앙 본국에 대한 의무는 ①전쟁 시 군사 동원 ②군사 장비 공납 ③군량 제공 ④생산물 교환과 교류 ⑤특산물 공납 ⑥전국대회 참가 ⑦신앙·종교의식 참가 같은 것이었다. 반면 후국들이 본국으로부터 받는 혜택은 ①군사적 보호 ②후국 제후의 지배질서와 권위 보장 ③특산물의 교환 ④재난 시 긴급원조 ⑤선진적 경제와 기술 전수 ⑥선진적 문화 전수와 지원 ⑦각종 정당성과 명분 제공 등이었다.

고조선 중앙 본국과 후국의 관계를 그림으로 그리면, 입체적으로는 고조선 제왕(단군)이 정상에 있고, 그 아래 각급 후국들이 피라미드형으로 종속돼 있는 형태였다. 고조선 본국을 중심에 놓고 후국들을 방위별로 재분류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고조선의 중앙본국: 조선(직령지·밝달조선·發朝鮮·고조선) ②남부 후국: 진(辰·震)국 ③ 동부 후국: 옥저(沃沮)·읍루(읍婁) ④북부 후국: 부여(夫餘) ⑤요동지역 후국: 양맥(良貊)·구려(句麗)·비류(沸流)·개마(蓋馬)·구다(句茶)·행인(荇人)·임둔(臨屯) ⑥요서지역 후국: 고죽(孤竹)·불영지(弗令支)·불도하(不屠何)·청구(靑丘)·진반(眞潘)·동호(東胡)·원오환(原烏桓)·선비(鮮卑)·고마해(庫莫奚)·원정령(原丁零, 원 투르크족)·오손(烏孫) ⑦동부 내몽골지역 후국: 산융(山戎, 원 훈족)·원유연(原柔然, 원 아발족)·실위(室韋, 원 몽골족). 이를 평면으로 그리면, 고조선 본국이 정중앙에 있고, 다수의 후국이 그 지배와 영향을 받으면서 주변에 연결돼 있다.

고조선의 후국 진국 지역의 ‘천군’(天君)이 사용했던 의기에 고조선과 후국 간의 관계를 평면으로 도안한 것이 있다. 천군의 8주령에서 중앙의 ‘해’(태양)는 고조선 본국과 ‘단군’을 상징하는 것이고, 중앙의 ‘햇빛’을 받으며 주변에 연결된 8방의 작은 ‘해’들은 고조선의 지배를 받는 8방 후국들을 상징한 것으로 해석된다(위 사진 참조). 한국에는 고조선이 1개 중앙 본국과 8방의 주변 소국 9개국 체제로 돼 있었다는 전통적 의식이 존재해 왔다. 또 고(古) 중국에서는 동이(東夷)가 9개 종족으로 구성돼 있어서 ‘구이’(九夷)라는 별명이 있는 것으로 의식해 왔다. 고조선의 4대 후국으로서는 남으로 진국, 북으로 부여, 동으로 옥저, 서로 고죽을 들 수 있다. 이 밖에도 수십 개의 후국이 있었다. ‘고려사’에는 단군조선의 후국이 약 70개국이었다고 시사했다. 이는 앞으로의 연구 과제이다.

고조선이 고(古) 한반도에서 건국돼 고대 연방제국의 최전성기에 이를 때까지의 과정을 3단계로 나눠 볼 때, 제1·2 단계의 영역을 <그림 1>과 <그림 2>와 같이 대강 그려 볼 수 있다. 고조선 국가 조직의 연맹적 연방제국의 강점은 중앙 본국이 비교적 안정적이게 된다는 것이다. 중앙 본국이 강력해 후국들을 통제할 수 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중앙 본국이 쇠약해지고 지방 후국이 강성할 때에는 후국의 분리독립이 용이해진다는 것이 약점이다.

고조선의 후국 제도는 ‘봉건제도’와 유사하지만, 다른 측면이 있었다. 봉건제도는 군사적 점령지 또는 복속지의 토지를 봉해 주는 영주의 ‘봉토’(封土) 하사가 핵심이다. 하지만 후국 제도에서는 봉토는 거의 없고, 기존의 지역 ‘지배·통치권’을 승인하는 ‘정치·군사적’ 성격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고조선 연방제국의 최고통치자 ‘단군’은 직령지의 ‘임금’인 동시에 전체 고조선 연방제국의 ‘황제’였다.

필자는 한자 ‘皇’ 자체가 상나라 사람들이 한자를 만들 때 ‘박달(白)+임금(王)’이 바로 황(皇)제임을 나타낸 조립문자라고 앞서 지적한 바 있다.

고조선의 통치 영역에 반드시 후국들을 포함해야 한다고 본 선학은 신채호 선생이었다. 그는 “단군조(檀君朝)의 정치통일구역이 그와 같이 넓어, 북으로 흑룡강을 지나며, 남으로 현해(玄海)를 건너며, 서로 지나(支那)의 연해안과 동몽고(東蒙古)를 포내(抱內)했다”(‘조선상고문화사’)고 썼다. 실제로 고조선 연방제국의 최성기 영역은 북으로는 흑룡강 계선, 남으로는 제주도와 대마도, 서로는 요서의 난하를 건너서 북경 부근의 영정하(永定河), 동으로는 연해주 오호츠크해안까지에 이르는 광대한 것이었다. (<그림 2> 참조) 일찍이 신채호 선생은 초(楚)나라 시인 굴원(屈原·BC 343∼BC 277)이 ‘동황태일’(東皇太一·동쪽의 황제가 가장 첫째다)이라는 노래를 ‘초사’(楚辭)의 첫머리에 수록해 단군왕검을 동방의 최초·최고의 ‘황제’로 기렸음을 시사한 바 있다(‘조선상고사’).

2000여 년간 장기 지속되던 후국 제도에 의한 고조선 연방국가는 BC 194년 대사건으로 해체됐다. 위만(衛滿)이라는 장군이 군사정변을 일으켜 고조선(후조선) 준왕(準王)을 내쫓고 고조선 왕이 된 것이다. 이른바 ‘위만조선’의 시작이다. BC 3세기 초에 연(燕)의 장군 진개(秦開)가 고조선의 서변을 침공해 1000여 리를 빼앗은 일이 있었는데, 위만은 그때 남은 조선족의 후예였다. BC 209년 위만이 조선인 등 피난민 1000여 명을 이끌고 후조선 준왕에게 투항했다. 준왕은 위만을 신임해 고조선 서변 국경 지역에 정착시켰다. 위만이 탁월한 장수로서 서변 국경을 잘 지키자, 준왕은 위만을 크게 신임해 이 지역 후왕에 임명했다. 지금의 창려(昌黎), 옛 험독(險瀆)이 위만의 주둔 도읍지로 추정된다.

BC 195년 연 왕 노관(盧관)이 한(漢)에 저항해 흉노로 도망한 사건이 일어나서 한의 중앙군이 노관을 잡으러 출병하자 위만은 이것을 기회로 잡아 “한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10로로 나눠 쳐들어오고 있으니 내가 가서 왕궁을 지키겠다”고 후조선 준왕에게 거짓 보고해 승낙을 받고, 준왕이 있는 요동 개평 부근의 고조선연방 왕검성(王儉城)에 입성,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해 버렸다. 준왕은 황급히 뱃길로 한반도 마한 지역으로 피란했다. 위만은 새 왕조의 이름을 ‘조선’으로 이어 사용했으나, 정당성이 전혀 없는 위만의 정변에 고조선 연방 후국 중 어느 한 곳도 이를 수용·복종하지 않았다. 불과 1년 사이에 고조선 연방국가는 해체돼 모두 독립하게 되고, 위만조선은 준왕의 직령지만 승계한 ‘작은 고조선’이 됐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직령지 내에서도 예족이 불복해 예족 후왕 남려(南閭)가 28만 구(口)의 예족을 이끌고 한에 투항해 버렸다. 한 투항에 반대한 예족은 동으로 이동해 ‘동예(東濊)’가 됐다. 한은 남려를 맞아 창해군(滄海郡)을 설치해 줬다가 2년 후에 폐지해 버렸다.

위만조선은 BC 194년∼BC 108년 87년간 존속했지만, 그 이전 고조선 연방국가의 ‘대 고조선’이 아니라, 직령지만 통치한 ‘소 고조선’이었다. 즉 ‘고조선 연방제국’(대 고조선)은 BC 194년에 위만의 불법 군사정변으로 해체됐고, 그로부터 87년 후 BC 108년에 위만조선(소 고조선)도 해체된 것이었다. 한 무제의 위만조선 정복 출병에 맞춰서 옛 중국의 ‘조선’에 관한 관심과 정보수집이 실행됐다. ‘한서’(漢書), ‘사기’(史記) 등의 ‘조선’ 기사는 모두 ‘위만조선’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 고문헌에서 ‘조선’이 언급되면 그것이 ‘고조선 연방’인지 ‘위만조선’인지를 먼저 판별해야 한다. ‘관자’(管子), ‘산해경’(山海經), ‘전국책’(戰國策) 등의 ‘조선’은 ‘고조선 연방’ 또는 그 일부를 지적하고 있지만, ‘사기’ ‘한서’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등과 그 이후의 고문헌은 ‘위만조선’을 고조선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국내 학자 일부가 이 중국 고문헌 기록으로만 고조선 역사를 보는 것은 전체 고조선이 아니라 ‘위만조선’을 고조선으로 보는 것일 뿐이다. (문화일보 9월 11일자 17면 7 회 참조) 서울대 명예교수


■ 용어설명

위만조선 : 위만조선은 BC 194년~BC 108년의 87년간 존속했지만, 그 이전 고조선연방 국가의 ‘대 고조선’이 아니라, 직령지만 통치한 ‘소 고조선’이었다. 즉 ‘고조선 연방제국’(대 고조선)은 BC 194년에 위만의 불법 조사정변으로 해체됐고, 그로부터 87년 후 BC 108년에 위만조선(소 고조선)도 해체됐다.

후국제도 : 고조선의 ‘후국’ 제도는 봉건제도와 유사하지만, 약간 다른 측면이 있었다. 봉건제도는 제왕이 영주에게 ‘봉토’(封土)를 하사하는 것이 핵심이다. 후국 제도에서는 봉토는 거의 없고, 기존 지역 ‘지배·통치권’을 승인, 하사하는 ‘정치·군사적’ 성격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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