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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10문10답 게재 일자 : 2019년 10월 08일(火)
‘프로파일러’ 연쇄살인 등 미궁사건 현장서 찾은 데이터로 범인 심리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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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사회의 범죄 수법이 교묘해지며 미스터리로 남게 되는 경우가 생겨나면서 범죄 현장에서 포착된 각종 단서를 바탕으로 용의자 범위를 압축하고 실제 용의자와의 대면 조사를 통해 범행 내용 등 자백을 유도하는 프로파일러들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경찰 ‘프로파일러’의 역할

용의자 감정 파고들어 정서적 친밀감 조성, 자백 받아내기도

FBI, 1972년 행동과학부 창설
韓은 지존파 ‘묻지마 살인’ 이후
2000년에 프로파일링팀 신설

현재 범죄분석관 등 37명 활동
사건 터지면 지역 상관없이 차출

화성연쇄살인 이춘재의 자백
11차례 대면조사 ‘라포르’형성
진주 방화살인 사건땐 실패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DNA 분석 기술을 통해 첫 사건이 발생한 지 33년 만에 특정됐지만, 공소시효가 만료돼 강제수사가 어렵고 법원의 확정 판결도 불가능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은 용의자 이춘재(56)의 자백과 이에 대한 확인·대조 과정에 달린 상황이다. 따라서 이춘재의 자백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경찰 ‘프로파일러’의 역할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화 ‘양들의 침묵’, 드라마 ‘보이스’ 등으로도 잘 알려진 프로파일러들이 이춘재와의 대면조사에서 정서적 친밀감과 신뢰를 뜻하는 ‘라포르’(Rapport)를 형성해 얼마나 솔직하고 명확한 자백을 받아내느냐에 따라 사건이 완전히 해결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새로운 미스터리를 양산해낼 수도 있다. 한국의 프로파일러들은 과연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이처럼 막대한 숙제를 안게 된 것인지 짚어봤다.

1. ‘프로파일러’의 어원과 역할

경찰의 사건 수사에서 특정 범죄자 혹은 용의자의 행동, 범행 장소, 범행 도구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작업을 ‘프로필’(profile)이라고 부르며, 이같이 수집된 데이터의 의미를 분석해 범인이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유추해 내는 사람들을 프로파일러(profiler)라고 한다. 프로파일러는 범죄심리분석관 또는 범죄심리행동분석요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프로파일러는 일반적 수사 기법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연쇄살인 사건 수사 등에 투입돼 용의자의 성격과 행동유형 등을 분석하고, 도주 경로나 은신처 등을 추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작업을 통해 용의자의 범위를 좁히거나 도주 경로 또는 은신처 등을 예상해 검거에 도움을 주는 게 이들의 주된 임무다. 또 용의자를 검거한 후에는 심리적 전략을 구사해 자백을 이끌어 내는 역할도 한다.

2. 美 FBI에서 본격 시작

프로파일러의 개념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FBI는 1972년 행동과학부(Behavioral Science Unit)를 창설해 수사 기법의 하나로 프로파일링을 본격 도입했다. 당시 범죄 동기를 알 수 없는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났지만 미궁에 빠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으로 프로파일링이 시작된 것이다. 다만 초기에는 살인범의 심리 구조를 분석해 범인을 추정한다는 프로파일링의 개념이 전통적인 범죄 수사 사고에 갇혀 있던 일선 수사관들에게서 불신을 받아 오늘날의 형태로 자리 잡기까지는 진통도 겪었다. 이후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같은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프로파일링이 범인의 심리를 연구하는 전문 분야로 자리 잡게 됐다. 일본은 1995년부터 프로파일링 기법을 도입해 범죄 수법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2000년 경찰에 범죄행동분석팀이 신설됐고, 2006년엔 심리학과 사회학 전공자 특채도 이뤄졌다.

3. 英 프로파일링의 시초

1888년 가을 영국 런던 이스트엔드 지역에 있던 윤락가 화이트채플에서 약 3개월 동안 매춘부 5명이 연달아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피해자 내장을 도려내 시신 주위에 전시하는 등 잔혹한 수법으로 연쇄살인을 저질렀다. 첫 번째 희생자가 나온 직후 핏빛 글씨로 쓴 편지가 한 신문사에 배달됐는데 ‘잭 더 리퍼’라는 필명을 사용한 작성자는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런던 웨스트민스터 경찰 소속으로 있던 외과의사 토머스 본드 박사가 시신 부검 및 사건 분석 등을 통해 “일정한 직업이 없지만 옷을 깔끔하게 입고 다니는 중년 남성으로, 아마 가족들에게서 살인범이 아닌지 의심을 받고 있을 것”이라고 내놓은 분석이 최초의 프로파일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범인을 붙잡는 데 실패했고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았다. 잭 더 리퍼의 범행으로 보이는 5명 외 추가 피해자 및 그를 모방한 범죄도 많아 피해자 수 또한 정확히 집계돼 있지 않다.

4. 한국 1호 프로파일러와 그 역사

1994년 9월 ‘부유층 증오’를 행동으로 보이겠다며 5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지존파’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는 기존의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범죄 형태’였다. 치정·원한·금품 탈취 등 뚜렷한 동기의 범죄를 벗어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계획된 ‘묻지마 살인’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지존파 사건으로 한국 사회에 싹을 내린 새로운 범죄 패러다임은 10년 후 연쇄살인마 유영철이 나타나면서 그 실체의 잔혹함이 보다 확연하게 드러났다. 새로운 범죄에는 새로운 수사 방식이 필요한 법. 경찰은 유영철 사건 발생 3년 전인 지난 2000년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에 범죄 심리를 분석하는 범죄행동분석팀을 신설했다. 이때 처음으로 선발된 사람이 권일용 전 경정(현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겸임교수)이다. 그는 ‘프로파일러’라는 단어조차 생경했던 시절부터 국내 최초 프로파일러로 17년간 활약하며 범죄자들의 마음을 읽어오다 2년 전 은퇴했다

5. 프로파일러 교육과정

프로파일러가 되기 위한 방법으로는 일반인이 경찰 경력경쟁채용(경채)에 합격하는 방법, 경찰이 일련의 교육과정을 거치는 방법이 있다. 우선 일반인이 프로파일러가 되기 위해서는 경찰에서 주관하는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심리학과 사회학을 전공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석사 이상의 학위를 소지한 사람들이 우선 대상이다. 경채로 합격하면 경찰학교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은 뒤 지방청 과학수사계 등에 배치된다. 보통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박사 학위가 요구되며, 경찰청은 관련 분야 사회학, 임상심리학 등 석사 이상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이 과학수사 교육과정을 거쳐 프로파일러가 되는 길도 있다. 6개월간의 경찰학교 교육 뒤 일선 경찰서로 배치되는데 이때 수사인력의 전문화와 역량 강화를 위해 도입한 ‘수사경과제’를 신청해야 한다.

6. 국내 프로파일러 규모·활동 분야

경찰청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경찰관 프로파일러는 37명이다. 이 중 35명이 범죄분석관으로 채용된 인원이며, 2명은 일반 공채자 출신이 치안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근무 지원에 나선 상태다.

경찰은 2006년부터 심리학과 사회학 전공자를 대상으로 경장 경력경쟁채용으로 프로파일러를 선발해 왔지만, 현재는 기존 요원을 전문화하기 위해 신규 프로파일러를 채용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경찰청과 각 지방청 등에 나뉘어 근무하고 있다. 큰 사건이 터질 경우 지역에 상관없이 전국에서 차출되기도 한다.

이춘재의 경우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 3명 외에도 전국에서 차출된 프로파일러 6명이 투입돼 조사를 벌였다.

7. ‘롬브로소 이론’

범죄심리학-프로파일링의 근간이 된 롬브로소 이론은 ‘범죄자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병적 심리가 있으며, 일반인과 다르다’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한다. 롬브로소는 19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범죄심리학의 창시자다. 그전까지 고전적인 범죄학에선 범죄는 카인의 후예인 인간의 근원적 사악함에 기인하며, 그런 상황에 처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일급 살인도 저지를 수 있다고 봤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과 같은 일급 범죄는 우발적 살인을 제외하고는 금품 갈취나 원한 혹은 치정에 의한 것 등으로 동기에 따라 분류됐다. 그러나 롬브로소는 범죄자들은 애초에 천성을 범죄자로 타고난다고 생각했다. 다윈주의의 열풍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롬브로소는 인간은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해 오면서 숭고한 도덕관을 발전시켰지만, 진화가 덜 된 열등한 개체들이 아직도 남아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인종 차별, 성 차별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히 “근본이 다르다”는 주장은 유전학의 발달과 함께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그의 이론은 반인권적이라는 반발에 부딪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8. ‘라포르’ 형성은 어떻게

“선생님, 식사는 하셨어요?” 프로파일러가 피의자들과 라포르를 형성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하는 첫말이다. 그렇다면 라포르 형성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 화성 사건뿐 아니라 2009년 10명의 부녀자를 살해한 강호순 사건에서 범인의 자백을 받아낸 공은경(40) 경위의 사례를 통해 라포르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이 같은 ‘일상적인 언어’에서부터 시작된다. 조사실 내부에 감도는 어색함을 없애는 것이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공 경위와 동료 프로파일러들은 “식사는 하셨어요” “괜찮아요. 어디 불편하신 곳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란 말로 강호순과 라포르를 형성해 나갔다. 이들은 또 강호순을 ‘선생님’ 또는 ‘씨’로 존중해 불러줬고, 그와 신뢰관계를 쌓으며 자백을 유도해 나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춘재의 자백 역시 이런 과정 끝에 나온 결과물로 유추된다. 지난달 18일부터 모두 11차례 대면조사에 나서 이뤄낸 성과였다.

9. 프로파일러 성공·아쉬운 사례

프로파일러를 통해 범인을 밝혀낸 대표적인 사건은 강호순·김길태 사건 등이다. 프로파일러들은 이춘재와 마찬가지로 강호순의 자백을 이끌어 내기 위해 신뢰관계를 쌓았다. 강호순과 고도의 심리전을 벌이며 범행 사실을 자백받은 것이다. 지난 2010년 3월 부산에서 여중생을 무참히 살해한 뒤 붙잡힌 김길태와의 심리전에도 프로파일러가 투입됐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 권 전 경정은 객관적 자료뿐 아니라 김길태의 성격과 가정환경, 사회적 상황 등을 고려해 김길태의 감정선을 파고든 끝에 자백을 받아냈다. 프로파일러가 투입됐으나 범행 수법 등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사건도 있다. 지난 4월 경남 진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불을 지른 뒤 탈출하는 주민들을 살해한 ‘진주 방화살인 사건’의 범인 안인득의 범행 동기 등을 파악하기 위해 프로파일러들이 나섰으나 제대로 된 답을 얻지 못했다.

10. 프로파일러 역할 확대와 전망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다양한 수사정보를 통합적으로 분석, 범행동기 등 용의자 유형을 추정하거나 피의자 성향에 맞춘 효과적인 신문전략을 제시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경찰은 구체적으로 △유·무형의 증거 및 수사정보 등 통합적 사건 분석으로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의해 왜곡되거나 누락될 수 있는 수사 사각지대 최소화 △수사의 우선순위를 정해 수사 효율성 최대화 △정교한 신문전략을 통한 자발적 진술 확보 등 과학수사의 신뢰성을 제고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과학적이고 검증 가능한 정확한 수사 및 의사결정 지원을 위해 데이터 기반의 범죄 분석 및 연구 활동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범죄로 가족을 잃은 유족이나 처참한 사건 현장을 마주해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수사관들이 제2, 제3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케어 팀’(care team) 신설도 검토 중이다.

송유근·조재연·서종민·나주예 기자 6silver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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