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허준영 “잘된다고 어깨 힘주면 위험… 골프도 기업경영도 늘 겸손해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허준영 이사장이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스포츠닥터스 사옥 집무실에서 골프를 하면서 받은 트로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허준영 사단법인 스포츠닥터스 이사장

초보때 드라이버 270m 날리던
레슬링 국가대표 출신 장타자
당기는 힘 쓰는 레슬링 습관 탓
티샷 대부분 훅 또는 풀샷 걸려
라운드당 페어웨이 2 ~ 3차례뿐

국제 NGO ‘스포츠닥터스’설립
황영조·장하나 등 체육계 스타
각국 의료진 - 국내 병·의원 참여
국내외 오지서 23년 의료 봉사

허준영(50) 사단법인 스포츠닥터스 이사장은 우리 사회에서는 드물게 ‘따뜻한 휴머니즘’을 가진 기업인 중 한 사람이다.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스포츠닥터스 사옥에서 허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한국마이팜제약, 마이건설 등 자회사 5개를 보유한 마이그룹 회장이다. 허 이사장은 “스포츠닥터스는 2003년부터 유엔에 등록된 국제 의료 비정부기구(NGO) 단체로 전 세계에 지부를 두고 있다”면서 “유엔이 지정해 준 빈민국 35개국에서 의료봉사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닥터스에는 전 세계적으로 100만 명의 의료진이 등록돼 있고, 국내에서는 전국 3500개 병·의원을 통해 의료 지원을 받고 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스포츠닥터스라는 이름은 운동선수 출신인 허 이사장이 스포츠 선수들의 재능 기부와 의료인들의 기술을 합치면 봉사 효과가 커질 것이라는 취지에서 따왔다. 실제 황영조, 이봉주, 신태용, 이근호, 심권호, 프로골퍼 장하나 등 전·현직 스포츠 스타들이 국내외 의료봉사에 동참해왔다.

허 이사장은 국가대표 레슬링선수 출신.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앞둔 대표팀 선발전을 앞두고 무릎을 다쳤고, 이후 선수 인생을 접었다. 하지만 그는 선수생활을 하면서도 학업을 꾸준히 병행해 온 덕에 새로운 인생을 개척할 수 있었다. 체육특기자로 단국대에 진학하고도 수학교육을 전공했고 경영학 석사를 거쳐 고등학교 교사가 됐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사표를 던지고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변신했다. 얼마후 의약분업이 이뤄지던 시기에 조제전문 약국 체인 ‘준 메디 팜’을 차렸다. 대형병원 앞 약국 한곳에서만 연 매출 100억 원이 넘을 정도로 번창했고 이후 제약회사를 인수했다. 허 이사장은 제약회사 영업사원 시절, 의료진과 의료봉사를 처음 나갔던 게 지금의 스포츠닥터스 탄생의 계기가 됐다. 그는 “해외 의료봉사를 갔더니 치료는 물론, 약 한번 못 먹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 충격을 받았다”면서 “돈을 많이 벌면 본격적으로 의료봉사를 하기로 마음먹었고 2003년 스포츠닥터스를 설립해 실천에 옮기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 이사장은 제약회사를 운영하면서부터 골프를 시작했다. 그는 스포츠를 통한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가장 먼저 골프에 눈을 돌렸다. 프로골프 선수들을 지원했고, 자선 골프대회도 여러 차례 열었다. 그는 “골프만큼 마케팅을 잘해놓은 스포츠가 없는 것 같다”면서 “골프는 끝이 없는 게임이다 보니 언더파가 나오는 데 제한이 없다”고 말했다.

허 이사장은 하지만 자신의 골프에 대해 “생각보다 쉽지 않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골프는 던지는 스윙 근육이 필요하지만, 레슬링은 잡아당기는 근육이 발달하는 운동이다 보니 공을 칠 때마다 훅이 많이 났다”며 골프가 자신에게 어려웠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드라이버 샷이 장타다. 처음 배울 때만 해도 드라이버를 잡고 270m까지 날렸다. 요즘도 240m를 보내는 편이지만, 문제는 정확도. 드라이버로 친 티샷이 페어웨이로 가는 것은 한 라운드에서 많아야 2∼3차례뿐이라는 것. 레슬링을 하면서 굳어진 근육 습관 탓에 조금만 욕심을 부리면 어김없이 훅이 나 버려 숲이나 위험지역으로 가기 일쑤라는 얘기. 허 이사장의 베스트 스코어는 몇 해 전 기록한 78타다. 그날따라 티샷이 절반 이상 페어웨이에 떨어지면서 ‘그날’을 맞이했던 것. 이글은 2차례 기록한 게 골프 기록 전부다.

허 이사장의 골프기량이 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라운드 기회가 적다는 것이다. 허 이사장은 “골프를 하려면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는데 아직은 할 일이 너무 많아 골프장을 자주 나가기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주말마다 봉사활동 현장에 나가기에 그에겐 주말 골프가 없다. 스포츠닥터스 자문단 모임이나 두어 개 골프모임 등 고작 평일에 주 1회 나가기도 빠듯하다는 얘기.

허 이사장은 “기업을 일궜으면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며 “나름 성공했다며 갖은 폼 잡으면서도 ‘좋을 일 좀 하자’고 하면 남을 위해 10만 원 내는 것조차 꺼리는 인사가 많은 데 놀랐다”면서 돈만 벌었다고 성공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실제 그는 지난 23년 동안 3600여 차례 봉사활동을 했다. 그는 ‘근육이 연금보다 강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국내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노인복지관 지원사업도 꾸준히 하고 있다.

허 이사장은 그동안 거의 혼자 힘으로 해왔지만, 이제는 전 세계 오지로 활동폭이 넓어진 데다 의료 지원을 요청하는 곳이 많아 재원 부담이 커지고 있어 다른 기업들의 동참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스포츠닥터스는 마이그룹 차원에서 만든 암호화폐 ‘에스디 코인’을 활용하기로 했다. 에스디 코인은 의료봉사 수행과 물품구매 등 후원활동을 투명하게 진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암호화폐다. 개인과 기업이 스포츠닥터스 의료봉사에 금액을 기부하면 그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를 에스디 코인으로 받게 된다. 에스디 코인 사용 내용을 추적하면 특정 환자에게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내용까지 확인할 수 있다.

허 이사장은 “골프는 기업 경영과 흡사한 점이 많아 때론 고비가 찾아오고 바로잡아야 할 부분도 많다. 또 잘된다고 어깨와 목에 힘주면 위험신호가 온다. 골프도 기업 경영도 항상 겸손하게 전략을 잘 짜서 끝날 때까지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