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했습니다>폐가서 만난 남편, 내가 지켜줄게

▲ 박수비(여·46)·김철(41)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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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등명 해변에 있는 폐가 ‘라라무리’. 이곳은 저(수비)와 남편 철이 씨의 러브하우스예요. 강릉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저는 카우치 서핑을 하면서 외국인 친구들에게 강릉을 소개해주는 일을 취미로 하고 있었습니다.

해변을 걷고 있던 어느 날, 허름한 폐가가 눈에 들어왔어요. 누가 보기에도 다 쓰러져가는 집인데 제 마음에 쏙 들더라고요. 흙더미와 쓰레기가 가득한 집 안에 들어가 보니 철이 씨가 있었습니다.

철이 씨는 서울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사고를 당해 온몸이 망가진 채로 강릉에 내려와 있었어요. 일정한 수입 없이 고물을 주워다 팔며 예술활동을 하며 살고 있었죠. 그 후로 우린 친한 누나 동생 사이로 지내게 됐습니다.

철이 씨와 가까워질수록 가진 것 없는 이 사람을 내가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진해서 철이 씨의 폐가로 들어갔습니다. 전 철이 씨가 돈 벌고 가장 노릇을 하길 원치 않아요. 자신이 원하는 작품 활동을 마음껏 하며 행복하게 살길 바랄 뿐입니다.

둘만의 평온한 일상이 계속되던 2017년, 철이 씨에게 프러포즈하기로 했어요. 정성껏 준비한 프러포즈 영상을 지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틀어줬죠. 영상 상영이 끝난 뒤 철이 씨는 아무 말이 없더라고요.

불안해진 제가 뒤를 돌아보니 울면서 웃고 있었습니다. 그 얼굴을 본 저도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이 그동안 ‘가진 것 없는 자신’을 탓하며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2017년 9월, 저희는 폐가 ‘라라무리’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최근 저희는 강릉 산꼭대기에 있는 폐가로 보금자리를 옮겼습니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지만, 순간에 감사하며 우리만의 공간을 다시 꾸려나가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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