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엉뚱한 조국發 졸속 교육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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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범 사회부 차장

‘관리자에 불과하죠!’

중 3 아들을 둔 한 학부모(44)가 주저 없이 공교육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교사의 역할에 대해 이 같은 견해를 밝혀 왔다. 학습 동기를 부여하고 인성을 갈고 닦도록 이끌어 주는 교사 본연의 역할을 기대하는 학부모는 더는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기자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아이들 얘기로는 교실에 앉아 있는 동급생 24명 중에 불과 4, 5명만이 수업에 열중한다고도 했다. 정작 놀라운 것은 이 같은 얘기가 하나도 놀랍지 않다는 것이다.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공교육이 무너진 지 너무 오래된 탓에 심각한 중증에 걸려 있는 교육 현실에 대해 당연시하는 ‘불감증’이 우리 사회 저변에 만연한 탓이다.

현 정부가 쏘아 올린 교육 개혁의 화살 역시 불감증에 젖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자녀 사태로 촉발된 교육개혁 논의는 대입 제도의 공정성 문제에 꽂혀 있다. 교육계도 논쟁이 한창이다.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을 손질해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과 ‘이참에 학종을 줄이고 수능 위주의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 존치를 놓고도 갑론을박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 장관을 임명하면서 “고교 서열화, 대학 입시의 공정성 등 기회의 공정을 해치는 제도부터 다시 한 번 살피고, 특히 교육 분야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교육계나 대통령이나 본연의 역할이 무너진 공교육 현장에 대해서는 다들 눈 감고 있다.

이런 식이면 교육 개혁의 화살은 또 한 번 과녁을 벗어날 수밖에 없다. 이미 일선 교육 현장과 이를 책임지고 있는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으로부터 ‘말기 암’ 판정을 받아 호흡기를 달고 연명하고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인데, 교육 개혁 논의는 눈에 보이는 외상을 어떻게 봉합할 것인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양상은 이미 김영삼 정부가 1995년 ‘5·31 교육개혁 방안’을 발표한 이래로 지난 20여 년 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해 온 일이기도 하다. 교육 현장의 본질적인 문제는 놔둔 채 자율형 사립고 양성·폐지나 대학 입시 제도의 외연만 손질하는 데 그쳐 왔다. 그사이 교육 현장은 손 쓸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중증에 빠져들었으나 난제라는 이유만으로 다들 덮어 왔다.

한국 교육의 국제 경쟁력은 어떤가.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발표한 ‘2019년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 종합 순위는 141개국 중 13위로 올랐으나 비판적 사고 교육 순위는 82위에 불과했다. 해마다 실시하는 교원 능력 개발 평가를 위한 학부모 만족도 조사의 참여율은 2015년 50%대에서 2017년에는 30%대로 떨어졌다. 조사를 해봐야 바뀌는 게 없다는 학부모들의 불신을 보여주는 지표다. 2018년 중·고등학생 1인당 사교육비(실제 참여 기준)는 각각 45만 원, 55만 원에 달했다. 갈수록 늘고 있는 사교육비 역시 공교육 실패를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다.

교사와 교육 현장이 변하지 않으면 개혁은 겉돌 수밖에 없다. 조 장관 사태든 뭐든 현 정부가 뒤늦게 ‘교육 개혁’을 들고 나온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더 늦기 전에 문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