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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19년 10월 17일(木)
권력이 된 페미니즘… 여성의 굴레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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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뱅크

- 페미니즘은 전쟁이 아니다 / 조안나 윌리엄스 지음, 유나영 옮김 / 별글

‘편견과의 전쟁’ 시대 지나
英·美선 女차별 거의 사라져

女는 ‘무고한 희생양’ 정의
男은 ‘태생적 파괴자’ 간주
그릇된 의식, 성별 불만 키워

‘젠더갈등서 자유로워지자’
남혐 - 여혐 갈라져 싸우는
한국사회에도 시사점 던져


가수 겸 배우 설리의 급작스러운 사망에 관해 언론들은 ‘페미니스트’와 ‘악플’이란 키워드로 분석했다. 악플 역시 우리 사회에 바이러스처럼 번진 ‘여혐’을 떠나 말할 수 없다. 실재야 어차피 알 수 없지만, 세상은 이런 구도로 한 안타까운 죽음을 재단한다.

‘젠더 전쟁(gender war)’의 시대다. 미국에서 촉발된 ‘미투 운동’에서도 보았지만, 거의 지구적 현상이다. ‘계급에서 젠더로’가 국내에서도 인문·대중문화의 한 줄기가 되고 있다. 19세기 중반∼20세기 초반의 참정권 운동으로 대표됐던 제1세대 페미니즘과 1960∼1970년대의 성(性) 평등으로 급진화된 2세대 페미니즘 운동의 상당한 성공으로 이제 ‘페미니즘’은 개명된 지구촌 어디에서나 대세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3∼4세대의 페미니즘을 지나오며 최근의 그 결과적 양상은 ‘여혐’ 대 ‘남혐’의 ‘혐오 대립’으로 굳어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서구뿐 아니라 출발이 아주 늦은 우리도 그러하다.

영국 켄트대 교수이자 온라인 잡지 ‘스파이크드’ 편집자, 정치·문화 분야의 문필가로 활동 중인 조안나 윌리엄스의 도발적인 이 책은 그러한 궁금증을 풀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여성의 삶을 사회의 편견과 권력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발전해온 페미니즘이 ‘이제는 거대 권력이 돼 오히려 자유를 억압하게 됐다’는 관점에서 저자는 페미니즘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재작년 출간된 이 책의 원제목은 ‘여성 대 페미니즘’이다. 여성과 페미니즘을 한 편이 아니라 대립 관계로 놓고 있다. 부제목은 ‘우리는 왜 젠더 전쟁에서 자유로워져야 하는가?’이다. 보다 긍정적인 페미니즘, 보다 공정한 사회를 위한 페미니즘을 모색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책을 읽기 전에 새겨둘 게 있다. 책이 주로 다루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 미국의 페미니즘 전통과 성과는 여전히 가부장적 문화가 학교와 직장에 넘실대는 한국의 현실과 수평비교가 어렵다. 또 하나, 저자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지만, 특히 제3세대 페미니즘부터 내부에서 ‘사투’를 벌이며 분화된 페미니즘의 다양한 양상과 진영을 고려해서 저자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 그렇다 해도, 이 책은 저자의 페미니즘에 관한 오랜 연구의 내공이 느껴지고, 남녀 차별에 관한 현재의 다양한 통계와 세밀한 분석을 기반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학교는 젠더 전쟁의 시작 장소이자 최전선이다. 영국과 미국에서 여학생은 25년 이상 남학생보다 뛰어난 성적을 내고 있다. 영국에서는 1992년 처음으로 대학에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많아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학사 학위의 60% 이상이 여성이며, 2008년부터 여성 박사학위자가 더 많아졌다. 영국에서는 가난한 백인 남학생들이 ‘신(新)교육적 하층민’으로 불리며, 미국에선 흑인 소년들의 학업성취도가 아주 낮다.

성평등을 내세워 ‘여성친화적’으로 고안된 교육방식들이 주효했다. 이리저리 날뛰는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의 ‘근면’과 ‘순종’은 유리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분위기는 여성을 평생 순종하는 존재로 구속할 위험도 있다”고 경고한다. 또 “일부 전문직이나 고위직에 필요한 리더십과 위험 감수 및 자기 홍보 등의 능력은 교육을 통해 사회화된 여학생에게 덜 유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학생들은 교사와 친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과거보다 더 많은 압박을 느낀다는 통계도 있다. 무엇보다 학교와 대학에서 젠더 전쟁을 벌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교육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다음은 직장이다. 각종 통계는 교육에서 여성의 성취가 직장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영국은 총노동인구의 46%, 미국은 47%를 여성이 차지한다. 영국에선 자녀를 둔 워킹맘(74%)과 자녀가 없는 직장 여성(75%)의 차이가 거의 없다. 현재 영국에서는 수의사, 의사 및 변호사, 회계와 학계 등의 전문직에서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다. 또 동일한 노동에서의 성별 임금 격차는 거의 붕괴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끊임없이 성차별주의자인 남성 상사와 여성혐오적인 사무실 분위기를 말한다.

저자는 오늘날의 페미니즘은 소수의 엘리트 여성 집단, 즉 성공한 여성들을 위한 특권에 몰두해 계약직이나 파트타임 노동자, 워킹맘, 나이 든 노동자의 현실과는 동떨어지게 됐다고 주장한다. 또한 페미니스트 운동은 모든 사람의 임금인상을 위해 싸우기보다 소규모 중산층 여성집단을 대변한다고 비판한다. 성별을 넘어 보다 근원적인 공정과 자유를 주장해야 본래 여성 해방을 위해 시작된 페미니즘의 정신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임금격차의 경우 남녀의 성별을 떠나 전문직 종사자와 임시 계약직 등 낮은 임금 노동자라는 분류와 기준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의 페미니스트 운동은 여성을 강인하기보다는 연약한 존재로 보는 관점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여성이 힘센 남성의 무고한 희생양으로만 정의되고, 남자를 태생적인 악마이자 파괴자로만 간주한다. 이는 오히려 여자들에게 그릇된 피해의식을 심어줌으로써 여성의 지위를 더욱 격하하고 성별 간 불만을 가중할 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페미니즘이 여성을 지배적이고 탐욕적인 남성성의 피해자, 얼굴 없는 가부장적 힘의 희생자로 제시하는 것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페미니즘은 ‘남성혐오’가 아닌 ‘공정의 구현’ 운동이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424쪽, 1만7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mail 엄주엽 기자 / 문화부 / 부장 엄주엽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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