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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9년 10월 17일(木)
검투사 시신이 간질 치료제로… 세상을 속였던 ‘수상한 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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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 / 박성규 지음 / MID

고대 로마 시대에 검투사 시합에서 패배한 검투사의 시신은 간질 환자들의 치료제로 쓰였다. 이 당시의 사람들은 죽음을 앞둔 검투사의 모습에서 간질 환자의 증세를 찾아냈다. 극한 상태에서 몸싸움한 후 죽기 직전인 검투사들의 거친 호흡과 신체적인 경련은 간질 환자들이 발작을 일으킬 때의 모습과 유사하게 보였다. 검투사의 간도 인기가 많았다. 간은 용기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검투사의 간에는 ‘용맹스러움’이 많이 들어 있다고 믿었다. 인류는 근원적 욕망인 건강을 위해 약 재료에 한계를 두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인류 문명과 함께하고 매혹했던 약의 상당수는 가짜 약, 엉터리 약, 그리고 위험한 약이었다. 책은 가짜라서, 엉터리라서, 위험해서, 수상해서 약국에 없는 약에 얽힌 일화를 흥미롭게 풀어가고 있다.

저자는 먼저 ‘최초의 약은 가짜 약이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으로 독자들을 유인한다. 고대 인류는 종교와 주술, 그리고 신이 자연에 남긴 힌트들을 통해 약재를 탐색했다. 중세의 연금술사들은 존재하지 않는 ‘현자의 돌’을 찾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허비했다. 그 과정에서 어처구니없이 황당한 재료들이 모여 만병통치약과 만능해독제로 ‘발명’됐다. 진시황과 엘리자베스 여왕은 독성이 강한 수은을 각각 불로약과 피부약으로 썼다. 이집트의 미라는 번역상 실수 때문에 유럽에서 의약품으로 사용됐다. 검투사의 시체는 뛰어난 육체와 정신을 갖췄다는 이유로 1등급 약재였다.

원래는 좋은 약이었던 ‘나쁜 약’들도 등장한다. 조선의 정조는 담배의 효험을 예찬했고, 프로이트는 코카인을 획기적인 신약으로 조명했다. 필로폰은 20세기 초 독일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대마는 종교의식에 쓰이는 신성한 식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것들은 중독성으로 인해 ‘나쁜 것’이 됐다.

좋은 약은 과연 좋기만 한 걸까? 항우울제인 ‘프로작’의 뒷이야기를 살펴보면, 엉터리에 부작용 위험까지 있는 약도 좋은 약으로 팔려나갈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항우울제를 장기간 복용하면 식욕이 감소하면서, 속 쓰림과 위장 출혈이 보다 쉽게 일어난다. 성욕이 감퇴해 발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비아그라가 필요하게 되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항우울제를 복용하게 되면, 먹지 않아도 됐을 약 세 가지를 평상시에 복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항우울제야말로 제약회사가 원하는, ‘불필요한 약들의 관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저자는 아직도 많은 현대인이 약은 자신을 치료하고 각성케 하며 때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면서 우리 또한 고대인과 마찬가지로 쉽게 이루지 못하는 어떤 욕망을 약에 너무 쉽게 의탁하고 있다고 본다. 약은 앞으로도 우리를 매혹할 것인가? 저자는 그렇다고 자문자답한다. 저자는 스웨덴 웁살라대학교에서 약학박사 학위를 받은 ‘약 연구자’다. 336쪽, 1만6000원.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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