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위험천만한 ‘전략적 극단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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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前정권 탄핵은 ‘소통 실패’ 탓
靑 칩거하며 言路 스스로 막아
여당과도 소통 못해 내부 분열

文대통령 반면교사 활용 못해
자기편 수호 위해 상대방 공격
통합 앞장서야 진정한 지도자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탄핵당한 전임자로부터 가장 반대쪽에 있던 후보였기 때문이다. 집권 후에도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의 기치 아래 이전 정부의 거의 모든 것과 반대로 가는 국정 기조를 내세운다. 정책 노선은 물론, 국정 방식, 정치 전략 등에서도 전임 박근혜 대통령과 정반대 모습을 보이려 한다. 현직자가 실패한 전임자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는 건 당연하다. 다만, 그 교훈을 얻지 못하고 오용(誤用)한다면 실패의 전철을 답습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실패 원인은 소통 부재였다. 한때 ‘선거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유권자의 공감을 얻던 그는 대통령이 되자 반대편은 물론 일반 국민, 심지어 소속 당 정치인들과도 소통을 끊었다. 청와대에 칩거하며 극소수 측근에게만 의존한 채 언로(言路)를 막았다. 국정 운영 방식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수백 만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국회에서 탄핵이 논의돼도 그는 독선적 불통의 자세를 벗지 못했다. 소속 당이 국회 다수의석을 가졌음에도 탄핵이 압도적으로 의결된 것은 소속 당의 정치인들과도 소통하지 않은 독선 탓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러한 전임자의 실패 원인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그 교훈을 부분만 실천하거나 오용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소통을 소속 당 정치인들과 지지 세력으로만 좁혀 추구하고, 반대편은 물론 중도적 시민에겐 소통의 문을 확 열지 않고 있다. 전임자가 내부 분열로 무너졌다는 점만 주목해, 지지 세력이 좋아할 수사(修辭)로 그들을 단결시키고 동원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진영 내에 조국 전 장관 사태와 같은 위중한 문제가 발생해도 문제임을 선뜻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진영 단결의 계기로 삼는다. 문제에 대한 비판은 이분법적 진영 논리의 프레임을 씌워 무력화하려 한다. 반대 측 정치인은 물론 일반 시민의 순수한 쓴소리에도 진정성 있는 반응을 빨리 보이지 않는다.

상대편은 무시하고 자기편만 바라보는 ‘전략적 극단주의’는 비판이 셀수록 반사적으로 더 경직되는 경향이 있다. 상대를 무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심지어 악(惡)으로 규정함으로써 자기 진영의 문제를 덮고 내부 기율을 단속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예를 들어, 검찰이 ‘정치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던 과거와 달리 독립적·주체적으로 권력 핵심의 위중한 문제를 조사하기 시작하자 대통령 측은 검찰을 적대시하며 직제 변경 및 권한 조정을 통해 조직 자체를 위축시키려고 한다. 정치 검찰의 오명을 벗자는 원래의 개혁 명분이, 진영 수호의 전략적 극단주의 때문에 폄훼·희생되고 말았다.

전략적 극단주의는 자기 진영을 뭉치게 하는 대신 국가를 양쪽으로 분열시킨다. 이미 전환기적 조류로 사회·문화·경제 여러 측면에서 양극화가 심해졌는데, 만약 대통령이 전략적 극단주의에 의존한다면 국가 전체가 과도한 양극적 대결에 빠지게 된다. 이는 국민 모두의 최고 대표자인 대통령에게 맞지 않는 일이다. 대통령은 정파 지도자로 머물러선 안 된다.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전략적 극단주의에 의존했다 하더라도 선거 후 국정 운영에서는 지지층이 아닌 국민 모두를 쳐다보며 어떻게든 사회 통합을 이루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 대통령의 적폐청산 기조는 좋은 취지를 갖고 있다. 사회 곳곳의 폐단을 털어 버리고 새 시대에 맞게 변혁하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우리는 낡은 틀에 갇혀 급변의 시대에 번영은커녕 생존마저 불안해질 수 있다. 이 좋은 취지를 전략적 극단주의로 훼손시켜선 곤란하다.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고매한 취지가 양극적 진영 논리로 망가진 작금의 사태가 이를 예시해 준다.

이제부터라도 국민 모두를 바라보며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야 적폐청산의 대의가 거국적 지지를 얻고 실제 효과를 낼 수 있다. 물론, 사회 일각에 불이익을 줄 수밖에 없는 적폐청산을 할 때 국민 모두를 고려한다면 제대로 되겠느냐고 항변할지 모른다. 또, 반대편도 무조건 비판만 하는 극단주의를 취하는데 소통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강자(强者)인 대통령이 진심으로 널리 소통하는 지난(至難)한 과정을 참아 낸다면, 그런 어려움은 극복 불가능한 게 아니다. 전임자의 우(愚)를 피하는 과업의 성패는 현직자의 의지와 지혜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