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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Interview 게재 일자 : 2019년 10월 18일(金)
김수연 “책 좋아하던 아들 가슴에 묻고… 전국 오지 찾아 ‘독서 씨뿌리기’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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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연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가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논현정보도서관에서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호웅 기자
■ 김수연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

일흔 넘었지만 공식 직함만 6가지…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살아
돈 많이 벌어야 행복한 대한민국…선진국은 독서 통해 삶의 지혜 배우며 여유 찾아


김수연(73·한길교회 목사)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는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고 있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문화 혜택에서 소외된 전국의 산간벽지와 오지, 섬마을 등을 누비며 학교마을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을 세워주는 사업에 모든 열정을 쏟고 있다. 우직하게 사업을 이어간 결과 현재 전국에 문을 연 학교마을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은 330∼340곳에 달한다. 이제 조금 여유를 가질 법도 하지만 김 대표는 여전히 1년 내내 가득 찬 일정을 소화하며 ‘더 많은 사람에게 책을 읽히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계속 도전하고 있다.

김 대표가 ‘책 전도사’로 헌신하게 된 배경에는 사실 1984년 불의의 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아픔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시 그는 지상파 방송의 잘나가는 기자였지만 만 6세였던 둘째 아들을 화재로 떠나보내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좌절을 겪었다. 평소 책을 좋아하던 아들에게 “원하는 책을 마음껏 사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직장 일이 바빠 한 권도 사주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았다. 이 때문에 김 대표는 어려운 환경에 놓인 다른 아이들에게 책을 나눠주는 방식을 통해 지키지 못한 아들과의 약속을 실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세상을 향해 책 한 권 나누는 것은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내 아이와의 굳은 약속”이라며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숨을 거두는 날까지 쉬지 않고 책의 씨앗을 뿌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책 보급 운동에 인생을 바친 또 다른 이유는 ‘독서가 나라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강한 확신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들이 강한 국력을 갖게 된 원동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한 결과, 바로 풍부한 독서량에 해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평소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국가의 발전 속도는 국민의 독서량과 정비례한다’는 말을 즐겨 쓴다.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책 기증 운동에서 나아가, 시골 마을부터 도시에까지 작은도서관을 짓는 사업에 몰두해왔다. 주경야독으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된 뒤에는 아예 기자 생활까지 접고 본격적으로 전국을 다니며 책 읽기 캠페인을 이어가고 있다.

독서 향기가 가득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김 대표의 고군분투가, 스마트폰에 밀려 독서가 외면받는 시대에 잔잔한 울림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다며 인터뷰 요청을 수차례 거절했다. 그런 그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인터뷰 약속을 잡아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정보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서리가 내려앉은 듯한 새하얀 머리는 영락없는 노인의 모습이었지만, 180㎝가 넘는 키에 다부진 체격을 지닌 그는 청년 못지않게 강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인터뷰가 진행된 2시간 동안 그는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전혀 지친 기색 없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 인터뷰를 고사했다가 수락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질문을 받자마자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고색창연한 경북 안동이 고향인데, 어린 시절 한학(漢學)을 배웠습니다. 당시 읽었던 윤리 서적에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는 죄인이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어린 아들을 잃은 아비로서 당연히 아린 가슴을 붙잡고 죄인처럼 살아왔습니다. 죄인으로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되도록 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이를 먹을수록 더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점도 망설임의 이유였지요. 하지만 여러 차례 인터뷰 제의를 받고 고민해보니 30여 년간 소명의식을 갖고 이어온 책 읽기 운동의 가치와 정신을 보다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뀌더군요. 책과 불가분의 관계인 신문에서 독서 운동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합니다.”

일반 대중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까.

“말 그대로 전국 곳곳에 작은도서관을 만들어주는 활동을 합니다. 도시보다는 책을 접하기 어려운 산간벽지와 오지, 섬마을 등을 우선 지원하는 것이 원칙이지요. 이들 지역에 있는 학교의 빈 교실을 활용해 도서관을 꾸며주는 학교마을도서관 개설사업과 문화 소외지역에 소규모 도서관을 지어주는 작은도서관 조성사업, 사랑의 책 모으기 운동, 지방자치단체 도서관 위탁운영, 언론과의 독서캠페인 등을 주로 합니다. 최근에는 열악한 교육환경에 놓인 군인 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육·해·공군 부대 안에 40∼50평(132∼165㎡) 규모 도서관을 조성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도서관을 짓고 책을 구매하는 데는 필연적으로 많은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 욕심을 포기하고 희생할 각오로 시작한 봉사활동인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도 적지 않아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했단다.

“사업 초창기에는 온전히 개인 재산으로만 필요한 예산을 충당했습니다. 재산이 좀 있었는데도 한 해도 사업을 쉬지 않으니 곶감 빼 먹듯이 금세 써버리게 되더군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에는 은행대출까지 받아가면서 사업을 이어갔어요. 이 때문에 지금 노후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이 2005년부터 네이버, 2008년부터 KB국민은행의 후원을 받는 등 기업들의 도움으로 사업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사업을 이어오면서 회의감에 빠졌던 적도 꽤 있었습니다. 도서관을 만들어주겠다고 하는데도 ‘책 안 사요’라며 책 장수 취급하면서 냉대하는 학교장도 꽤 많았거든요. ‘요즘 누가 책을 보냐. 차라리 돈으로 달라’거나 ‘일거리만 많아졌다’고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업이 원만하게 풀리면 기뻐서 한 잔, 잘 안 되면 마음이 아파서 한 잔. 당시 술만 엄청 들이켰죠.”

그는 이날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독서 풍토를 수차례 비교하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잘 살고 행복하냐’고 물으니 거의 비슷한 대답을 내놓더군요. 많은 이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으면서 무궁무진한 지식과 정보, 지혜, 삶의 방법 등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당시 이 같은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돈을 많이 벌어야 잘 살고 행복하다고 하는데 부끄럽더군요. 선진국에선 국민 독서율이 80∼90%에 이르는데, 우리는 국민 10명 중 4명이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습니다. 우리가 경쟁심을 느끼는 일본만 해도 인구가 1억 명이 조금 넘는데, 지난해 책이 6억4000만 권 팔렸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왜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김 대표만의 견해가 궁금했다.

“모르는 길을 가면 두렵고 여유도 없고 긴장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아는 길을 가면 여유 있게 주변 경치도 감상하면서 편하게 가잖아요. 책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자세와 지혜, 성취, 고통 등이 담겨 있습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길을 미리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책을 읽으면 인생이 더 여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일수록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았구나’ 하고 더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법입니다. 고난의 역사가 있기 때문인지, 한국인들은 몰라도 아는 척하고 꼭 다른 사람을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듯합니다. 책은 겸손한 자세로 상대방에게 경의를 표할 줄 아는 태도를 가르쳐줍니다.”

김 대표는 30여 년간 책 읽기 캠페인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24일 충남 천안 남서울대에서 제1호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외에도 대통령표창, 국무총리상 등 수많은 수상 실적이 있지만 정작 본인은 명예보다는 묵묵히 의미 있는 삶을 이어가는 데에 더 관심이 있는 모습이었다.

“작은도서관 만들기를 비롯한 각종 강연,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업무 등 공식적으로 6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수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항상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절박하게 살기 때문이지요. 가장 소중한 순간은 내 생명이 살아 있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소중한 사람은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며, 가장 소중한 일은 현재 내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준 어린 아들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또 고맙기도 합니다. 남은 삶 동안에도 버스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열심히 책을 나눠주다가 길 위에서 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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