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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편식주의자의 미식여행 게재 일자 : 2019년 10월 18일(金)
씹을수록 고소한 장어, 갯벌향 가득한 펄낙지… 선물같은 밥상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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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산장어의 소금구이와 양념구이. 이 집 양념은 맵지 않고, 장어의 맛을 최상으로 이끌어 낸다.

펄떡이는 무안의 맛

일로시장의 백반
27가지 반찬에 김치만 8종류
얇게 말려낸 갈치포 맛 인상적

낙지 요리
탕탕이보다 더 잘게 썬 ‘당고’
양념장 밴 호롱구이 식감 일품

장어구이
그릴서 구워 기름지지 않아
장아찌·쌈채소 곁들이면 최상

짚불구이 삼겹살
석쇠에 구워나온 고기 ‘담백’
참게 내장 특제소스 찰떡궁합


매달 끝자리 1일과 6일에 장이 서는 전남 무안 일로시장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경험했던 이른 아침 백반식사는 나의 한정된 음식문화 사고 확장과 개인적으로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시장을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 식사 준비를 하는 많은 사람을 통해 인생에 대한 겸허함을 느끼게 된다. 사람을 통해 배우고 음식을 통해 배우는 요즘, 새로운 여행지에서 느끼는 가슴 벅찬 사람들의 세상에는 역시 치열함이 있었다. 장이 서는 일로시장에서 무안으로의 여행이 시작됐다.

장이 서는 날 일로시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일로시장의 대표 백반 식당 네 곳은 장날을 맞아 새벽부터 손님 끌기에 부산했다. 시장은 물건을 사고, 팔아야 할 곳. 하지만 장이 서는 날이면 꼭 시장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전국의 수많은 사람이 무안 일로시장에 모두 모인 듯했다. 밥을 먹는 사람도 파는 사람들도 식당에서 빈자리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과거 일로시장은 우시장으로 유명했다. 소를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하고 현금으로 흥정하니 시장 이곳저곳에서 주머니 두둑한 사람들이 좋은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놀기도 하고 즐겼다. 흥이 넘치는 이곳, 백반 식당의 음식들은 인근 갯벌에서 나는 풍부한 재료로 찬을 만들어 다양하게 손님상에 내는 시장 백반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가장 찬의 수도 많고, 많은 사람이 “응, 저 집이여!”라고 추천하는 ‘옛날시골밥상’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일행 5명의 아침상은 대단했다. 찬의 수가 무려 27가지. 김치만 8가지, 생선찌개와 생선조림, 그리고 나물 열 가지, 무안의 대표주자 양파김치를 비롯해 갈치포, 이곳에서는 ‘기’라고 부르는 크기 작은 게장과 온갖 장아찌 등 갓 지은 밥에 이른 새벽부터 준비했을 다양한 찬이 보여주는 신선함과 깔끔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것이 일로시장의 자랑, 아침 백반상이다. 장날 아침식사의 묘미는 이렇게 상다리 휘어지는 계절 성찬을 함께한 사람들과 서로 말도 없이 맛보며 바라보며 미소로 함께 즐기는 것이다. 시장이 주는 선물 같은 아침식사였다. 갈치포는 이 지역에서는 자주 먹고 흔한 것이라고 한다. 얇지만 맛이 가볍지 않고 짜지도 않아 말려서 포로 즐긴다. 바쁜 장날 일하는 누구를 붙들고 뭔가 묻기는 아주 힘들었다. 하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에 눈을 마주치고 인사하는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았다.

▲  세발낙지 머리를 젓가락에 꽂고 다리를 돌돌 말아 양념장에 구워낸 내고향뻘낙지의 호롱구이.
가느다란 발, 세발낙지의 철이 돌아왔다. 과거에는 목포, 영암 지역도 세발낙지로 유명했지만 인근 방조제 공사 이후 무안이 독보적인 세발낙지 성지로 자리 잡았다. 너무 더워도 잘 안 잡히고 너무 추우면 갯벌 깊숙이 숨어버려 잘 안 잡히는 세발낙지의 시세는 지금처럼 날씨가 적당한 이 시기에 가장 좋다. 현지 식당에서 마리당 6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무안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성남리 일대는 바다에서 15분 정도 거리로 낙지골목이 형성돼 전국의 미식가들이 모여들고 있다. 무안 터미널 인근 낙지골목 입구에서 가장 멀리 위치해 있지만 지역에서 펄 낙지 도소매를 함께하고 있는 ‘내고향뻘낙지’식당을 방문했다. 이 지역에서 15년 정도 된 전문 식당으로 모자가 함께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다.

수조에는 갯벌에서 잡아 온 세발낙지들이 많았는데 채선기 대표는 짙은 회색처럼 보이는 것이 펄 낙지라고 설명해 줬다. “펄 낙지를 잡는 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보통 삽으로 파서 잡는 방법이 있지만 펄에 물이 빠져나가면 살아있는 작은 먹이를 갯벌에 풀어놓고 움직임을 쫓으며 잡는 방법도 있습니다.” 펄 낙지 메뉴인 호롱구이와 당고, 그리고 낙지 비빔밥을 주문했다. 당고는 보통 탕탕이라고 불리는 것보다 더 잘게 썰어내 부드럽고 목 넘김이 쉽도록 배려해 개발된 메뉴다. “제 할머니가 가끔 오시면 이렇게 당고로 만들어 드립니다.” 당고는 신선한 낙지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고소한 참기름과 무안 양파 다진 것을 함께 넣어 맛을 냈다.


채 대표의 어머니 이현숙 공동대표는 참기름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고소하니 향의 여운이 길었다. 낙지 비빔밥은 낙지와 함께 나오는 호박, 콩나물, 고사리 등 볶은 채소와 함께 비벼 먹는데 낙지의 질감도 볶은 채소의 질감도 습기가 많아 비빔밥이 축축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당근 같이 좀 더 질감이 있는 채소를 넣어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호롱구이는 세발낙지의 머리를 젓가락에 꽂고 다리를 돌돌 말아 양념장에 구워냈다. 머리부터 한입에 씹으면 고소한 낙지의 질감과 맛을 즐길 수 있다. 양념장도 맵지 않고 씹을수록 고소하다. 영화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잠시 생각났다. 낙지 골목에서 나와 인근 망운면 톱머리 해변으로 바닷가 산책을 즐겼다. 무안 인근 해변의 아름다움도 즐길 수 있었다. 낙조가 아름다운 곳으로 명성이 대단한 이 해변 인근에는 낚시하는 야영자들이 많이 보였다. 낙조를 보기에는 갈 곳이 남아 아쉽지만 길을 떠나야 했다.

장어가 살이 오르는 이 시기에 서해안 일대는 장어 굽는 냄새가 기름지다. 무안의 민물장어 전문점으로 유명한 명산리의 ‘명산장어’에 갔다. 지글지글 기름진 향이 넘실대는 여느 장어집이 아니다. 주방 그릴에서 모두 구워 나와 기름진 향을 잘 느낄 수 없을 정도다. 이곳 장어는 향도 맛도 부드럽고 육질이 단단한 것이 씹을수록 고소하고 알찬 장어구이를 즐기게 된다. 장어 전문점이지만 인근에서 재배한 신선한 채소와 다양한 장아찌 등 발효된 찬이 골고루 나와 장어와 함께 즐길 수 있다.

▲  강태안 미식여행가
쌈 채소와 생채소, 특히 대추절임과 매실, 돼지감자, 깻잎, 양파 초절임 등이 장어와 함께 즐기도록 나왔고 장어를 발라내고 분리한 뼈를 튀김으로 만들어 장어가 구워져 나올 때까지 심심한 기다림을 달래기 좋았다. 이 집의 양념 장어는 매운 양념이 아닌 부드러운 양념 맛으로 담백한 장어의 맛을 최상으로 이끌어 내는 차별화된 감칠맛의 양념이었다. 색은 맵지만 실제로는 전혀 맵지 않았다. 식당 창문 넘어 황금색 들판을 배경 삼아 식사하는 맛은 지금 이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경치일 것이다. 바닥에 앉는 방보다는 오른쪽 가장 끝 방의 테이블 의자가 놓인 방에서 식사를 즐기면 벼 추수 전까지 창문 넘어 황금벌판의 경치를 만끽하며 식사할 수 있다.

무안군 몽탄면이라는 곳을 전국에 널리 알린 이 음식은 논농사 이후 모아둔 볏짚을 연로 삼아 석쇠에 구워내 기름을 모두 빼 담백한 짚불구이 삼겹살이다. 짚불구이의 원조 ‘두암식당’을 방문했다. 60년 됐다는데 물론 초기 식당의 모습이 지금과 똑같지는 않았다고 한다. 인근에 비슷한 식당도 몇 개 생겨났지만 이곳은 인근의 식당들과 달리 일요일도 문을 열며 전국에서 방문하는 식도락가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석쇠 채 그대로 고기가 나왔다. 석쇠를 보면 까맣게 그을렸지만 구워내온 고기는 전혀 타지 않고 짚불 특유의 그을음과 기름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식성에 따라 바싹 익혀 주기도 한다.

1인분씩 구워주기 때문에 뜨겁고 기름지지 않았다. 삼겹살은 이 집에서 개발한 독특한 양념장에 찍어 먹는데 집에서 만든 막장에 참게 내장과 갖은 양념으로 맛을 냈다. 삼겹살 구이와 잘 어울린다. 삼겹살 구이가 남으면 싸주기도 하는데 이 집만의 특제소스와 별도 채소도 잊지 않는다. 베트남 직원들의 어눌한 한국말 서비스도 싫게 들리지 않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한 번 더 쳐다보게 됐다.

강태안 미식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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