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理想정치의 9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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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성균관대 명예교수·유교철학

혼란할수록 생각나는 세종대왕
자신보다 백성들 일을 더 걱정

공자 정치모범 1순위 참된 임금
그러면 모두 배워 참된 사람 돼

온 국민이 서로 사랑하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정치일 듯

나라가 어지러울수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정치인들에 대해 실망이 커질수록 자꾸 그리워지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정치를 했으면서도 정치인이 아니었던 사람,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보다 백성들의 일을 먼저 걱정했던 사람, 바로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의 정치를 다른 사람의 정치와 비교하는 것은 대왕에 대한 모독이다.

세종대왕은 정치 원리를 고전에서 찾았다. ‘문왕의 정치 방식은 책 속에 들어 있지만, 문왕 같은 사람이 나오면 문왕의 정치가 행해지고, 문왕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문왕의 정치는 행해지지 않는다.’ ‘중용’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문왕은 주나라를 일으킨 성군이다.

세종대왕은 어려서부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역사에 관한 서적들을 반복해서 읽고, 그 내용들을 모조리 꿰고 있었다. 정치의 모범은 고전 속에 들어 있지만, 그것을 터득해 정치 현실에 적용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모범적인 정치는 행해질 수 없다. 공자는 이상(理想)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뜻을 알아주는 왕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못다 이룬 꿈을 미래에 이루기 위해 정치의 모범 답안을 정리해 남겨 놓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뤄줄 사람을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공자의 모범 답안을 완전히 터득해 이상사회를 재현한 위대한 성군이 한국에 나타났다. 바로 세종대왕이다. 율곡 이이 선생은 선조대왕에게 요순시대의 이상정치를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의 정치에서 찾으면 된다고 간언한 적이 있다. 공자는 먼 훗날 나타날 성군을 위해 이상정치의 아홉 가지 방법을 간략하게 정리해 놓았다. 그 방법은 ‘중용’에 다음과 같이 정리돼 있다.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데 아홉 가지 원칙이 있으니, 첫째는 임금 자신이 참된 사람이 돼야 하는 것이며, 둘째는 훌륭한 사람을 높이 받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닮도록 유도하는 것이며, 셋째는 집안사람들을 잘 다스려 그들이 정치에 참여해 말썽을 부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넷째는 총리나 각 부 장관들을 잘 모시는 것이며, 다섯째는 하급 관리들을 자기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며, 여섯째는 일반 국민을 자기의 자녀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곱째는 기업 경영자와 기술자들을 우대해 흡족하게 각자의 일에 매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여덟째는 멀리 있는 국민을 안락하게 살 수 있도록 후대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이웃 나라들과 관계를 잘 맺어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다.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사람들을 참된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는 것이므로, 참된 사람이 아니면 정치할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임금 자신이 참된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을 공자는 정치의 첫째 조건으로 삼았다. 참된 사람은 겸손하다. 참된 사람이 임금이 되면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훌륭한 사람들을 찾아내어 받들고 존중한다. 그렇게 하면 일반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며 닮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런 분위기가 되면 사람들이 차츰 훌륭해진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을 공자는 정치의 둘째 조건으로 삼았다.

정치의 셋째 조건은 집안 단속이다. 임금의 부모·형제·자녀·친척이 정치에 참여해 말썽을 일으키는 일이 많으므로 공자는 집안 단속을 셋째 조건으로 삼았다. 이 셋째 조건까지는 정치를 할 수 있는 여건에 관한 것이다. 정치 여건이 성숙하지 않으면 좋은 정치는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공자가 정치의 넷째 조건으로 거론한 것은 인선(人選)에 관한 것이다. 정치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를 잘하기 위해서는 총리와 각 부 장관들을 제대로 임명해야 한다. 각 부 장관들은 임금의 부하가 아니라 스승들이어야 한다. 온 나라 안에서 각 분야의 일인자를 찾아서 장관으로 모시는 것이므로, 각 부의 장관은 그 분야에서 임금의 스승에 해당한다. 각 분야에서의 일인자가 장관이 되면 해당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장관이 다 해결하기 때문에 임금은 할 일이 없게 된다. 공자는 이렇게 임금이 할 일이 없게 된 것을 최고의 정치로 삼았다.

공자가 제시한 정치의 다섯째 조건은 하급 관리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모든 정치의 내용은 그들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전달된다. 그들이 잘못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실현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을 사랑하고 존중해야만 정치가 원활하게 이뤄진다. 공자가 제시한 정치의 여섯째 조건은 일반 국민에 대한 사랑이다. 최고의 정치는 온 나라 사람들이 한 가족처럼 돼 서로 사랑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드는 출발은 임금이 일반 백성들을 사랑하기를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제시한 일곱째 조건은, 기업 경영자와 기술자들을 우대하는 것이다. 그들의 노력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다. 그들로 하여금 흡족하게 각자의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정부는 뒤에서 돕기만 하면 된다. 공자가 제시한 정치의 여덟째 조건은 멀리 있는 국민을 보살피는 것이다. 나라 안에서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이나 나라 밖에서 국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동포들을 각별히 보살펴야 한다. 마지막 아홉째 조건은, 이웃 나라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다. 나라의 고통은 언제나 이웃 나라들과의 불화에서 생기는 법이다. 세종대왕의 정치는 이 아홉 가지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 없다.

이 9가지 방법은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 이를 정치에 반영하는 사람이 나오면 대한민국은 세종대왕 때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