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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용식 주필 게재 일자 : 2019년 10월 18일(金)
문재인 하산 길, 박근혜보다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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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주필

조국 사태는 文정권 위기 경보
朴정권 중반 ‘정윤회 문건’ 흡사
묵살 땐 심각한 후폭풍 불가피

유리한 국정 카드 초반에 소진
또 다른 ‘조국 시한폭탄’ 즐비
획기적 국정쇄신 없으면 급락


5년 임기를 등산에 비유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정상에 도달했다. 곧 하산을 시작해야 한다. 정치적 체력, 즉 국정 장악력이 약해지는 것은 단임제의 필연이다. 게다가 국정 성과로 내세울 만한 것도 없다. 이런 시점에 조국 사태가 터졌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장악한 지 2년 남짓 만에, 쫓겨났던 세력의 반격에 밀리고 말았다. 몇 주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임기 반환점과 맞물리면서 충격이 배가(倍加)됐다.

조국 사태는 박근혜 정권의 ‘정윤회 문건’ 사건에 비견될 수 있다. 집권 중반의 그 사건은 ‘최순실 사건’의 경계경보였다.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문고리 3인방 등의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국정 투명성을 높이는 등 올바른 방향으로 대응했더라면 탄핵 사태는 피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데칼코마니’ 모습을 보인다. 정치 철학의 방향만 좌·우 반대일 뿐, 의외로 흡사한 측면이 많다. 실용보다 이념을 앞세운다. 그래서 강고하고 배타적 지지그룹이 생겼다. 인사와 정책에서도 유연성보다는 독선을 고집한다. 측근 중심의 국정이 불가피하다. 허심탄회한 대화보다는 차라리 ‘혼밥’을 즐긴다. 박 전 대통령은 관저에 칩거하다시피 했고, 문 대통령도 김정숙 여사가 곁에 있을 뿐 비슷하다. 반대 의견에 관대하지 않다. 문 대통령에게 한·일 관계 대책을 건의한 고위 인사는 ‘친일파’ 면박을 당했다고 한다. 조국 문제가 악화한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경제 낙관론 등 문 대통령 발언이 ‘벌거숭이 임금님’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직언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정치 환경은 박 전 대통령보다 더 나쁘다. 우선, 민심 이반이 예상보다 빨리 왔으며 복원도 쉽지 않다. 둘째, 남북 정상회담이나 반일 캠페인 카드를 초반에 소진해버렸다. 김정은 답방도 큰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다. 박 전 대통령 사면으로 야권 분열을 노리거나, 반미 이벤트로 지지층을 결집하는 카드도 있긴 하다. 여권 핵심에서 개성공단을 일방적으로 재개하거나, 방위비 협상을 결렬시키자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 측에서 먼저 주한미군 철수 입장을 꺼내면 ‘불감청 고소원’이다. 너무 위험한 도박이다. 셋째, ‘민심 안테나’가 작동하지 않는다. 정세 파악과 정치 공작을 구분하지 못하고 정보기관들이 손을 놓았다. 민정수석에 교수나 감사원 출신을 기용한 것은 ‘민정 더듬이’를 스스로 잘라버린 것과 같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 악화이고, 가장 뼈아픈 문제는 도덕적 정당성의 상실이다. 전임 정권에서는 숨겨진 폭탄이 ‘최순실 개인’이었다면, 현 정권에선 ‘386 세력’이다. 온갖 방법으로 권력에 생계를 기댄 사람들, 태양광 등 좌파 비즈니스 분야까지 합치면 수많은 최순실이 있다. 박 전 대통령에겐 없던 아들·딸 문제도 심상치 않다. 도처에 ‘조국 시한폭탄’이 널려 있는 셈이다.

‘포스트 조국’ 정국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년 4월 총선이 끝나면 성패(成敗)와 상관없이 문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급속히 약화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여당이 승리하면 차기 주자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고, 반대 경우엔 곧바로 심각한 레임덕이다. 탄핵을 되돌려 주자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청와대에선 총선을 빌미로 엑소더스가 시작됐고, 총리와 상당수 장관도 가세하고 있다.

등산 수칙 중에 ‘4-3-3 원칙’이 있다. 오를 때 체력의 40%, 내려갈 때 30%를 쓰고, 30%를 남겨둬야 안전하다는 것이다. 국정에 혼신의 힘을 다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정치적 자산과 지지층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야 순조로운 퇴임과 퇴임 후 안전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획기적으로 인재 풀을 넓히고 잘못된 정책을 시정하지 않으면 문 대통령의 국정 기반은 급속히 붕괴한다. 남은 시간은 길어야 총선까지 6개월 정도다. 안타깝게도 아직 문 대통령은 전임 정권에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지도, 조국 사태가 울리는 위기 신호를 깨닫지도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은 정치인 문재인의 실패로만 끝나지 않는다. 진짜 두려워해야 할 일은 5년 허송세월이다. 그사이에 경제는 추락하고, 안보는 위험에 처한다. 국민정신은 포퓰리즘에 병들고, 자유민주주의는 죽는다. 국민이 결단하고 막아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대한민국 70년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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