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韓·美 ‘마음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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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이수혁 신임 주미대사가 지난 9일 미국 정부로부터 아그레망(주재국 부임 동의)을 받아 오는 24일 워싱턴으로 부임한다. 이 대사가 지난 8월 9일 내정된 후 아그레망을 받기까지 62일, 즉 9주가 소요됐다. 통상 6주 정도였던 관례에 비춰볼 때 1.5배나 걸린 셈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주미대사인 조윤제 현 대사의 경우는 평균 수준인 43일이 걸렸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초대 주미대사로 한승주 전 외무장관을 내정했을 때에는 아그레망이 9일 만에 나왔다.

외교도 사람이 하는 것인 만큼 아그레망 소요 기간은 양국 관계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한·미 간 마음의 거리를 보여주는 지표인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적어도 문 정부-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계는 노 정부-조지 W 부시 행정부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거리가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동맹은 비정상적인 것’이라며 한·미 동맹 해체론을 주장하는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주미대사 내정 및 자진 사퇴 파동도 거리를 벌리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2003년 한 전 대사가 아그레망 패스트트랙 기록을 세운 것은 노 정부 출범 직후 불안정했던 한·미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워싱턴의 기대감 덕분이다. 반미(反美) 대통령의 출현에 워싱턴이 긴장하고 있을 때 노 대통령은 동맹중시론자인 한 전 장관을 택함으로써 “나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며, 미국과 좋은 관계를 갖기 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그러자 부시 행정부는 초(超)스피드 아그레망으로 화답했다. 뉴욕타임스는 한 대사가 워싱턴에 도착한 날 ‘한국 외교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노 정부가 한 대사를 선택한 것은 외교적 열차 충돌(train wreck)을 피하려는 결의를 반영한 것”이라고 평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 대사 아그레망 늦장 발급은 한·미 관계에 대한 경고장이다. 다행히 이 대사에 앞서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외교비서관을 지낸 미국통 문승현 전 체코 대사가 정무공사로 부임했다. 정부 출범 초부터 동맹파를 배제하던 문 정부가 북핵통 베테랑 외교관을 주미 대사관 넘버 1·2로 배치한 것은 늦었지만 대미 외교를 복원하겠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결정 후 갈등상태에 빠진 한·미 관계 정상화가 두 사람의 최우선 임무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