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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후여담 게재 일자 : 2019년 10월 21일(月)
하비브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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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덕수궁 뒷길을 걷다 보면 높은 돌담의 ‘하비브 하우스(Habib House)’라는 명패가 붙은 주한 미국대사관저가 눈길을 끈다.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1∼1974년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필립 하비브 전 대사의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은, 지금의 한옥 형태의 대사관저가 건립되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비브 전 대사는 100년 가까이 되는 옛 공사관 건물을 재건축하면서 서양식 건물로 지을 방침이었던 미 국무부의 생각과는 달리 돈독한 한·미 관계를 고려해 전통 한옥으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해 지금의 아름다운 건물이 탄생했다.

당시 건축학자이자 민속학자인 조자용 선생이 설계를 맡고, 인간문화재인 이광규 대목장이 총감독을 맡아 지은 관저는 ‘ㅁ’자 형태에 중간에 포석정을 재현한 연못을 만들었다. 문고리 하나까지 최고 장인들이 총동원돼 전통을 복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원래 덕수궁의 옛 이름인 경운궁의 일부로, 명성황후 시절 외척인 민 씨 일가가 보유한 땅이다. 1880년까지만 해도 외국인들이 사대문 안에 거주하는 것이 금지돼 있었지만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뒤 1883년 초대 조선 주재 특명전권공사로 부임한 루셔스 푸트가 민 씨 일가로부터 당시 돈으로 1만 냥(2200달러)에 매입했다. 이후 정동 일대에 러시아, 독일, 이탈리아 공사관들이 잇따라 들어섰는데, 고종이 유사시 피할 수 있는 외교적 은신처 마련의 목적도 있었다고 한다.

대사관저는 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국 측이 스위스의 협조를 얻어 중립국인 스위스 깃발을 달고 있어서 일본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6·25가 발발했을 때는 당시 대사가 황급히 피하는 바람에 집기 등을 두고 왔지만, 북한의 외국인 담당 경찰이 철저히 지켜 훼손이 없었다고 한다. 단 내부 구조와 자료 등은 사진을 찍어 가져갔다.

한·미 관계의 역사성을 상징하는 대사관저가 1989년 전대협에 점거된 이후 30년 만에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라는 단체에 의해 지난 18일 점거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같은 시각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문재인 대통령 초청 외교사절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 2015년에는 마크 리퍼트 전 대사가 커터 칼 테러를 당했다. 학생들이 담을 넘는데 쳐다만 본 경찰은 경찰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깊어가는 한·미 동맹 균열이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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