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같은 설치미술, 뉴욕을 매료시키다

  • 문화일보
  • 입력 2019-10-23 10:54
프린트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양혜규 작가는 “미술은 미술로 말해야 한다”며 작품 설명에 인색하다. 대신 그는 작품이 설치된 국제갤러리 전시장에 본인이 ‘움직이는 조각’인 것처럼 페이스 페인팅한 모습으로 등장, 작가 역시 작품의 일부임을 암시한다. 곽성호 기자


■ 美 MoMA·한국서 동시 개인전 펼치는 양혜규

뉴욕 MoMA 전시장 들어서면
홀로그램에 방울소리·새소리…
“인류 역사·문화 새롭게 표현”

韓국제갤러리 전시선 방울연작
번개·로봇… 고대-현대 재해석


1994년 독일로 이주 후 현재 모교인 프랑크푸르트의 국립미술학교 슈테델슐레 교수로 재직 중인 양혜규 작가는 ‘설치 미술’이라는 현대미술 장르에서 동시대 작가 중 단연 돋보이는 행보를 보여왔다. 특히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작가로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 것은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호명되면서부터다. 그리고 2012년 카셀 도큐멘타, 2016년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개인전에 이어 급기야 2018년 아시아 여성 최초로 독일 ‘볼프강 한 미술상’을 수상했다.

이번에는 양 작가가 현대미술의 최전선이라는 뉴욕 한복판에 자리 잡은 현대미술관(MoMA)의 재개관(10월 21일)을 기념하는 전시에 작품을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MoMA는 재개관을 앞두고 미술관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널드 B. 캐서린 C. 마론 아트리움’을 위한 신작을 양혜규 작가에게 의뢰했다.

MoMA에 전시된 양 작가의 작품 ‘손잡이’는 ‘소리 나는 이동식 조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조형물 6점과 대형 벽 디자인 작업이다. 전시는 현대카드가 후원했다. 미술관은 작품에 대해 선사시대의 샤머니즘으로부터 2018년 남북정상회담까지 혼성적 사회·정치적 모델에 대한 양 작가의 탐구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조형물과 함께 빛과 소리의 유희가 곁들여진 복합적 환경을 만나게 된다. 수십여 개의 붉은색 강철 손잡이가 삼면의 벽에 걸쳐 빛을 분산시키는 홀로그램과 검정 스티커로 콜라주 된 대형 벽화 위에 배치돼 자체적인 무늬를 이룬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벽화 위의 손잡이는 기능하지 않는 데 반해, 조각물에 부착된 손잡이는 각기 독특한 형태를 띤 6점의 구조물을 실질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원시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조형물의 몸체는 방울로 뒤덮여 있고, 주술 의식을 연상시키는 은은한 방울 소리와 새소리가 설치된 작품 사이로 울려 퍼진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뉴욕의 MoMA에 전시된 양혜규 작가의 작품 ‘손잡이(Handles)’. MoMA 제공


양 작가는 그동안 인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회의 다양한 파고와 너비를 특유의 축약과 상징, 그리고 비약의 추상적 화법으로 표현해 왔다. 평론가들은 이를 두고 ‘객관적 진실’에 맞서는 ‘주관적 진실’의 세계라고 규정한다. 이번 MoMA 전을 기획한 스튜어트 코머 큐레이터는 “양혜규 작가는 조각적이고 감각적인 설치작업으로 시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탁월한 능력을 갖췄다”며 “이번 작품 ‘소리 나는 이동식 조각’을 통해서도 다양한 문화를 새로운 ‘형태-언어’로 번안해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혜규 작가는 지난 9월 3일부터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 ‘양혜규: 서기 2000년이 오면’도 열고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 전시 이후 국내에서 4년 만에 개최되는 전시로, 11월 17일까지 계속되며 복합적이고도 총체적인 양혜규 작가의 작업세계를 만날 수 있다.

전시 타이틀은 가수 민해경의 노래 ‘서기 2000년’(1982년 발표)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금·여기의 우리가 노래에 담긴 당시의 정서를 더듬으며 시간을 보다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번개를 비롯, 방울·마늘·로봇·숲 등 고대부터 최첨단 현대산업문화와 연관된 사물들이 담긴 그림이 벽을 채우고 있고, 미니멀리즘·개념미술을 이끈 작가 솔 르윗을 오마주한 ‘솔 르윗 동차’, 주술적 의미를 일깨우기 위한 방울 연작 ‘소리 나는 운동’ 등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바닥에는 장기판 작업 위에 향기가 나오는 짐볼들이 놓여 있고 천장에서는 남북정상의 ‘도보다리 회담’ 당시 중계영상에서 추출한 새소리도 울린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