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권대섭 달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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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가마에서 꺼내는 순간 ‘참 반듯하구나, 참 좋네’ 하는 생각이 들고 기분이 좋아져야 한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그냥 있는 그 자체로 당당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언제 어디에 놓더라도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누가 보더라도 마음의 평안함과 넉넉함을 안겨주는 맛이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백자(白磁) 달항아리 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쳐온 도예가 권대섭(67)의 말이다. 백토와 고령토를 섞어 빚은 달항아리를 소나무 장작으로만 불을 땐 가마에서 구워내기까지 20∼30일간 혼신을 다하고도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부숴버린다”는 그는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백자 달항아리를 두고 단순·소박·무작위성(無作爲性)만 말하는 것은 편견이다. 아무 문양이 없어 밋밋해 보이지만, 날씨가 맑을 때와 흐릴 때가 서로 다르게 다가온다. 비나 눈이 올 때, 바람이 불 때도 각기 다르다. 기쁠 때와 우울할 때도 다르게 보인다. 색깔도 유백(乳白)·설백(雪白)·청백(靑白)·회백(灰白) 등으로 나누지만, 자세히 보면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다양하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 제작되다가 맥이 끊겼던 조선 시대 전통 백자 달항아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재현해온 대표적 작가인 그는 ‘한국미(美)의 정체성과 현대 미니멀리즘의 결합을 통해 달항아리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가 달항아리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서울 홍익대 서양화과 재학 중 군(軍) 복무를 마치고 3학년에 복학할 무렵 서울 인사동을 지나다가 무심코 바라본 백자에 넋을 잃은 일이었다고 한다. 4학년 때 중퇴한 그는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일본에서 유학한 후엔 독학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1995년 첫 국내 전시회 후 외국 각지에서 초청전시회가 이어졌고,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했다. 지난해 10월 영국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선 한 작품이 5만2500파운드에 낙찰되기도 했다.

1년에 10점 안팎만 작품으로 완성하면서, 자신의 최고 걸작에 대해 항상 “다음 가마에서 나올 것”이라는 끝없는 길의 구도자(求道者)인 그의 달항아리 18점을 선보인 전시회가 서울 이태원동 박여숙화랑에서 지난 10일 개막해 오는 11월 11일까지 이어진다. 전통 백자에 그가 그랬듯이, 그의 달항아리에 넋을 잃고 탐닉해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