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혁명 직후 쿠데타… 민주는 어렵고, 반동은 쉬웠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프랑스 화가 피에르 안토인 드마시가 그린 프랑스 혁명 당시 파리에서 벌어진 단두대에 의한 처형.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프랑스 혁명사 10권 - 반동의 시대 / 주명철 지음 / 여문책

1권 ‘대서사…’ 출간 5년만에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완간

“세제 등 경제문제 때문 촉발”
새 관점서 잘못된 상식 정정
‘박애 → 우애’ 日式표현 고쳐

주체의 선한 의지와 관계없이
우발적으로 흐르는 역사 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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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양사 연구와 출판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주명철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이 드디어 완간됐다. 2015년 첫 권 ‘대서사의 서막’과 둘째 권 ‘1789’가 나온 이래, 처음 저자가 약속한 대로 한 해 두 권씩 꾸준히 출간돼 마침내 혁혁한 빛으로 출판의 지평선 위에 우뚝 솟았다.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은 서른 해 넘게 스무 권 가까운 저서를 통해 이 혁명의 연구에 매진해 온 피와 땀의 온축된 정수요, 세계 학계의 최신 연구 성과를 두루 섭렵하는 박람과 함께 우리 현실에서 비롯한 주체적 관점에서 이 혁명을 비판적으로 기술한 최초의 역사서다.

“1789년 7월 14일, 파리의 민중은 바스티유 요새로 갔다. 왕이 파리로 불러 모은 군대와 맞서려면 탄약과 무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저자의 기나긴 도정은 이처럼 담담한 서술로 시작된다. 이날 바스티유가 ‘정복’되고, 프랑스 역사, 더 나아가 인류사의 위대한 한 걸음이 내디뎌졌다. 저자는 ‘바스티유 함락’이 아니라 ‘바스티유 정복’으로 써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엔 행동하는 인간이 있고, 인간의 꿈과 삶, 힘을 기록하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인 까닭이다.

책은 이같이 프랑스 혁명과 관련해 자주 오용되는 단어들을 하나씩 바로잡고, 시간 순서에 따라 사건의 세부를 철저히 들여다보면서 오류를 교정하는 한편, 혁명의 원인이 앙시앵레짐의 무능과 사치 탓이 아니라 세제 개혁에 대한 특권층 반발, 즉 경제 문제 탓에 일어난 점 등 이 혁명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한 줄씩 정정한다. 냉정하고 건조한 사실의 서술, 연구사에 단단히 기반을 둔 풍부한 해설, 우리 현실을 덧대어 이야기하는 사설의 동거는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다.

불합리하고 모순투성이인 앙시앵레짐의 ‘전제’를 끝장내고 ‘자유·평등·우애’에 바탕을 둔 평민의 지배를 세계사의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시킨 이 혁명이 끝내 민주주의의 완성에 이르지 못하고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좌절하는 최후의 문단을 보라.

“혁명은 로베스피에르의 외마디와 함께 끝나지 않았다. 공포정을 끝내고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끝날 것인데, 아직 공포정의 출구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중략) 그(나폴레옹)는 1799년 11월 9일에 정변을 일으켜서 총재정부를 끝내고 집정관부를 세워 민주주의 혁명의 길을 막았다.”

문장의 비정이 역사의 비장을 뼈아프게 환기한다. 주체의 선한 의지와 관계없이 역사는 우발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 이 자체가 어찌 보면 프랑스 혁명의 한 교훈으로 보인다. 혁명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됐을까. 1789년 바스티유 정복에서부터 1794년 테르미도르 반동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혁명은 햇수로 여섯 해에 걸쳐 있다. 이후에 올 모든 변혁의 상징이 된 이 혁명의 경과는 깔끔하지 않고, 오히려 끝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국민이 “새로운 헌법을 스스로 마련”하고 “스스로 대표를 뽑아 만든 법률을 함께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회”를 꿈꿨지만 이전의 누구도 길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에 아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혁명은 어둠을 헤치면서 한 발씩 진전됐지만, 언뜻 보기엔 무한한 자유와 무한한 혼란의 거듭제곱 형태로 전개된다.

4000쪽에 이르는 이 책의 서술이 오히려 짧게 느껴질 정도로 가능한 모든 일이 일어난다. 인권선언을 낳은 제헌의회 활동, 빵을 요구한 민중의 베르사유 습격, 루이 16세의 파리 이주, 사법 개혁과 재판소 설치, ‘성직자시민헌법’ 제정을 통한 종교인의 시민사회 편입, 전국연맹체 등 혁명이 제도로 정착되는 와중에 프랑스 곳곳에서 혼란이 본격화된다. 1790년 낭시 군사반란, 1791년 루이 16세의 도주 및 체포, 성문헌법 제정과 투표를 통한 입법의원 선출,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과의 혁명전쟁, 1792년 8월 10일 상퀼로트 계층이 봉기해 혁명의 적들을 처단한 제2의 혁명, 반혁명세력에 대한 9월 학살 및 왕정 폐지, 로베스피에르가 주도한 루이 16세의 처형, 공화국 선포와 구국위원회 결성을 통한 반혁명세력과의 투쟁, 혁명세력의 분열 및 공포정의 개막, 유죄 추정에 의한 수많은 억울한 죽음들, 결국 테르미도르 반동에 의한 로베스피에르의 숙청….

혁명은 왜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웠을까. 혁명은 결국 “절대군주제의 신성성을 민주주의의 신성성이 대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공화정은 시도와 과오를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시민 자신을 새로운 신으로 만들려다 혼란을 이기지 못하고 기어이 넘어진다. 자유는 이토록 힘들고, 민주는 저토록 어려운데, 반동은 어이없이 간단하다. 촛불 평화혁명 이후, 우리가 이 혁명으로부터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 할 이유다.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에서 주목할 또 한 가지는 이 혁명에 대한 우리말 사유를 본격화하려고 했다는 자부다. 저자는 일본 학계로부터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던 질 나쁜 번역어들을 바로잡은 점을 우렁차게 강조한다. 삼부회를 전국신분회로, 총독을 군 장관으로, 박애를 우애로, 성직자 민사기본법을 성직자 시민헌법으로, 공안위원회를 구국위원회로 바꾼 것이다.

9만 행에 가까운 이 책의 서술도 시인한테는 열두 줄이면 충분했다. 빅토르 위고는 노래한다. “7월 14일이다./ 이날, 이 땅 위에/ 자유가 잠에서 깨어나/ 우레 속에서 웃었다.// 이날, 민중은 한탄했다/ 과거를, 이 검은 침탈자를./ 파리는 멱살을 잡았다/ 사악한 바스티유의.// 이날, 운명은 판결을 내렸다/ 프랑스에서 밤을 쫓아내라고./ 그래서 영원은 빛나리니/ 희망의 곁에서.” 자유가 억압의 밤을 쫓아내고 희망의 곁에서 영원히 웃음을 터뜨린다. 이보다 더 통쾌한 일이 어디 있는가. 오늘날 우리도 혁명의 웃음을 잃지 않으려면, 이 혁명의 역사를 제대로 숙고해야 할 것이다. 9권 352쪽, 10권 360쪽, 각 2만 원.

장은수 이감문해력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