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대통령 풍자의 수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현종 논설위원

미국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NBC 방송의 코미디 프로인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코미디 정치학’의 대명사처럼 된 SNL은, 대통령 후보자가 망가지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기도 하고, 배우들이 패러디하기도 한다. 포천지는 “지난 40년간 SNL은 대선 주자들에게 아이오와 코커스와 맞먹을 만큼 중요한 통과 의례였다”고 의미를 부여할 정도다.

지난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프로그램 효과를 톡톡히 봤다. 비슷한 분장을 하고 말투까지 흉내 내는 배우들과 함께 나와 “머리를 만지는 데 3시간이 걸린다”고 농담을 하고, “어떻게 실업률을 낮출 것이냐”라는 질문에 “나는 굉장한 부자다”라는 식의 부실한 답변을 내놓으면서도 기막히게 청중의 박수를 끌어냈다. 이 프로그램 출연으로 550만 달러의 광고 효과를 봤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2월 SNL에서는 배우 앨릭 볼드윈이 트럼프 대통령 분장을 하고 나와 “국경장벽은 효과가 없다. 사실 별로 안 똑똑한 사람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성대모사를 한 것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방송사를 조사해야 한다고 발끈했다. 대통령 되기 전과 후가 이렇게 다르다. 선진국에선 대통령 풍자가 폭넓게 인정되지만, 터키나 러시아 등에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당 공식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빗댄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를 선보였다. 문 대통령이 모친상을 당하자 30일 긴급히 ‘잠정 삭제’하기는 했다. 여당은 “국가원수 모독” “천인공노” 등의 표현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한국당은 지난 2017년 1월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국회 로비에서 ‘시국 비판 풍자’ 전시회에 걸었던 ‘더러운 잠’ 그림을 거론하며 맞받았다. 이 그림은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정치 풍자가 활성화된 미국·유럽 등지에선 정치 지도자의 성별을 불문하고 나체나 속옷 차림, 키스 장면 등을 묘사하며 조롱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지난 5월 영국 ‘스펙테이터’ 만평은 한국당 동영상과 같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그렸다. 그동안 대통령 성대모사가 전부였던 풍자가 최근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재미는커녕 불쾌감만 주는 것을 보면 수준이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