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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9년 11월 04일(月)
최초의 ‘오페라 전문’ 작곡가… 실험성+대중성 ‘새 시대’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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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뇰로 브론치노의 ‘비너스, 큐피드, 어리석음과 시간’. 1545년경 작품으로, 모호함과 에로티시즘을 담고 있다.

■ 김학민의 오페라 문화사 - ② 초기 거장 몬테베르디

- 예술 미학
舊음악 ‘마드리갈’ 등에 新음악 ‘모노디’ 가미… 초기 오페라 대명사 ‘오르페오’ 내놔
파괴·실험 추구한 ‘마니에리즘’양식과 닮아… 르네상스-바로크 예술 잇는 가교 역할


1.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엘리트주의

르네상스 말기에 해당하던 15세기 말, 고대 그리스 문화와 정신을 부활한다는 야심 찬 슬로건에서 촉발된 오페라 탄생의 치열하고 다채로운 역사는 인본주의자들의 지적 엘리트주의와 아마추어 귀족·예술가들의 경쟁심이 절묘하게 결합된 흥미로운 문화 현상이었다. 작곡가, 대본작가뿐 아니라 후원자 귀족들도 누가 먼저 최초의 오페라를 만들어 역사책의 한 챕터를 장식할지에 대해 경쟁과 시샘을 부렸고, 학자들은 ‘나 아니면 알 수 없다’는 지적 자부심으로 불멸의 절대 진리 구현을 위한 무한 연구에 들어섰다.

이 대목에서 최초의 오페라 작곡가라는 명예를 얻게 된 페리와 경쟁 작곡가 카치니가 아마추어 음악가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유럽은 예술의 전문화와 분업이 채 이뤄지지 않았다. 페리, 카치니 모두 가수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이들이 아마추어 작곡가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이들은 버젓한 귀족은 아니었지만, 노래, 연주, 작곡 등 음악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귀족의 반열에 서기를 꿈꾸었다.

최초 오페라의 이론적 기초가 된 ‘모노디’(그리스 낭창 형식을 모방한 단선율 노래) 이론을 개발했던 음악이론가, 갈릴레이도 아마추어 음악가였고, 그 모태가 된 예술 동호회 ‘카메라타’도 아마추어 예술가 모임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전역에 유행처럼 번진 수많은 예술 동호회(아카데미) 모임에 속했던 대부분 작곡가도 아마추어였다.

▲  몬테베르디(1567∼1643) 초상화
2. 최초의 ‘오페라 전문’ 작곡가, 몬테베르디

오페라 장르에 관한 한,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1567∼1643)는 유럽 최초의 ‘전문’ 작곡가였다. 현존하는 최초의 오페라 ‘에우리디체’(1600)가 피렌체에서 역사적 공연을 이룬 후 7년 뒤, 몬테베르디는 오페라 ‘오르페오’(1607)를 통해 오페라 작곡의 전문성을 최초로 입증했다.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에 위치한 작은 도시, 크레모나에서 태어난 몬테베르디는 크레모나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자, 성가대 지휘자로 청소년기에 소중한 음악적 경험을 한 후,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노래 양식인 마드리갈 모음집을 10여 권 출간했다.

그의 마드리갈 모음집들은 당시 유럽 음악의 다양성과 실험성, 전통성이라는 다채로운 면면을 집대성한 것이다. 그는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모노디 노래를 최고의 세련된 어법으로 발전시켰지만, 구음악에 해당하던 다성음악 기법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여, 신음악과 구음악 간의 수많은 논쟁에 불을 지폈다.

3. 오르페오, 대중성과 진보성의 공존

오르페오는 오늘날 초기 오페라의 대명사로, 주요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되는 수많은 인기 레퍼토리 중 가장 오래된 오페라다. 이 오페라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카메라타의 과격한 이론에 대중성을 가미하고 아마추어십을 예술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었기 때문이다.

몬테베르디는 극적 효과를 위해 소규모 오케스트라 악기를 다양한 음색을 지닌 40여 개의 악기로 확대했으며, 화려하고 정교한 다성음악 및 합창을 포함해 음악적 다양성과 웅장함을 더했다. 결과적으로 몬테베르디의 오페라에는 구양식인 르네상스 음악(세속 노래 마드리갈과 모테트, 미사 등의 종교음악)과 신양식에 해당하는 바로크 초기 음악(모노디)이 공존한다.

옛 음악과 새로운 음악, 대중음악과 진보적 음악의 공존이라는 특성은 이 오페라가 최초의 오페라 에우리디체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몬테베르디는 아마추어 음악가의 실험성에 예술성과 대중성을 가미했다. 에우리디체는 음악으로 세상을 재현한다는 모노디 이론의 이념에 너무 경도돼 음악의 감동과 재미가 무시된 측면이 있었다. 반면 오르페오는 딱딱한 모노디 노래 외에 당시 유행하던 마드리갈 노래, 다성음악, 합창 등 다채로운 음악들을 혼합해 음악적 감동을 더했다.

▲  요아킴 브테바엘의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1616년 작품으로, 장식성과 기괴함이 특징이다.
4. ‘재생(再生)’의 인본주의적 정신을 재현하다

음악적 감동에 더해 이 오페라는 인본주의의 정신을 놓치지 않았다.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킨다는 이 오페라의 테마는 인본주의자들의 철학에 기초한 것이다. 오케스트라를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현악기는 낙원을, 금관악기는 지하세계를, 콘티누오 악기(즉흥연주를 위한 하프시코드, 더블 하프, 키타로네 등의 악기)는 낙원과 지하세계의 공통 영역을 표현하려 한 것도 인본주의의 연장선이다. 사랑하는 아내 유리디체를 되살리기 위한 오르페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리디체가 다시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슬픈 엔딩(이 엔딩은 에우리디체에서는 생략됐음)은 재생이라는 인본주의 철학가들의 인기 테마를 반영한다.

5. 음악과 극의 조화

이 오페라의 초반에는 양치기와 님프들이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결혼을 축하하는 마드리갈풍의 노래와 춤으로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1막의 ‘님프들이여 물에서 나오거라(Lasciate I monti)’ ‘결혼의 신이여 이들을 축복하소서(vieni imeneo, deh vieni)’ 등은 당시 귀족들이 즐겨 듣고 실제 본인들이 노래 부르기도 했던 마드리갈의 모습이다. 반면, 아내의 죽음에 비통해하며 오르페오가 부르는 ‘그대가 죽다니(tu sei morta)’와 3막에서 뱃사공 카론이 부르는 ‘멈추어라 겁 없는 자여(o tu ch’innazi morte)’, 오르페오의 독창, ‘위대한 정령이여(possente spirto)’ 등은 당시 유행하던 최첨단 모노디 양식으로 된 곡으로, 바그너의 악극보다 더 현대적이고 화성과 리듬의 측면에서 거의 현대음악에 가깝다.

오르페오는 소리 자체에 대한 생각과 환경이 달랐던 시절에 만들어진 오페라이기 때문에 오늘날 이 오페라를 공연하기 위해서는 음악적으로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5명의 배역(에우리디체, 라 무지카, 스페란차, 메신저, 프로세르피나)은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자 성악가)가 부르도록 작곡됐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메조소프라노가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1485년경 작품으로, 감각이 마니에리즘을 지향한다.

6. 오페라 복원을 위한 현대의 노력들

이 오페라는 오늘날 사라져버린 고악기로 연주됐고 기보법도 오늘날의 것과 다르기 때문에 악기의 복원, 연주법 등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오랫동안 잊혔던 이 오페라를 다시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으로, 현대음악 작곡가 뱅상 댕디의 연주(1905, 파리 스콜라 칸토룸)와 카를 오르프의 연주(1925), 오토리노 레스피기(1935), 루치아노 베리오(1984) 등의 연주가 있었다.

이들은 이 오페라의 연주를 위해 악기들을 자유롭게 변형해 연주했으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악기와 연주법을 고증해서 연주하는 이른바 ‘정격연주’가 유행하게 됐다. 그 효시를 이룬 공연은 영국의 잭 웨스트럽이 이끈 오페라 서클 ‘옥스퍼드대 오페라 클럽’ 공연(1925)과 라스칼라 극장의 리바이벌 공연(1929)이고, 이후 레이먼드 레퍼드(1965 런던), 데니스 스티븐스(1967),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1969), 로저 노링턴(1976 켄트 오페라, 1984 피렌체), 존 엘리어트 가디너 등으로 이어졌다.

7. 양식의 공존이 낳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

최초의 오페라 작곡가 카치니와 페리, 최초의 대중 오페라 오르페오의 작곡가 몬테베르디가 마니에리즘 작가들과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였다는 점은 이 작곡가들의 오페라를 ‘마니에리즘 오페라’라 분류해볼 수 있다는 흥미로운 추론을 가능케 한다.

원래 오페라를 포함해 서양 음악의 역사는 문학이나 회화의 역사와 비교할 때 양식의 세분화 작업이 덜 돼 있는 면이 있다. 손으로 잡히지 않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추상예술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어찌 됐건 최초의 오페라를 무조건 바로크 초기 오페라로 분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마니에리즘 회화가 오래 살아남지 못했듯이, 최초의 오페라들은 너무 난해하고 실험성이 강해 몇 번 연주된 후 살아남지 못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드라마 페르 무지카’(음악으로 된 연극)의 운명을 살려낸 사람은 몬테베르디였다.

음악학자들은 몬테베르디를 이후 나타날 두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18세기 후반)와 바그너(19세기 중후반)에 준하는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로 평가한다. 몬테베르디와 그의 오페라 오르페오의 위대성은 마니에리즘의 고전성을 파괴하고 실험성을 예술적으로 순화시켜 일반 예술 향유자들의 상식과 기존 전통과의 접점을 새롭게 마련했다는 점에 있다.

이론과 실제, 극과 음악,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극단의 어느 지점에 위치한 몬테베르디의 오페라는 결과적으로 기존 양식인 르네상스 예술 양식과 새로운 시대의 양식인 바로크 예술 양식을 잇는 교량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경희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 용어설명

마니에리즘 양식 : 최초의 오페라들은 마니에리즘 양식(1520∼1600년경 이탈리아에서 유행했던 회화 및 문학 양식)의 특성을 닮았다. 마니에리즘 회화는 르네상스 고전 양식의 규범이던 균형과 비례로부터 의도적으로 이탈해 과다한 장식성과 모호함, 현학성을 추구했다. 피렌체 화가 아뇰로 브론치노의 ‘비너스, 큐피드, 어리석음과 시간’(1545년경), 요아킴 브테바엘의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1616년경)와 같은 마니에리즘 회화의 매력, 그리고 같은 시절 셰익스피어 희곡의 매력은 르네상스 시절 고착화된 규범으로부터의 이탈과 전위성에 있었다.

마니에리즘 회화 작가들에게서 보이는 모호함과 에로티시즘(브론치노), 장식성과 기괴함, 초월성(브테바엘), 비극적 모티브와 희극적 모티브의 혼합, 혹은 셰익스피어로 대변되는 마니에리즘 문학 작품들이 보이는 비유의 모호함, 인간 존재의 몽환성과 비논리성(아르놀드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권, 282∼283쪽)은 최초의 오페라들을 이해하는 데 흥미로운 창문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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